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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직요괴 Dec 10. 2023

꾸준함엔 그다지 큰 결심이 필요하지 않다

저녁밥을 차리다가 밥이 다 되기까지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 글을 쓰려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제대로 된 책상도 아닌 간이 책상을 거실 중간에 펼쳐놓고 글 쓸 때 듣기 좋은 음악을 하나 틀어놓은 것이 전부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이 모습이 내겐 꽤 별 거다.


지독한 완벽주의는 사람을 항상 쉽게 지치게 만들었다.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해야지!' 어디서 배운 장인정신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알게 모르게 나를 옥죄어왔던 이 한 마디는 무엇이든 시작과 끝을 어렵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예상하거나 기대한 것과 약간이라도 다른 상황이 닥치면 오히려 더욱 쉽게 낙담하고 좌절하게 했다.


망했어. 내가 완전히 망쳐버린 거야. 이젠 가망이 없어.


그 모습이 스스로도 이해가지 않으나 이미 모든 전의를 상실한 몸뚱이는 답답해하는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렇게 중간에 모든 것을 놓고 포기한 뒤엔 깊은 후회가 물 밀듯이 몰아치면서 또 한 번 자책의 시간을 보내곤 했다. 나이가 조금 더 들어 '게으른 완벽주의자'라는 개념에 대해 알게 되었을 땐 이만큼 나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있는 단어가 있을까 싶었다. (지금 다시 보니 작년에 썼던 글에도 완벽주의자 에피소드가 있다.)


꾸준함을 지키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이자 핑계 중 하나였다.


(그사이 밥이 다 지어져 그릇에 소분까지 완료했다. 뜬금없는 소개지만 오늘 저녁은 고기반찬이라 고기가 구워지는 동안 다시 간이 책상 앞에 앉아 글쓰기를 이어간다. 중간에 익은 고기 한 점을 얻어먹고 왔는데, 맛이 아주 기가 막히다!)


아무튼 그런 내가 지금처럼 밥이 다 되기까지, 고기가 익기까지의 찰나의 시간과 환경에서도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건 괄목할 만한 성장이다. 완벽주의적 성향을 모두 타파했느냐, 물론 그건 아니지만. 적어도 무언가를 할 때 대단한 마음을 먹지 않더라도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긴 했다.


글쓰기만 해도 그렇다. 연재를 시작한 지 어느새 6주 차, 어떤 주는 글감이 미리 떠올라 메모장에 적어두기도 하지만 또 어떤 주에는 당일이 되어서야 무슨 내용으로 글을 쓸지 고민하기도 한다.(오늘이 그렇다) 이전의 나라면 준비되지 않은 글을 써야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막막함에 노트북을 켜는 일 자체를 차일피일 미뤘을 것이다. 좋아서 시작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회피하기 위해 하기 싫다는 마음이 더 크게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 그냥 한다. 어떻게 한 글자라도 적고 나면 쓰고 싶은 말이 떠오르겠지 싶어 무작정 브런치에 들어와 글쓰기를 누른다. 빈 화면에 커서가 깜빡이는 걸 가만히 들여다보는 한이 있더라도 우선은 그렇게 한다. 그리고 모순적이게도 깊은 생각이나 별 결심을 하지 않고 행동하니 되려 쉬워졌다.


최근 어디선가 하기 싫은 일이 있을 땐 속으로 하나, 둘, 셋을 외친 후 바로 시작해 버린다는 글을 보았다. 지금 다시 찾으려니 못 찾겠지만 꿈에서든 어디서든 보긴 봤다. 그 글을 본 뒤 속는 셈 치고 종종 따라 해보고 있는데 효과가 나쁘지 않다. 


왜, 작심삼일을 여러 번 하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진심으로 꽤나 좋은 전략이라고 생각한다. 충동적이고 홧김이고 별 거 아닌 결심이어도 상관 없다. 결심은 그 자체로 제 할 일을 다 했을 뿐. 그저 조금 더 자주 작은 결심을 하면 될 일이다.


그렇게 쌓인 한 번 한 번이 모여 다섯 번이 되고, 열 번이 되고, 스무 번이 되고, 백 번이 되면 그때는 감각적으로 익숙한 상태가 되기 때문에 더 어렵지 않아진다. 그땐 정말 꾸준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늘 기억하자, 꾸준함엔 그다지 큰 결심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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