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신 미약(心身微弱)
다른 날 쓴 글이다.
딸아이가 운동을 하고 ‘Late Bus’를 타고 집 앞 쇼핑몰에 하차를 한다고 해서 데리러 갔다.
보통 스쿨버스는 Door to Door지만 원정 게임을 다녀올 때는 부모님들이 데리러 오기 쉬운 접근 포인트에 아이들을 내려준다.
그날은 외출을 하고 집에 돌아온 후 기다렸다 아이를 데리러 나갔다.
버스에서 내린 아이를 반갑게 맞이해서 집으로 돌아가는데 아이가 “엄마, 친구가 엄마 왜 이렇게 젊냐고, 20대인 줄 알았대.”
난 또 “진짜?”냐고 물었다.
외출한 덕에 화장도 하고 운동복을 입지 않고 와서 다행이라고 살며시 안도했고 멀리서 봐서 그것이야말로 진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곳 사람들은 대부분의 아시아인을 나이보다 훨씬 어리게 본다.
그러니 젊어 보인다는 말은 나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다.
좀 더 제대로 얘기자하면 난 노안에 가깝다.
나는 초등학교 저학년 이후로 늘 뒷좌석에 앉았다.
얼굴도 얼굴이지만 큰 키는 성숙해 보이는 경향이 있었다.
사람들은 나를 중학생 때는 고등학생으로, 고등학생 때는 대학생으로 보았다.
대학교에 들어가 처음 과모임을 하는데 과대가 나에게 술병을 들고 와 아주 예의를 갖춰 술을 따라줬다.
나중에 들으니 내가 선배인 줄 알았다고 한다.
재수하고 들어 왔다는 그의 얼굴도 만만치 않았음에 더욱 기분이 상했다.
직장 생활할 때 친하게 지내던 언니들은 나보다 꼭 한 두 살이 많았는데도 사람들은 나를 언니로 보았다.
그리고 마스크를 벗으면 사람들이 이런 말을 했다.
(마스크를 썼을 때는) 청년인 줄 알았다고…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을 걸 그랬다.
그리고 남편과 꽤 벌어지는 나이차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차이나는 줄 몰랐다는 사람들의 반응 또한 나의 노안과 그의 동안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런 나도 고등학교 1, 2학년까지는 나름 괜찮았다.
친구들은 젖살이 빠지고 예뻐졌지만 난 젖살이 있어서 예쁜 나이였다.
그렇게 대학생이 되어 여러 모임과 술자리에서 남자들이 예쁜 친구들과 은근히 혹은 대놓고 차별하는 것을 겪으며 나도 모르게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렸던 것 같다.
그래서 나의 부족한 점을 옷으로 커버하고 싶었지만 그때는 학생이라 돈이 없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많은 옷을 사고 입어봤지만 역시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었다.
낮아진 자존감을 끌어올리려 멋을 내보아도 원판을 감출 수는 없었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남자 진행자가 여자 진행자에게 젊은 얼굴이지만 마음이 늙은 것과 얼굴은 늙었지만 마음이 젊은것 중에서 어떤 것이 좋냐고 물었을 때 난 그녀가 당연히 전자를 선택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후자를 택했다.
거울만 안 보면 자신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답변이었다.
그녀는, 예뻤다.
아마 외모로 인한 불이익이나 차별 같은 것을 겪어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몸도 마음도 젊었을 때 겪었던 차별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마음은 늙는 게 아니다.
단지 몸이 마음처럼 따라주지 않고 아플 때 그저 약해지는 것이지 늙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