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가량 다니던 헬스장을 관두고, 호기롭게 도전해 본 수영장도 세 달 만에 끝냈다. 그 이후 출퇴근만 반복하며 일상을 흘려보냈다. 흘려보낸다는 사실이 점점 날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말을 누군가가 해주길 바랐던 걸까? 하지만 내 주변엔 대단한 사람들이 가득했다. 퇴근 후 골프 강습을 받는 친구, 주말에 농구 학원을 다니는 직장 동료, 바디 프로필을 준비하는 지인들의 모습을 보니 뭐라도 해야 될 것만 같은 강박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직장 동료분께서 필라테스를 추천해 줬다. 그 이유는 왠지 나랑 잘 어울릴 것 같다는 것이다. 필라테스가 잘 어울리는 남자라… 뭐가 됐든 잘 어울리기만 하면 장땡(?) 아닌가 싶다. 말린 어깨, 굽은 등, 앞으로 쏠린 목, 틀어진 골반, 무너진 아치. 성한 곳 하나 없이 볼품없는 내 몸뚱이를 교정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끌렸다. 그리고 집 근처 필라테스샵 몇 군데에 전화했다.
필라** : 저희는 남성 손님은 받질 않아서요.
바디** : 남자분이시면 1:1 개인 강습만 하실 수 있어요.
저 그냥 남자일 뿐인데요. 이렇게 안 되는 것들이 많았어? 순수하게 필라테스를 하며 체형 교정을 하고 싶었을 뿐인데 열정을 꺾이게 하는 이유가 성별이라니 슬펐다. 이런 고민을 직장 동료들에게 말하자 새로운 정보가 쏟아져 나왔다. 바로 집 근처가 아닌 회사 근처로 알아보라는 것. 그리고 다시 회사 주변 필라테스샵과 요가 학원을 알아봤다. 역시 강남이었다. 성별이 어떻든 상관 않고 일단 방문부터 하라는 공격적인 홍보 멘트가 다소 부담스러웠다.
또 다른 어느 날, 회사 점심시간을 이용해 근처 도서관을 갔다.
역시 점심시간에 방문하는 도서관이 최고야. 조용하고 짜릿해(?)
느긋하게 책 몇 권을 빌려 나오는데 주민센터 헬스장이 눈에 들어왔다. 정확히 말하면 헬스장 입구에 붙어있던 다양한 강좌 목록들에 내 시선이 꽂혔다.
[**주민센터] 요가/필라테스/탁구/골프 등 체육 강좌 신규회원 모집 중!
어라, 왜 이걸 생각 못했지? 가격도 저렴하고 시간도 딱 맞아떨어졌다. 내가 원하는 시간은 출근 전 요가와 필라테스로 하루를 여는 아침이었다. 평소보다 30분만 일찍 일어나서 가면 될 것 같았다. 이거 완전 미라클 모닝인데? 다른 건 재지 않고 곧바로 다음 달 신규 회원 등록을 했다.
그렇게 나는 지금 3개월째 월·수·금 요가, 화·목 필라테스를 하는 남자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