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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리J Dec 18. 2023

제 그림을 잃어버리셨나요?

우체국 등기는 참 편리했다. 일상이 바쁘기도 했고 혹시 연휴와 겹쳐서 늦어질까 봐 바로 접수했는데 그다음 날에 배송이 완료되었다는 알림까지 보내줬다.


빠른 배송과 더불어 누구에게 전달했는지까지 알려주니 첫 공모전 참여에 미숙한 점이 있어 잘못될까 봐 떨렸던 마음을 진정시키고 일할 수 있었다. 일단 제출한 이상 모든 평가는 주최 측에 달렸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2차 발표를 며칠 앞두고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받아보니 상대는 공모전 주최 측이었다. 당황스러운 것도 잠시, 내용은 더 황당했다. 내 작품을 찾을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전화를 받고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내 작품에 발이 달린 것도 아닐 텐데 사라졌다니? 그것도 지금?


작품을 택배로 보낸 것은 거의 한 달 전 일이었기에 더 당황했다. 언제 사라졌는지 알 수 없다면 더 큰 문제가 아닌가.


전화를 주신 분은 내가 택배를 언제 보냈는지를 물었고 나는 생각나는 대로 답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도 당황해서 머리가 잘 굴러가지 않았다. 작품 분실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에 놀랐다.



이후 두 번째로 온 전화에서도 언제 택배를 보냈는지와 어디 택배사를 이용했는지 등을 물었다. 다시 대답하는데 내가 제대로 택배를 보냈는지를 주로 묻는 것 같아서 기분이 조금 묘했다. 이미 등기로 보내서 잘 받았다고 우체국 확인까지 받은 걸 내게 물으면 어떻게 하라는 거지,라는 생각도 들었다. 일하던 중 갑작스레 걸려온 전화에 신경이 날카로워졌던 것 같다. 보관에서 생긴 문제이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서 더 그랬다.



다음 날에는 문자가 왔다. 여전히 찾지 못했는지 택배사 이름과 택배 번호를 알려달라는 문자였다. 우체국에서 보내준 알림을 복사해서 보냈다.


그러면서 등기를 통해 보낸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일반 택배로 보냈다면 내가 제대로 보냈다는 것과 주최 측의 수신여부를 입증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랬다면 택배사와 따로 연락을 했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피곤했다. (앞서서 작품을 등기로 보내서 다행이라고 한 게 이것 때문이다.)




그 밖에도, 오랜 시간을 들여 완성한 작품이 사라졌다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잠시 골머리를 앓았다. 접수비처럼 얼마인지 딱 정해진 금액 말고 내 작품이라든가 투자한 시간 같은 것은 어떻게 환산할 수가 없었다. 공모전 측이야 그저 그런 작품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내게 있어서는 가치 있는 작품이니 말이다.


몇 주에 걸쳐 만들어낸 작품이 대체 어디로 간 것인지 행방이 궁금했다. 어딘가에 버려지지만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렇게 한숨과 함께 시간을 보내던 중에 내 작품을 찾았다는 문자가 왔다.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 보관을 어떻게 했길래 며칠 동안 찾지 못한 것인지 의문이 생기기도 했으나 넘어가기로 했다.


작품을 찾은 게 다행이면서도 없어지지 않는 게 정상 아닌가 하는 싶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불편한 감정이 들 정도이니 바쁜 일상 속 마음에 들지 않는 해프닝이었던 건 분명했다. 다들 심혈을 기울인 작품을 보내는 것인 만큼 보관 등에 조금 더 신경 써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표 전에 이런 일을 겪고 나니 진이 쭉 빠져서 결과 발표에도 별 감흥이 없었다. 그냥 엄청 복잡한 일을 해치운 것 같은 기분에 뿌듯함 같은 게 생길 틈이 없었다.



이런 상태로 공모전을 거의 잊고 지내던 중, 전시 날짜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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