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젤리J Dec 04. 2023

어쩌다 민화 자격증까지

자격증 따기로 한 이유


자격증을 따기로 한 건 이걸 이용해서 수업을 하겠다거나 직업으로 삼겠다거나 하는 거창한 이유 때문이 아니다. 그저 시험이나 대회 등을 통해서 실력이 급속도로 늘어나는 사람이라 선택하게 됐다. 그리고 취미에는 목표가 있어야 오래 즐길 수 있다고도 생각하는 편이기도 했다.


그래서 처음 학원을 결정할 때도 추후 자격증까지 연결시킬 수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했다. 보통 자격증을 준비한다고 하면 일정한 커리큘럼이 있는 법인데 이렇게 진행과정을 알 수 있는 게 좋았다.


민화 자격증은 국가 공인이랄 건 없고 사단에서 진행하는 민간 자격증이 있다. 그중에서 내가 선택한 자격증은 2급과 1급으로 나뉘어 있었다. 당시 민화에 많은 시간을 낼 수 없었기에 딱 2급까지만 따자고 마음먹었다.


민화를 5월에 시작해서 2급 자격증 시험은 2월에 응시했으니 9개월 만에 딴 셈이다. 빠른 편은 아니다. 학교, 아르바이트, 여행 등등의 일정으로 빠진 날들도 많아서 시험 분량을 완성하려면 오래 걸렸다. 매주 하루 있는 수업이다 보니 3주 넘게 빠진 날들도 많았다. 정해진 요일에 꾸준히 나갈 수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이보다는 기간이 덜 걸릴 것이다.


자격증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총 아홉 가지 작품을 완성해야 했다.


연화도(기초), 호작도, 초충도, 책거리, 문자도, 화접도, 연화도(심화), 궁모란도 1,2


이중 가장 어려웠던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코 궁모란도라고 하겠다.




궁모란도


궁모란도는 특이하게도 두 그림이 한 쌍이 되는 대형 작품이다. 같은 그림을 두 번 그리면 되는 것이니 오히려 편하지 않느냐고 할 수도 있지만, 한 작품을 끝내고 다른 작품을 들어가는 방식이 아닌 동시에 진행되어야 하는 작품이라 만만치 않다.


이 두 그림을 나란히 놓았을 때 꽃과 나뭇가지의 색이 달라서는 안 되기 때문에 물감을 한 번에 만들어서 진행한다. 중간에 물감이 부족해 추가해서 섞으면 색이 바뀌기 때문에 처음 만들 때 넉넉하게 만들어야 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같은 부분을 다른 날에 칠하기도 애매해졌다. 물감을 굳혔다가 일주일 뒤에 물을 섞으면 색이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진에서는 잘 느껴지지 않지만 꽃 한 송이가 손바닥만 할 정도로 대형 작품이라 칠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래서 궁모란도 작품을 들어간 순간부터 학원에 머무는 시간이 대폭 증가했다.


전에도 네 시간 정도 가만히 색을 올리다 보면 어깨가 아팠는데 궁모란도를 그리며 여덟 시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한 자세를 고수했다. 계속 붓을 잡고 있던 데다가 궁모란도를 진행하던 때가 추운 겨울이라 난방을 틀었다고 해도 새어 들어오는 찬바람에 손가락이 굳어 감각이 사라지기도 했다.


점심때 도착해서 밤이 되어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굳은 손가락을 풀며 취미를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고민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시험 일정을 미루고 싶지 않았고 한 번 시작한 이상 끝을 제대로 보자는 생각으로 계속 나갔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나가지 못하는 기간이 길어질 때면 작품을 챙겨 와서 집에서 숙제처럼 해가기도 했다.


완성작

그렇게 틈틈이 색칠한 끝에 2개월 만에 궁모란도 작품을 끝낼 수 있었다.


완성하고 나서는 뿌듯함보다는 작품을 쳐다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너무 진을 뺀 탓이다.


하지만 자격증 시험에 제출할 사진을 인화하고 파일을 만들다 보니 뿌듯함이 서서히 피어났다. 이렇게 많은 작품들을 완성했다는 게 신기했다.



민화 시험


민화 시험은 궁모란도를 가져가서 발표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발표는 1분으로 준비하라는 안내를 받아서 1분을 딱 맞춰갔는데 생각보다 다들 길게 발표하셨다. 오히려 1분 발표로 끝나면 질문이 좀 많이 들어왔다.


시험장은 딱딱한 분위기보다는 2급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느낀 회포를 푸는 시간이었다. 아무래도 민화를 즐기는 분들의 나이대가 있다 보니까 삶에서 우러나오는 경험과 진솔한 생각을 듣고 많이 배울 수 있는 자리였다.


나뿐만 아니라 시험장에 오신 분들 모두 궁모란도 작품을 진행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는 말들을 듣고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 어려운 과정을 끝내고 시험장까지 온 모두에게 진심에서 나온 박수를 전하며 시험을 마쳤다.



결과는?


자격증 시험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고 현실의 일들로 바빠서 잊고 있을 무렵 결과가 나왔다.


결과는 합격. 부족한 면이 있을지라도 열심히 했기 때문에 불합 할 거라는 걱정은 없었다. 내 이름이 박힌 자격증을 받고 나니 비로소 시험을 마무리했다는 실감이 났다.



무언가에 열정을 불태우고 받는 결과물이 달콤하다는 것을 느낀 날이었다. 예전에 시험을 포기하며 바닥을 쳤던 자존감이 회복되는 계기이기도 했다.

이전 05화 몰입의 시간과 결과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