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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리J Nov 20. 2023

같은 장소, 같은 취미, 다른 나이


민화 교실의 수업 풍경


출퇴근하며 항상 가던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택하면 이런 곳이 있나 싶었던 새로운 건물, 새로운 나무,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난다. 규칙적인 일상에서 벗어나면, 아주 조금만 비껴가더라도 새로움을 만나게 된다. 그러한 발견은 낯설지만 두렵지는 않다고 해두겠다.


취미도 그러하다. 비슷한 연령대끼리 즐길 수 있는 취미도 있지만, 나와는 전혀 교점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 즐기는 취미도 있다. 사람들의 관심사란 나이라는 것만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예전에 시에서 여는 강좌를 취재하러 나간 적이 있다. 클래식 수업이든 낭독 수업이든 다양한 연령대의 수강생이 모여있었다. 나이가 지긋한 노인분들도 있었고 이제 막 대학에 들어간 것 같은 학생도 있었다.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라면 모를까, 같은 장소에서 같은 것을 배우리라고는 생각도 못해본 이들이었다.



내가 새로 등록한 민화 수업도 연령대가 다양했다. 20~70대까지 모두 모여 앉아 그림에 집중했다. 분포를 따지자면 5,60대 쪽으로 쏠려 있기는 했는데 그래서인지 이 수업에서 새로움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열살이든 스무살이든 마흔살이든 예순살이든 심지어 백살이든 취미라는 분야에서는 나이라는 벽이 없다. 오히려 직장보다도 다양한 분포를 보인다. 직급이 없이 모두가 '학생'이고 말이다.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과 같은 주제로 모인다는 건 의외로 안정적이고 편안한 시간이었다.


연세가 있으신 수강생 분들은 먹을 것을 항상 쫌쫌따리 싸 오셨다. 교실의 모두에게 돌아갈 정도로 넉넉한 양이라 덕분에 그림을 그리며 배고플 일이 없었다. 심지어 사 오신 커피도 따라서 나눠주셨다!


작품에 집중하다 보면 중간에 밥을 먹으러 나가는 것을 까먹는 일이 자주 생기던 내게는 특히나 더 소중한 나눔이었다. 한과나 떡, 전병 과자 과자 등등 내가 잘 사 먹을 일이 없는 것들을 즐길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디서 파는지 관심도 없었던 전병 과자 과자를 오독오독 씹으며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먹는 것도 바뀌게 되는구나,를 느꼈다.



먹는 것뿐만이 아니다. 듣는 것도 바뀌게 된다. 교실에는 라디오가 있었는데 시간마다 다양한 라디오 방송이 흘러나왔다. 라디오라니. 그런 게 아직까지도 존재하는지 몰랐다. 라디오 방송의 애청자가 많다는 것도 그때에야 알았다.


민화 교실에서 듣는 것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잡음 섞인 소리이기도 하고 수강생들의 이야기이기도 했다. 내게는 너무나 낯선 옛날 옛적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오늘 날씨가 너무 춥다거나 지금 하는 작품이 너무 어려워서 빨리 끝내버리고 싶다는 공감 가는 이야기기도 했다.


내가 살아온 시간보다 세 배나 넘는 시간을 살아오신 분들을 보면 생각도 다를 것 같지만 꼭 그렇지는 않았다. 색칠이 망하면 좌절하는 건 그분들도 마찬가지다. 좀처럼 늘지 않는 색칠 기법에 강사에게 혼도 나면서, 같은 반 학생이 된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처음에는 다른 수강생분들과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나도 모르게 긴장했는데 모두가 같은 반 학생이라고 생각하고 나니 편해졌다. 역시나 같은 취미 아래에서 공유되는 같은 고민이 있는 법이다. 나이보다는 가지고 있는 열의에 따른 차이라고 하겠다.




문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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