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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정희 Jan 10. 2023

타고난 기질, 그리고 후천적 성격

첫째 아이가 여섯 살, 유치원에서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는 재미에 한창 빠져있던 시기였다. 아이는 그 즈음 같은 반 두 명과 함께 무리를 지어 ‘우리는 삼총사’니 어쩌니 손잡고 다니고, 삼총사 그림을 그려 나눠주기도 하다가, 집에서 이것저것 만들어 정성시레 챙겨 유치원에 가져가 나눔을 하며 뿌듯하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던 아이가 며칠 동안 입을 꾹 다물고는 거의 매일 자랑하던 유치원 우정 이야기를 하지 않기에 무슨 일이냐 슬쩍 물어보는데 두 눈에 눈물이 금방 그렁그렁해졌다. 이유를 물으니 이른바 삼총사 우정에 위기가 닥친 것이었고, 아이는 본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맞닥뜨린 것이었다.

며칠 전 딸의 앞 자리에 앉아 수업을 받던 삼총사 멤버 중 한 아이가 지우개가 없어졌다며 뒤를 돌아보고는 딸에게 “수상하다”고 했단다(그 때 그 반 아이들 사이엔 아마도 어른들 말 것 같아 그들에겐 매력적이고도 의심스러운 단어였을 ‘수상하다’는 말을 쓰는 것이 큰 유행이었다). 그러고는 바닥 어딘가 떨어져 있던 지우개를 곧 찾아냈는데, 나와 이야기 나누기 바로 전 날에는 크레파스 한 조각이 없어진 것으로 또다시 예의 그 언어인 ‘수상하다’는 말로 아이를 똑같이 공격했다는 이야기였다.


설명하다 억울했는지 결국 끄억거리며 우는 아이를 보니 나까지 억울해 화가 치밀었지만, 해결책이 뭘까 결정하기 전에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OO이한테 내가 가져가지 않았다, 고 이야기는 했어?”

“했는데 OO이는 그냥 나보고 수상하다 그랬어.”

“지우개 찾고, 크레파스 찾았는데 수상하다는 말 취소하고 사과는 했고?”

“안 했어.”

“지금 너 이렇게 울고 속도 상하잖아. 하지 않은 일로 공격받으면, ‘내가 기분 나쁘니 그렇게 말하지 마라’ 하고 똑바로 이야기를 해야지. 그래야 그 친구가 다음에 안 그러지.”


세월 다 겪고 이제 할 말 하고 사는 마흔 살 엄마의 당연한 말에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그럼 OO이가 내 말 때매 속상할 거 아냐.”

그러면서 끄억끄억.

“누구든 내 말 듣고 속상한 건 싫어.”


딸을 잠시 들여다 보다 가만히 안아줬다. 거기서 그 애가 속상할지를 걱정할 일은 아니잖아, 요 녀석아.


아이가 하지 않은 일에 공격을 당할 때 스스로 바로 잡을 수 있는 힘도 가져야 할 때도 되었다 싶었다. OO이가 속상할까 생각하는 것도 좋지만, 확인도 안하고 남을 속상하게 하는 건 나쁜 일이라고 알려주는 것도 중요하니 OO이에게 네가 뭘 느꼈는지는 알려주자 했다.


OO이 앞에서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아이에게 동물 인형(어느 수족관에선가 기념품으로 데리고 왔던 하늘색 물개 봉제인형이었고,  지금은 둘째딸의 애착 인형이다)을 하나 가지고 와 둘이 말하기 연습을 했다.

내가 하늘색 물개를 들고 아이 얼굴에 들이밀며 “어, 뭐야. 내 지우개 없어졌잖아. 너 수상해” 하면, “그런 말 하지마, 네가 그러면 나는 기분이 나빠” 라고 하는 식의 연극이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 줄 모르겠다기에 할 말을 몇 가지 만들어 또박또박 입에 넣어줬는데, 처음엔 어색해 하던 아이가 그 말들을 따라 하며 물개에게 항의하다가 그 날의 상황에 몰입한 나머지 제 속상한 마음을 줄줄 이야기하기 시작하더니 끝내는 감정을 쏟으며 내 품에서 목을 놓고 엉엉 울었다.


속으로는 화가 끓어오르고, 그 때의 내겐 유치원에 당장 쫓아가거나 OO이 엄마에게 전화해서 이야기할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전투력도 있었지만, 하늘색 물개와 연습한 여섯 살 딸의 연기력(?), 거기서 아이가 얻게 될 ‘목소리 낼 자유’에서 얻을 성취감을 믿어보고 싶었다.  


“오늘 실컷 울어. 괜찮아. 물개한테 이야기도 잘 했어. 엄마가 가서 너 이야기하는거 직접 도와주면 좋겠지만, 좋고 싫은 거 혼자 이야기할 줄도 알아야 언니지. 내일 OO이 한테, 이전에 네가 그렇게 말해서 나는 속상했다 말해. 그 후에 삼총사를 더 할지 말지도 네가 결정하면 돼.”  


유치원 선생님에게는 아이들 사이에 이런 일이 있었다, 딸에게 본인의 감정을 밝히 이야기하라고 해 두었으니 아이들 간 상호작용을 얼마 간은 특히 신경 써 봐 달라고 전화로 부탁을 해 두었다.


며칠 뒤 딸에게 물었다. 어땠니, 이야기는 할 기회가 있었니.


“OO이를 물개라고 생각하고서 노는 시간에 말했어. 나 기분 나빴다구.”

흥미진진.

