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친구 엄마들이, "지은이 엄마는 참 예쁘시네~" 하셨다. 학원 선생님도 학교 선생님도 한 마디씩 하신다. "엄마가 참 예쁘시더라"
농담도 잊지 않는다. "지은인 아빠를 닮았나 보네" 언제 웃어야 하는건지..
내 20대 전성기 때, 뭘 안 발라도 예뻐야 할, 푸르다 못해 푸르뎅뎅하던 시절,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친척 모임에라도 갈라치면 어릴 때 핀잔받던 게 생각나서 더 꾸미고 갔던 것 같다. 립 라인도 크게 잡고, 입술도 더 진하게, 눈꼬리도 샤악 빼서 올리고, 눈도 더 깜빡이고 안 신던 힐도 찾아 신고... 친척들이 어머머, 얘가 지은이야? 예뻐졌네, 어머머 키가 많이 컸네.... 그다음은 뻔하다. 그래도 자영이 젊었었을 때만 못하지? 자영이가, 늬이 엄마가 얼마나 예뻤는데, 그래그래, 자영이가 예뻤지, 하며 갑자기 나는 그 자리서 사라지고, 오지도 않은 젊었던 엄마가 나타난다.
엄마는 친척들 사이에서 전설이다. 625 직후 깡시골 그 동내에선 무슨 여자를 학교를 보내냐는 분위기였단다. 중학교만 보내도 동내에선 그 집 살만한가 보네 하면서 쌀이며 보리를 꾸러 왔다고 한다. 1남 6녀 중 장녀로 태어난 구 씨 집안 우리 엄마는 공부를 참 잘했다고 전해진다. 어려서부터 어디서나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공부를 곧잘 하니 그래, 중학교까지는 보내주마 했는데 졸업 즈음 그 당시 그 지역 명문이었던 한 상업고등학교에 붙었다. 밑으로 줄줄이 동생들 뒷바라지하려면 공장보다는 은행이 낫겠지 하며 또 고등학교도 보내졌단다.
공부를 썩 잘하니 고등학교 2학년 때는 담임이 집에 까지 찾아와서 자영이는 꼭 대학을 가야 합니다. 자영이를 꼭 대학에 보내십시오 하고 외할아버지에게 몇 차례 간곡히 당부를 하고 가시곤 하셨단다. 하지만 당돌한 엄마는 할아버지에게 간곡하게 부탁하지 않았다. 왜 나를 대학에 안 보내주냐 악악 악을 쓰고 할아버지에게 당당히 요구하다 마당에 휙 던져졌단다. 할아버지는 사는 동안 평생을 후회하셨다. 평생 엄마에게 미안하다 하셨고 이후 다행히 살림이 펴, 엄마 아래 6명의 동생들을 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보내셨다.
엄마는 3학년이 되자마자 동기들의 부러움을 받으며 일착으로 은행에 취업을 나갔단다. 취업 한지 얼마 안돼 서울 명동으로 발령을 받았다. 고등학생이 생각할 수 없는 월급에, 담배 자욱한 음악다방과 명동 양장점에서 맞춘 빨간 미니스커트, 어깨 위로 간당간당 살짝 삐치는 고대 머리... 사회생활이 너무 재미있어서, 돈 벌어 나중에 대학가 고마 하는 다짐 같은 건 깡그리 잊었다 한다.
그 시골에서 서울 명동에 본점으로 매일 아침 화려하게 출근하던 엄마는 그 동네 셀럽이자 동생들의 희망이었다. 1967년 4월 27일 빨간 미니스커트를 입은 엄마는 퇴근길 경인선 열차에서 카츄샤 군인 무리의 눈에 띄었다. 그러고 다니는데 누구 눈엔들 안 띄었으랴만 그 카츄샤 무리 중엔 휴가 나가던 이벽성씨도 있었다. 이벽성씨는 엄마를 따라 가 기어이 엄마의 시골집을 알아냈고 그리고 삼 년 후 언니가 태어났다.
자존심이 유난하고, 누구에게도 구부러지지 않는 엄마가 나는 내내 버거웠다. 아빠는 늘 '이 2'씨가 어떻게 '구 9'씨를 이기냐며 이길 것은 져주고, 질 것도 무한정 지고 살았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항상 이기적이다.
언젠가 내 아이가 한참 내 손을 탈 시기에 엄마가 "혼자 하게 놔둬라, 그 정도는 혼자 해 버릇해야 네가 편타"
문득 "엄마, 엄마는 나 어릴 때, 그때 왜 그렇게 나한데 신경을 안 써줬어?이렇게 예쁜데"라고 물었다. 사실은 질문이 아니라, 고백을 하고 싶었다. "엄마, 난 어릴 때 엄마가 참 필요한 아이였어, 엄마는 그때 어디 있었어?"
엄마는 뜻밖에, 하지만 너무 엄마스러운 반응을 했다. "그때? 너 요만할 때? 그땐 엄마가 돈 버는 게 그렇게 좋았다. 엄마 머리가 좀 빠르니. 아빠 하는 일 엄마가 조금만 신경 쓰면 그렇게 돈이 들어왔다"
엄마는 목표의식이 너무 뚜렷한 나머지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다. 엄마의 생각은 대부분 행동으로 바로 이어져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쉽게 무능하게 만든다. 게다가 엄마는 감정적이다. 자기감정을 제어하지 못하거나 한순간 폭발할 때가 있다.
다시 풀어 보자,
그녀는 목적의식이 아주 투철해서 강한 카리스마로 공동의 목표를 달성한다. 그녀는 자기 주도적이어서 주변 사람들에게 영감이 되곤 한다. 그녀는 감정에 솔직하다. 자기표현에 솔직하고, 표정 변화가 풍부하며 분위기를 주도한다.
다시 풀어 보면 이 시대 어디엔가 있을법한 여성 리더를 묘사한 듯싶다. 내 엄마가 아니라면 구태여 미워할 이유가 없다.
엄마라는 프레임 안에 담긴 그녀는 엄마라는 굴곡 렌즈를 통해 왜곡되어 나에게 비친다. 엄마라는 이름에 눌려 달리 엄마를 볼 방도가 없다.
억울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녀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엄마였다. 나는 엄마인 그녀밖에 모른다. 그녀의 모든 행동과 판단과 언어가 엄마라는 틀 안에서 굴절되어 나에게 보인다.
엄마니까 이래야지, 어떻게 엄마면서 그래, 엄마가 왜 그래, 무슨 엄마가 그래...
그런 엄마가 최근 엄마답지 않은 약한 소리를 한다. 약한 소리를 버럭 한다.
이젠 너무 힘들다고. 이건 아니지 않으냐고. 언제까지 해야 하냐고..
나는 무서워서 엄마보다 더 큰 소리로 으름장을 놓는다.
약하지 말라고. 약해지지 말라고. 엄마답지 않게 왜 그러냐고.
엄마라는 굴레를 그물 펼치듯이 엄마에게 후다닥 끼얹는다. 무서워서. 내가 무서워서 급하게 엄마에게 엄마라는 짐을 다시 상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