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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직요괴 Dec 03. 2023

끈기 없는 백수 사주라는데요

과연 난 사주를 거스를 수 있을까?


며칠 전, 팀 동료 한 명이 무려 반차까지 써가며 사주를 보러 가더니 부리나케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그 후기를 풀어줬다. 사주는 반만 믿자 주의인 나는 심드렁한 태도로 듣기 시작했으나 후반부쯤에는 벌써 영혼이 넘어가 반드시 다녀오겠다는 결심이 서고야 말았다. 봐주신 분의 신기(神氣)가 의심될 정도로 정확도가 엄청났다. 함께 이야기를 듣던 팀원들 모두가 소름이 돋는다며 연신 '대박'을 외쳤다.


그렇게 바로 다음 날, 추위를 뚫고 달려간 사주집에서 풀이를 시작한 지 약 2분 만에 등줄기에 쫘악 흐르는 땀에 입던 옷을 벗어던져야만 했다.




갈 때까지만 해도 내심 기대하던 풀이가 있었다. 뭐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돈복이 많다, 뭐든지 잘 될 사주다, 남은 30대는 좋은 기운이 들어와 승승장구한다 등... 한 마디로 좋은 사주라는 소리 좀 듣고 싶었다.


하지만 막상 들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은 내가 '책임감은 매우 강하지만 끈기는 매우 부족한 사주'라는 것이다. 좋게(?) 말해 현모양처, 극단적으로 가면 백수 사주라고도 풀이했는데 정곡에 찔려 온몸이 화끈거림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허탈함이 밀려왔다. 


물론 항상 주창하던 장래희망에는 백수가 있었고, 꿈이 뭐냐 물으면 늘 놀고 싶다는 답변을 했다지만! 3자의 입에서 그것도 타고나길 그렇게 생겨 먹었다는 것을 확인사살받는 순간, '그럼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던 시간들은 뭐가 되는 거지?' 하는 생각이 긴 여운을 남기며 스쳐 지나갔다.


말이 씨가 되나요


혼자 놔둬야 잘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이끌어주는 누군가가 있어야 잘하는 사람이 있다는데 난 그중 후자에 해당한다고 한다. 쉽게 말해 참모 스타일이랄까? 이끄는 리더보다 보좌하는 참모에 더 잘 어울린다는 사실은 살면서 이미 깨달은 바였기에 놀랍지 않았다. 하지만 이에 덧붙인 말이 내 마음을 아주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요괴님은 조직에 있어야 해요.


아니 이게 무슨 말이람. 조직이 안 맞아서, 탈회사 하고 싶어서 '이직요괴'라는 이름으로 브런치까지 만들어 쓰고 있는 사람한테 대체 이게 무슨 사형선고 같은 풀이란 말이에요. 이미 앞에 개인적인 내용을 너무 많이  맞춰 놀라움에 한바탕 식은땀까지 흘린 상황이라 이 말 역시 쉽사리 부정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도저히 믿고 싶지가 않아서, 아니 믿을 수 없어서 몇 차례나 되물었다.


"조직 없이는 잘 될 가능성이 없나요?"

"어려워요."

"정말요? 혼자서 꾸준히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지금은 관을 내려놓을 수 있는 힘이 들어온 시기라 그런 마음이 들 수 있어요. 하지만 조직에 계셔야 합니다."


이후로도 여러 랠리가 이어졌지만 단호한 2차, 3차 사형선고만 더해질 뿐이었다. 예상치 못한 소식에 머리가 멍해져 물어보려고 했던 신년운세는 까맣게 잊은 채 상담이 종료됐다.


... 사주는 반만 믿는다는 사람 어디 가셨어요.


아무튼 그렇게 충격과 공포의 상담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사주풀이를 듣고 이렇게 절망하는 진짜 이유는 뭘까? 결과를 맹신하기 때문에? 좀 혹한 건 인정, 하지만 분명 그게 다는 아니다. 좀 더 솔직한 걱정을 들여다보니 '나도 나를 못 믿겠는데 사주까지 이렇다니 진짜 불안한데?' 하는 마음이 툭 튀어나왔다.


이번은 진짜 다를 거라고, 이번에는 해내고야 말겠다고 칼을 뽑았는데 이조차 그저 정해진 운명의 장난은 아니었을까 싶은 마음. 호르몬의 지배에 이어 사주의 지배까지 받고야 마는 것인가. 아니, 그러기엔 좀 많이 억울하다.


최근 인터넷에서 K-사주풀이에 대한 글을 보았다. 망신살이 있으면 대중목욕탕에 가거나 건강검진을 받고, 피 볼 일이 있으면 헌혈을 하면서 사주를 역이용한다는 원리였다. 그래서 나도 이걸 적용해 보기로 했다. 누군가 이끌어주면 꾸준히 할 수 있다고 했으니 이런 연재형 브런치북이라든지, 챌린저스라든지 아무튼 강제로 습관을 만들어줄 수 있는 무언가를 활용하면 되지 않을까 싶다.


비록 사주가 이런 줄 모르고 시작한 꾸준한 사람 되기 프로젝트였지만 진짜 달성하게 된다면 타고난 운명까지 거스른 꽤나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나야 제발 보란 듯이 성공해주라!



p.s. 혹시 이 글을 보시는 분 중 끈기 없는 사주를 타파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알고 계신다면 댓글로 좀 알려주세요. 실천해 보겠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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