“자기가 뭐 했냐길래 지우개랑 크레파스 때매 나한테 수상하다는거 사과하라 그랬어.”


“그랬더니?”


“알았대, 찾았으니깐 미안하대.”


‘찾았으니까 미안하다’는 부분이 까칠마왕 엄마에게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딸아이는 맹연습 끝에 일군 나름의 성취에 한참 즐거운 참이었다.


“그래서 삼총사는 계속 할거야?”

반짝이는 눈을 되찾은 여섯살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음...뭐 꼭 이 삼총사 아니어도 돼. 나 ㅁㅁ이랑도 친하다구.”


안도했다. 잘했어. 네 상한 마음에 기회를 주고, 도망치지 않고, 결정했으니 잘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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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억압적인 환경에서 자란 것도, 케어가 특별히 필요한 형제자매가 있었던 것도 아닌, 지극히 평안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님에게 나는 큰 사춘기 트러블을 일으킨 아이도, 공부하라 잔소리해야 무엇을 해내는 아이도 아니었고 그냥 알아서 뭔가를 챙기는 아이였다.

그런데, 원래 기질이 그렇게 무난하도록 태어난 사람은 고분고분하지 않은 대부분의 아이들과 대조가 되면서 자연스레 칭찬을 받고, 그러면 다시 칭찬과 격려에 더 부합하는 존재로 살아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을 스스로 덧대어 가며 평화에 더 집착하는 사람이 된다. 돌아보니 내가 그랬다.


학창 시절 뭔가 아이들끼리의 분쟁이 생겨 그 가운데 따돌림을 당하고서 단짝 무리로부터 떨어져 나오는 아이들이 일시적으로 내 옆에 갑자기 붙으면 나는 그런 애들을 불편하지 않게 받아주고, 그가 무리와 화해해서 나를 떠나가면 그래 잘됐네 해 주었다. 아이들은 그런 성격의 나를 너그러운 친구라고 좋아했다. 말 잘 듣는 학생인 나는 선생님들에게도 칭찬받고, 키는 학교에서 제일 커서 눈에 뜨이고(초등학교 시절부터 농구/배구 선수 정도의 키였다), 공부는 잘했고, 중고교 6년 간 항상 반장이었고, 친구들의 여러 수다와 불평을 모두 잘 들어주는 애였다. 내 주변엔 그것을 핑계로 위로를 청하려는 아이들이 제 필요에 따라 밀물처럼 왔다가 썰물처럼 갔지만, 지금 돌아보면 나는 아이답지 않게 의연했다. 그 마음에  밀물과 썰물로 인한 서운함이 없었을 리가 없으나, 나는 예민한 감정을 삼키고  언니처럼 행동했다. 그런 것을 왜 받아주냐 내게 말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그 때의 나는 그것이 성숙이라 생각했다.


마흔 살 넘은 지금의 내가 돌아볼 때, 요구받지 않은 성숙과 요구받지 않은 마음의 인내를 왜 그렇게 감내했을까 싶어 그 때의 내가 안쓰럽다. 나는 아이답지 않았다. 그렇게 다진 기질과 성격을 가지고서 인내와 침묵이 미덕이기 힘든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남는 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한(恨)’ 비슷한 감정일 수 있다. 지극히 평안한 삶을 살아온 나 같은 사람이 한을 말하는 것은 부끄럽다. 다만 나도 내 version의 여러 마음의 폭풍을 경험해 놓고 보니, 내 입장과 의견을 때때로 위장된 평화를 깨어가면서 이야기할 수 있어야만  내 마음 속에서도, 그리고 일과 삶에 얽힌 수많은 관계에 있어서도 지속 가능한 평안을 가져갈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나는 그것을 여러 해 동안 꽤나 찐한 마음의 품을 판 다음에야 알았다.


본인을 오해하고 모함한 OO이에게조차 ‘내가 이렇게 말하면 그 아이가 속상할 것 아니냐’며 때에 맞지 않는 너그러움으로 할 바를 몰라 하던 첫째를 그냥 가만 안아줄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렇게 생각하는 아이가 그냥 이해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엄마 뱃속에 있다 나온 너는 엄마의 어린 시절을 그 새 가져 갔구나. 너 혼자 크지 말고, OO이도 같이 크게 하자. 함부로 말해도 괜찮은 세상이 아니고, 서로를 조금은 생각해줘야 같이 살 수 있다는 걸 알아야지.


사실 부작용(?)은 약간 있어서, 하늘색 물개로 연습한 것을 실전에 쓰고 난 뒤 큰 자신감을 얻은 우리 아이는 그걸 가르쳐 준 엄마를 대상으로도 ‘그냥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라는 말로는 꺾을 수 없는 의견 강한 어린이로 거듭나기 시작했다. 요 작은 인간을 설득하기 위해 피곤한 대화(또는 싸움) 과정을 수도 없이 겪으면서 ‘아아, 내가 무슨 고생을 사서 할라고 애에게 그런 걸 가르쳤’나 싶을 때가 있으나,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는다.

 

내 아이들이, 괴롭게 홀로 떠안지 말고, 시원하게 그리고 함께 멀리 보는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다.

그렇게 자라는 가운데에서 '엄마가 그렇다면 그냥 그런 줄 알’라고 할 때 엄마한테 항의를 하게 되면, 엄마가 고것은 옛 실력을 발휘하여 참아 줄께. 사실은 엄마가 이미 까칠한 사람이 되어버려서 노력이 많이 필요한 일이 되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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