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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승띵 Mar 19. 2024

니가 뭐 대학병원 교수? 교수는 무슨 얼어 죽을 교수야

전세사기나 치는 주제에

 나는 현재 서울특별시 동작구 6평짜리 원룸(다가구주택)에 1억 1천만 원의 전세보증금을 지불하고 살고 있다. 그중 8천만 원은 은행에서 대출받았고, 3천만 원은 최저시급 월급 받던 사회초년생 시절부터 조금씩 모아 왔던 피 같은 내 돈이다. 앞으로는 '순식간에 사라질지도 모를 3천만 원'과 '내 손으로 만져본 적도 없이 평생 갚아야 할 8천만 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상황이 일어난 지금, 나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감정적으로 호소할 시기는 끝났고 뭐라도 해야 한다. 이렇게 직접 글을 써서 세상에 알리는 것처럼.


 집주인의 남편이 대학병원 교수, 즉 의사라는 것을 알게 되자 불쾌한 안도감이 들었다.


대학병원 교수면 돈 많지 않을까? 대출도 잘 나올 테고,
그럼 내 보증금은 돌려받을 수 있을지도?


 참고로 남편도 내가 사는 건물의 '공동명의인'이다. 좀 더 조사해 보니 대학병원 부원장까지 한 사람이었다. 그 정도면 이미 부, 명예, 권력, 지위 등 갖출 만큼 갖춘 사람일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임대인도 지금 잠깐 자금 사정이 어려워졌을 뿐이고, 금방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런 상황을 가족은 물론 친구에게도 쉽사리 털어놓지 못하는 내 심정은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답답함을 느꼈다. 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냐고? 저때만 해도 이 상황이 금방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 모든 상황이 종료되면 가벼운 썰(?) 풀 듯 이야기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지금에서야 말하기엔 괜한 두려움과 자존심, 그리고 여러 가지 감정들이 선뜻 이야기하기 힘들게 만들었다.


 결국 이 답답한 상황과 심정을 익명 커뮤니티에 올려보기로 결심한다.

 전세계약 곧 끝나가는데 임대인 연락도 안되고 집 압류 걸렸네요. 임대인 소유 다른 건물은 경매 넘어갔고요. 공동명의인은 대학병원 부원장까지 했던 사람인데 저 보증금 돌려받을 수 있겠죠? ㅠㅠ

 저 글을 보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진 못해도 그저 내 상황에 공감해 주며 위로를 받고 싶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댓글이 달렸다.


 안녕하세요, XX일보 OOO기자입니다. 관련 내용으로 만나 뵙고 싶은데 쪽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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