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새벽
아빠가 아침 몇 시에 일어나는지 나는 모른다. 내가 아빠와 같이 산 열 여덟 해 동안 아빠는 늘 가족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셨다.
아빠는 아침 일찍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거나, 마당 잔디에 물을 주거나 (잔디에 물 주기는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가 좋다고 나중에 아빠가 말씀해 주셨다. 해가 나면 잔디가 먹는 물보다 증발하는 물이 더 많단다) 해를 골고루 받도록 화초 방향을 틀어주거나 TV 영어 뉴스를 튼다. 아침부터 청소기를 돌리기도 한다. 하지만 방마다 다니며 일어나라는 말을 한 적은 없다.
어디 휴가를 간대도 우리 집은 아빠 등쌀에 새벽부터 움직였다.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동안 아빠는 이미 짐들을 차에 다 넣어 놓고 시동도 미리 켜 놓고 기다리셨다.
아빠가 새벽이 아니라 한밤중에 깨어 있는 것을 본적이 몇 번 있다.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국제경기가 시차에 안 맞게 하는 경우이다. 불 하나 안 켜고 TV만 작게 켜고 혼자 보시는 것을 본적이 있다. 아빠는 나와 언니에게 같이 보자는 말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스포츠에 관심 하나 없는 엄마처럼, 딸들인 우리도 의례 관심이 없으리라 생각하셨을 것이다. 그런 다음 날 새벽에도 아빠는 새벽같이 일어나셨다.
아빠는 그렇게 일찍 일어나지만, 아빠와 살면서 아빠가 낮잠을 주무시는 것을 나는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사실 아빠가 어디 소파에라도 누워 있는 것 조차 나는 본 적이 없다.
결혼 후 우리 집에 오셔서 며칠 주무신대도 그렇게 답답하시다며 밖으로 다니신다. 특별히 하는 것도 없이 어슬렁어슬렁 걸어 다닌다. 저 골목 돌아가면 뭐가 있더라, 저 상점은 좀 이상한 거 같으니 그 근처는 가지도 말아라, 오늘은 저 아래까지 다녀왔다… 늘 그렇게 아침부터 몸을 움직이신다.
요즘 아빠가 틈만 나면 주무신다고 엄마가 걱정하신다. 아빠가? 낮잠을? 반문하며 놀랄 만큼 신기한 일이다. 아빠가 새벽이고 아침이고 점심이고 저녁이고 잠을 잔단다. 아직 왜 아침마다 영어 뉴스를 틀었는지, 왜 월드컵을 혼자 보셨는지, 왜 새벽마다 혼자 일어나 계셨는지, 왜 직접 깨우지 않았는지 들어보지 못했는데… 잔디에 물주기는 이른 아침이나 늦은 오후가 좋다는것 밖에 난 모르는데..
아빠의 아빠가 제대로 아빠 노릇을 하지 못했는데 아빠는 어디서 아빠 잘하는 법을 배웠는지 아직 못 물어봤는데…
아빠가 자꾸 잠을 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