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직요괴 Nov 19. 2023

집안일도 꾸준한 걸로 쳐주세요

나의 평일 이동 루틴은 여느 직장인과 다를 바 없이 단순하다.


루틴 1) 집 > 회사 > 요가원 > 집
루틴 2) 집 > 회사 > 집 


가끔 퇴근 후 약속이 있는 날을 제외하면 집과 회사 요가원만을 반복한다.


난 전형적인 집순이로, 약속이 깨지면 희열을 느낄 만큼 그 무엇보다 집에 붙어있는 것을 좋아한다. 이건 여담이지만 노는 곳이 집에서 멀어질수록 지쳐 보인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에너지 레벨이 급격하게 떨어지는 편이다. 다행히도 여행은 좋아한다. 숙소를 집으로 생각해서 그런가?


그렇다고 활동성이 떨어지는 사람은 아니다. 집에 있을 때의 내가 얼마나 바쁜지는 한 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기본적으로는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는 시간을 즐기지만 그러다가도 갑자기 할 일이 생각나면 말벌 아저씨처럼 후다닥 일어나 일을 해치워버리곤 한다. 매번 말하지만 게으른 사람 중에서는 부지런한 편.



(말벌 아저씨가 누구신지 모를 분을 위해 만들어본 움짤)

원본 영상 출처: MBN Entertainment 유튜브 채널



집을 그렇게나 사랑하는 이유는 아마도 '통제 가능한 공간' 이어서가 아닐까 싶다. 그래서 본가에 살 때는 항상 내 방안에 머물러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사는 곳에서도 그 방만큼은 오롯이 나만의 공간이었으니까. 이처럼 통제성이 워낙 강한 인간인 나는 깔끔병까지 더해진 탓에 퇴근 이후 집에서의 시간을 온통 집안일로 보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본가에서 독립한 후 초반에는 이게 맞나 싶을 정도로 온전한 개인 시간이 너무나 부족했다. 뒤돌면 떨어져 있는 바닥의 머리카락, 숨 돌릴 틈도 없이 쌓여가는 물건 위 먼지, 옷을 벗기만 하면 산처럼 쌓여가는 빨래, 화장실에 물때는 어쩜 그리 잘 생기는지. 분명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에서 보내고 왔는데, 아무도 없던 집에 왜 이리 일이 쌓여있는 걸까.


답답한 마음에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눈을 적당히 흐리게 뜨고 살아야 한단다. 흐린 눈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요... 더럽고 지저분한 상태가 계속 신경 쓰여 무엇 하나 제대로 집중할 수가 없다. 어차피 언젠가는 해야 할 것들인데 미뤄서 일만 키우는 느낌이라 찝찝하고 불편한 그런 감정. 


예민한 사람의 인생이 증말 이렇게 피곤합니다.


출처: 네이버 웹툰 '독립일기'



겨우 일을 끝내고 돌아와서 해야 하는 게 또다시 일이라니. 게다가 이 놈의 고약한 집안일은 내게 주말도 휴일도 허락해주지 않는다. 아무리 깨끗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더라도 최소한의 휴식권은 보장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과 함께, 어떻게 해야 집안일에서 조금이나마 해방될 수 있을지 여러 옵션을 고민하게 되었다.


더러움을 흐린 눈 뜨고 보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니 바로 제외하고, 기타 후보들을 두고 고민하다가 결국 가장 현실적인 방안을 택했다. 바로 나의 노동을 대신해 줄 수 있는 물건을 들이는 것. 그렇게 나만의 원칙을 만들어 가전제품을 이것저것 구매하기 시작했다.


요괴의 가전 구매원칙 제1조:
인간의 수고로운 노동을 혁신적으로 덜어줄 것


구매원칙 제1조에 가장 부합하는 제품 중 하나는 뭐니 뭐니 해도 로봇 청소기다. 비록 품절 사태로 인해 원하는 제품을 사기까지 몇 달을 기다려야 했지만, 사용해본 결과 기다린 시간과 비싼 가격이 전혀 아깝지 않다.


사실 난 깨끗하지 않은 바닥과 침구류에 가장 민감한 편이다(몸에 닿는 곳이 깨끗해야 하는 일종의 강박). 그러나 정말 물리적인 한계로 인해 바닥 청소를 매일 할 수 없어 큰 스트레스였던 차에 로봇 청소기와 함께하면서 행복을 되찾았다. 어플로 설정해두기만 하면 집에 아무도 없는 시간을 골라 바닥을 아주 뽀득뽀득 깨끗하게 청소할 수 있다. 쓸고 닦는 걸로 모자라 걸레도 직접 빨고 건조까지 하는 말도 안 되는 똑똑이다. 게다가 청소기 소음에서도 벗어날 수 있으니 이걸 1석 몇 조라고 말해야 충분할까.


아무튼 평소 나는 이 청소기에게 존칭을 쓸 정도로 감사함과 만족을 느낀다. 이 자리를 빌려 말하자면... 로봇 청소기 개발자분 정말 고마워요. 들숨에 재력 날숨에 건강 얻으시길!


글이 갑자기 로봇 청소기 대만족 후기가 된 것 같아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면, 이 외에도 구매한 가전제품들은 내게 그 누구도 주지 못했던 시간적 여유를 가져다주었다. 물론 수많은 집안일을 모두 가전이 대체해주지는 못한다. 또한 가전제품도 관리를 해줘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일이 추가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축적된 여유 시간들은 내가 다른 일을 고민하고 기웃거릴 수 있게 만들었고, 그 덕분에 이렇게 다시 브런치에 주기적으로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난 여전히 집안일로 바쁘다. 사람만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은 하루에도 수십 개가 넘게 생겨난다.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적어도 5번 이상은 일어나야 했다. 집안일은 꾸준함으로 안쳐준다 하면 억울한 마음이 들 것 같다.


만약 이 글을 보시는 집안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분이 계시다면, 제가 뭐라고 감히 인정해 드리겠습니다.

당신은 정말 꾸준하고 멋진 사람이에요.


출처: 구글 검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