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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정희 Dec 23. 2022

...그리고, 나의 이야기


개인과 조직이 하는 일이 낳는 결과가 노트북/냉장고/핸드폰/소프트웨어/서비스 등의 ‘상품’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거나 해당 상품에 대한 영업 실적인 경우, 또는 내 눈 앞 고객의 만족도가 뚜렷이 보이는 일 등이라면 내가 지금 쏟는 에너지와 그것이 창출하는 결과 간 연결고리를 만들기가 훨씬 수월하다. 이 경우에는 일에 대한 의미 부여에 에너지를 들일 필요가 크지 않다.


그러나 맡은 일 자체가 미팅의 연속이자 문서 작성과 보고이며, 그렇게 보내는 시간과 정신적 노동의 결과가 직접적으로 세상의 무엇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연결점을 찾기 어려운 관리 조직(기획, 재무,운영 등의 기능. 사실 전략 부문도 그러한 자괴감을 느낄 때가 많다)에서는 내가 매일 하고 있는 일이 왜 중요한지에 대한 자기 확신이 중요하다- 최소한 나와 내가 아는 꽤 많은 이들은 그렇게 느꼈다. 그런 측면에서 마이크로소프트 Finance 팀은 참으로 친절한 조직이었다. 귀가 따갑다는 표현을 해도 모자라게, 가식적이라는 말을 들어도 모자라도록 조직의 존재 의미를 챙겨주는 이들의 모임이었으니까.


그러나 아마존은 그런 세세한 곳에 에너지를 쓰는 회사가 아니다. 영업 또는 사업개발 쪽 직원들은, 아마존의 서비스 특히 클라우드 서비스에 만족하는 고객들을 직접 접하며 거기에서 일의 의미(=훌륭한 상품을 고객에게 전파하여 그들의 사업을 돕는다는 자부심)를 직접 가져가기도 했지만, 내가 마이크로소프트를 거쳐 아마존에서 하던 일들은 외부 활동 없이 내부 살림에 집중하는 업무의 성격 상 일부러 일의 의미를 찾지 않으면 그것을 매일 실감하기는 어려운 자리였다. 거기에 더하여 아마존에서 내가 속한 조직은, 앞서 기술한 회사의 특수성으로 인해 일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매 순간  되뇌이게 되는 자리였다.


그 가운데에서 우리 주니어 팀원들에게 우리의 조직이 중요하고 가치 있다고 말해 주고, 여러 어려운 환경 아래 조직 내외부적으로 시달리는 주니어들의 마음도 보호해 주고 싶었다. 마이크로소프트에서 Finance 팀이 회사를 위해 얼마나 중요한 조직인지를 회사가 작정하고 인정해 주었더니 그것이 어떠한 순기능을 발휘하는지를 눈으로 보아 좋았고 내 마음도 보호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외부에서 가져온 시각과 확신 하나만 가지고서 한 개인이 큰 회사 안에서의 본인과 주니어의 마음을 홀로 지키는 것은,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해한다. 그 회사에서 만난 모든 조직과 모든 개인은 본인들의 생존을 위해 애쓰고 있었다. 회사가 고객 및 주주의 만족을 회사의 가장 첫번째로 중요한 철학이라고 내세울 때(회사는 이것을 그 유명한 ‘Customer Obsession’ 이라 표현한다), 일터는 그렇게 변모한다.


본인이 하는 일의 의미란 개인의 진심에서 비롯되어야 함이 가장 자연스럽고 마땅하긴 하나, 그것이 혼자 버티어 증명하는 일이 되지 않아야 한다. 또한 모두가 생존에 집중하느라 대립 상황에 놓여 있을 때 가식적이나마 회사가 공식적으로 정의해 주는 조직의 존재 의미는, 특정 조직과 특정 인물들이 프로세스가 정립되지 않은 일과 책임자가 정의되지 않은 모든 일을 떠안아 burn out 되는 일을 막아 주거나 최소한 버틸 수 있는 힘을 준다. 그것 넘쳐나게 하는 회사와 전혀 하지 않는 회사 두 경우를 모두 생생하게 경험한 사람으로서, 나는 회사들이 허공에 흩어지는 것 같이 보이는 ‘공감’, ‘비전 선포’ 등에 공을 들이는 것을 중요하다고 인정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혁신의 아이콘이 되어 좋은 인력이 모여드는 회사들은 개인에게 의미를 부여해 줄 필요를 찾지 않는다. 그런 회사가 잘 맞고 그러한 환경을 오히려 사랑하는 사람도 세상엔 많이 있다. 사실 이것을 냉정하게 말하자면, 본인의 가치에 맞는 자리를 찾으면 되는, 어찌 보면 그저 선택의 문제이긴 하다.


나는, 이제 그런 회사를 선택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그 회사를 여전히 사랑하는 사람들의 선택을 존중하고, 나와 함께 했던 모든 이들의 수고를 존경한다.

다만 이 선택을 하는 나는, 내가 몸 담고 또는 돕게 될 회사들이, 가식적이나마 인간 존재의 의미와 그가 하는 일의 의미를 함께 찾는 제스처를 취해 줄 여유 정도는 있는 주체였으면 좋겠다. 나와 함께 있는 회사가 더 따뜻해져서, 나와 내 주변에 함께 하는 사람들이 떠나지 않기로 선택하는 일이 계속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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