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하게 글만 쓰면 진지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실제로는 (요괴 지인 선정) 비연예인 중 가장 웃긴 사람 1위에도 오를 정도로 어디서든 꽤 웃긴 놈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나조차도 의욕 없는 시기엔 가장 먼저 유머 감각이 크게 줄어든다. 사람이 아주 그렇게 재미없어질 수가 없다. 재미만 없어지면 다행이게, 사소한 일에도 어찌나 예민해지는지 종종 까칠함이 최대치를 찍는다. 평소 같으면 깔깔댔을 이야기에 쓴웃음 마저 억지로 나올 때면 '지금 내가 힘들구나' 하는 사실을 알아채곤 한다.
예민한 순간을 유쾌하게 넘기는 힘, 그런 힘을 가진 사람들이 늘 멋져 보인다. 예를 들어 개인적으로 자주 언급하는 댄스 크루 '훅'의 리더 아이키 같은 사람. 살얼음처럼 긴장된 분위기까지도 순식간에 부드럽게 녹여버리는 그녀의 말과 행동은 성숙한 성인의 숙련된 인성을 세련되게 보여준다. 정말이지 실제로 알고 지낸다면 주변에 싫어할 사람이 있을까 싶은 멋진 캐릭터다.
유쾌하게 산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우리는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하기 싫어진다. 즉, 일정 수준의 유쾌함을 유지할 때 무언가를 지속할 수 있는 힘을 얻는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걸 내가 조절할 수 있긴 한 걸까?
심한 우울과 불안 증상을 앓을 적에는 당연히 불가능했다. 호르몬님께서 친히 관장하시는 바를 내가 어찌할 수 있겠는가. 그럴 땐 당연히 병원의 도움을 받았다. 증상이니까, 약으로 치료 가능한 부분이었다. 최소한 내가 나답게 사고할 수 있을 정도면 충분했다.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냉정한 현실이지만 정말로 마음먹기에 달렸다. 같은 상황이더라도 스스로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유쾌함과 불쾌함이 한 끗 차이로 결정된다.
내 경우엔 평소 여기저기 참 잘도 부딪친다. 덕분에 다리 부근에는 작은 멍들이 가실 날이 없다. 물론 부딪치면 매우 아프다, 어떨 땐 욕이 다 나올 만큼 아프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땐 짜증이 솟구친다.
아 짜증 나, 진짜 되는 일이 없네. 이건 또 왜 여기 있어!
괜히 물건에 성을 내기도 하면서 멍청한 나 자신을 더욱 질책한다. 그런 기분으로는 뭘 해봤자 잘 될 리가 없다. 일이 잘 안 되면 기분이 더욱더 안 좋아진다. 그렇게 구린 기분의 악순환에 단단히 빠져든다. 그렇기에 우리는 애초에 구린 기분을 의식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위의 사례에서 나의 차단법을 공유하자면... 우선 조금 미친 사람 같아 보일 정도로 아프다고 호들갑을 떨어본다. 아픔이 좀 가시고 나면 부딪친 물건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사과도 해본다. 죄송하다고, 괜찮으시냐고. (두 번 부딪쳤을 땐 '이것도 참 인연이네요' 뭐 그런 소리를 한 적도 있다. 사람 말고 물건한테) 이런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하다 보면 내가 나를 보면서 웃는다.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쓸 수 있는 방법은 진리의 사바사이니 꼭 저런 미친 방법을 택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부정적인 감정이 뇌를 지배할 틈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별일 아닌 듯 가볍게 넘기고 나면 그다음 일도, 그 다다음 일도 같이 가벼워진다. 작은 불행도, 큰 불행도 구태여 무겁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해결하는 데엔 결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태도가 가벼우라는 말은 아니다. 그렇게 오해하는 분은 없길 바라며)
최근에는 혼자 있을 때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각에 깊게 잠기는 시간도 늘었다. 생각할 시간이 많은 건 분명 좋은 일이지만, 때로는 불필요한 잡념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기도 한다. 건강한 홀로서기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꾸준히 유쾌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번 글은 앞으로의 나를 위한 다짐의 글이기도 하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재밌는 사람은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매력적이기 마련이다.
요괴야, 웃자, 즐겁자, 유쾌하자. 그리고 꾸준하자.
P.S. 요즘 내 유쾌 바이러스를 팡팡 돌게 하는 두 프로그램, '먹찌빠'와 '홍김동전'에게 애정과 감사를 바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