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사게 되는 이유(마지막)

심신 미약(心身微弱)

by 우아한 우화


작년 10월에 튀르키예로 비전 트립을 갔을 때 공항에서 돈을 환전했다.

금액이 클수록 환율이 좋다고 해서 나 포함 4명이 함께 환전을 했다.

그중에서 내 나이가 제일 적었고 대부분이 50대 중후반이었다.

그런데 환전소 남자 직원이 나이가 제일 많은 사람에 돈을 주겠다며 나에게 건네주었다.

그때 난 돈을 세고 있어서 이 말을 듣지 못했는데 옆에 계셨던 분들이 내 나이가 제일 적다고 얘기해서 그런 얘기가 있었다는 걸 알았다.

그도 나도 당황했고 외국인 눈에도 나이가 들어 보이는 외모라는 걸 그를 통해 확인받고 나니 기분이 침울해졌다.

한두 살 차이도 아니고 강산이 변할 정도의 차이인데도 내 얼굴은 그 세월을 뛰어넘는 시간을 담고 있었나 보다.

여행 초반부터 기분이 상해 사진도 많이 찍지 않았다.


유튜브에서 팔자 주름이 고민이라는 어느 사연자의 말에 의사는 팔자 주름이 고민이신 분은 정말 팔자가 좋은 사람이라고 했다.

다른 걱정이 없어서 그 주름이 보이는 것이라며 나는 팔자가 좋다,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얘기였다.

나에게도 크고 작은 근심이 있지만 가끔 거울을 들여다보며 깊어진 주름들을 살피곤 한다.

팔자가 좋아서라기보다는, 주변의 반응으로 내가 노안이라는 사실을 입증받을 때마다 마음이 언짢아져 내가 그렇게 노안인가, 거울을 보며 내가 가진 노안의 조건들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자존감이 낮아서 사람들의 말에 휘둘리는 걸까?


써온 글들을 보면 사람들 말에 신경 쓰지 말고 내면을 더 견고히 하자고, 자유로워지자고 다짐했던 것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장바구니에 옷을 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는 날이 더 많았다.

그런 날은 허전한 마음을 메우기 위해 장바구니를 채웠다.

누군가와 비교되거나 외모와 관련한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았을 때 대부분 그랬던 것 같다.

내가 나를 사랑하고 존귀하게 대하면 비교와 평가 따위 개나 줄 수 있을까?

타인의 인정에 기대지 않고 살아가면 내 장바구니는 가벼워질 수 있을까?

견고한 자존감을 가지게 되면 타인의 비교와 지적에 절대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까?


주변에 화장도 하지 않고 멋 내는 것에 도통 관심이 없는 사람이 두 명 있다.

이들은 주변 사람들의 말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신념(?)을 지킨다.

당당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러나 그들의 자유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나에게 와서 수군대는 사람들이 있다.

오지랖인지 걱정인지 뒷담화인지 모를 얘기를 듣고 있자면 내 얘기처럼 마음이 불편해진다.

내가 미용디톡스를 시작하면 내 얘기도 저렇게 하겠구나 싶은 게 아직 스스로도 준비가 안된 마음에 더욱 빗장을 걸게 된다.

그러든가 말든가 사람들 말에 무신경해지는 그날이 디톡스가 완성되는 날이 될 것 같다.

언젠가는 기필코 타인의 기준이 아닌 내 삶을 살아내고 말겠다.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옷도 재귀성을 지닌다고 말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옷들은 단순히 우리를 따뜻하게 해주는 것보다 더 중요한 지위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세상을 보는 우리의 시각과 우리를 바라보는 세상의 시각을 바꾼다. 우리가 옷을 입는 것이 아니라 옷이 우리를 입고 있는 것이다. 즉, 우리의 팔이나 가슴의 형태대로 옷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옷의 취향을 좇아 우리의 감정, 이성, 말이 형성된다.”


타고난 외모야 어쩔 수 없지만 옷으로 나만의 독특한 스타일과 분위기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나에게 어울리는 것이 아닌 타인을 모방하고 그때그때 유행하는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이도저도 아닌 것이 되었다. 이 옷 저 옷 뒤죽박죽 섞인 모습이 내 마음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몸매와 행복은 정말 관련이 있을까?’ 표지모델 56명과 일반인 여성 56명을 모집해, 이들이 느끼는 즐거움과 만족감을 비교하는 심리학 연구가 있었다. 그 결과, 우리가 외적으로 ‘선망’하는 모델들이 일반 여성보다 심리 문제를 겪고 있을 확률이 더 높으며, 자존감 또한 더 낮았다. 왜일까? 아름답다는 칭찬을 자주 듣는 모델들은 외부 피드백에 더 의존하는 습관이 형성된 탓에 자신을 긍정하는 마음과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하는 데 소홀했기 때문이다. 이 연구과 관련하여 나는 출중한 외모를 가진 모델 친구를 직접 인터뷰해 보았다. 결과는 위의 연구와 완벽하게 동일했다. 이들은 일반인 못지않은 외모 불안을 느끼거나, 오히려 자신에 대한 요구치가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잠시 쉬어가세요, 런던의 심리상담실, 인이이 지음, 이든 서재 >


외모와 관련한 부정적이거나 긍정적인 표현은 어쨌거나 사람들에게 심리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오래전에 깨달았다. 어쩌다 외모와 관련한 칭찬을 듣게 되면 그 칭찬에 부응하기 위해 다음에 더 신경을 썼던 경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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