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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리J Dec 25. 2023

전시장 벽면에 걸린 그림


우여곡절 끝에 다가온 전시.

마지막까지 바쁘기도 했고 워낙 신경 쓰이는 일을 거쳤다 보니 크게 기대가 되지 않았다.


전시장까지 거리가 꽤 되는 데다가 날씨도 추워지고 있어 마지막까지 갈지 말지 고민을 하다가 출발했다. 주말에 푹 쉬고 싶었으나 육만 원이나 낸 도록을 받아야 할뿐더러 직접 반출하지 않은 작품은 꽤 높은 배송료를 내고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공모전에 참가하는데 쓴 금액을 생각해 보면 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귀찮음을 이기게 하는 금액이었다...


가는데 한 시간 반, 왕복은 세 시간 정도 걸리는 곳을 혼자 갔다면 가는 길이 심심했을 텐데 동생이 흔쾌히 함께 가주기로 했다. 예전에 동생이 다니던 학원에서 하던 전시를 갔던 기억도 새록새록 났다. 동생은 아크릴화를 잠깐 했었는데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그림들의 느낌이 좋아서 나도 배우고 싶어질 정도였다. 다른 수강생들의 큰 작품을 보는 것도 즐거웠고 말이다.



심심하지 않게 해 준 동생에게 근처에서 맛있는 점심을 사주고 전시장으로 들어갔다. 전시장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 그리고 입구에는 작품을 반출하는 사람들로 조금 북적였다. 전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고 반출하기 위해서 반출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 이미 반출된 작품들이 많았다. 아마 칼같이 지키는 방침은 아닌 모양이었다.


반출은 마지막으로 미루고 조각과 한국화, 유화 등등 다양한 작품을 천천히 구경했다. 동생과 나는 서로 마음에 드는 작품들을 이야기하기도 하고 나중에 그려보고 싶은 작품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각자의 취향이 달라서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도 있었다.


한 바퀴를 다 돌아갈 때쯤, 민화 작품들이 모인 구역이 나왔다. 다른 참가자들이 어떻게 색을 칠했는지, 어떤 작품을 가장 많이 그렸는지를 보며 각 작품을 동생에게 설명했다. 앞선 작품들처럼 동생은 그림과 이용된 색을 위주로 이야기했으나 내 감상은 조금 달라졌다.


이 작품을 만들어내는데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을까.


손바닥만 한 작품을 그리는데도 수백 번의 바림을 해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벽면을 다 차지할 정도의 작품을 칠할 정도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그 뒤에 숨어있을지가 느껴지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내 작품 앞에 도착했을 때의 기분은 참 묘했다.


20 호면 그렇게 작은 사이즈의 작품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작품들 사이에 있으니 엄청나게 작아 보였다. 감흥이 없을 줄 알았는데 전시장 벽면을 차지하고 조명을 받고 있는 그림을 보니 얼마나 열심히 그렸는지가 떠올랐다. 이 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나오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작품을 내리려고 보니 높이 걸려있어서 손이 닿지 않았다. 전시장에 굴러다니던 철제 사다리를 끌어와 작품을 내리고 돌돌 말았다. 다행히 입구에 포장재가 있어서 훼손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다.


상장과 도록까지 받아서 챙겨 나와 돌아가는 길에 도록에 담긴 여러 작품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구경했다. 수많은 사람들의 시간 끝에 탄생한 작품을 보고 있으려니 느낌이 색달랐다.


집에서 나올 때는 귀찮으니 앞으로 공모전에 참가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돌아가는 길에는 이런 기분을 한 번 더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다음 공모전을 찾아볼 정도였다.



공들여 그린 그림이 전시장의 벽면에 걸리기까지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행복한 일만 있던 건 아니지만 공모전에 참가해 전시라는 걸 체험해본 건 새로운 경험이자 추억으로 남았다. 이는 앞선 일들까지 하나의 경험으로 덮어둘 수 있도록 마침표를 찍는 행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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