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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Jul 14. 2021

갑으로 산다는 것

이산가족 찾기

 

80년대에는 TV가 지금처럼 하루 종일 방송하던 때가 아니다.‘동회물과 백두산이’로 시작하는 애국가 화면에서 동이 트면 TV 프로그램이 시작한다. 애국가 화면에서 해가 떨어지면 TV에서 zzzz소리가 나고 모든 프로그램이 끝이 난다.


노는 게 제일 좋던 국민학생에게는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와중,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냐며 정규방송 다 끝났는데도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보는 프로가 생겼다.

가족이 헤어진다는 것이 어떤 건지 상상이 안되면서도 가족이 만나는 장면에는 같이 눈물이 펑펑 나더랬다…





이갑 씨는 “살아 있으면 대구 방적 공장에서 앞에서 만나자" 하고 어린 벽성과 벽성어마이, 벽성할마이를 남으로 가는 기차에 태웠다.

그 생난리 피난 통에 기차표를 구하다니 참 운도 좋고 수완도 좋은 이갑 씨다. 이갑 씨는 내 할아버지이다. 이. 갑. 이름이 외자로 ‘갑’이요, 성이 ‘이’가 이다.


이갑 씨는 김일성 대학 전신인 평양공업전문학교 2학년 재학 시 여름방학에 본가에 왔다가 벽성어마이와 혼례를 치렀다. 혼란스러운 시기에 대는 이어야 한다는 어른들의 밥상에 숟가락만 얹어, 내 아버지 벽성이 태어났다.

이갑 씨가 평양에서 학업에 매진하는 동안 벽성은 성장에 매진하고, 남북은 사상 대립에 매진했다. 전쟁이다. 마당에서 총살을 당한 벽성의 할아버지를 뒤로  하고 여자들끼리만 피난 짐을 싸는데, 소식을 듣고 이갑 씨가 달려왔다.


그 당시 김일성대학 학생은 사상과 관계없이 북한군에 징집되었고 군 권력에 기대어 이갑 씨가 기차표를 구해왔다. 서울은 북한과 너무 가까워 피난처로는 위험하고, 서울보다 더 남쪽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대구에 큰 방적 공장이 있다는 것이다.


살아있으면 대구 방적 공장 앞에서 만나자는 말만 종교처럼 믿고 여자 둘, 아이 하나가 남쪽으로 떠나는 기차를 탔다. 이갑 씨는 북한군으로 북에 남았다. 할마이와 어마이는 살아서 대구 방적 공장에 앞에 돼지국밥집을 차렸다.


 매일 아침, 공장 불이 켜지기 전 이미 돼지국 밥이 끓고, 방직공장 불이 꺼져야 돼지국밥 통 뚜껑이 닫혔다. 여자 둘은 벽성을 잘 키우기 위해 방적 공장 기계보다 더 열심히 국밥을 펐다.

벽성의 이북 사투리가 대구 사투리로 갈아탈 때 즈음, 벽성의 학교로 국군 차량이 먼지를 후르르 일으키며 들어왔다. 군인 차량이 보이면 아이들이 차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때였다. 총도 슬쩍 만져보고 바퀴도 긁어보고…

 벽성은 교실 안에서 군인 차량을 보고 있더랬다. 좀 있으니 교무실에서 벽성을 불렀다. 처음 보는 군인이 벽성의 아바이라고 했다.


아이들이 우와~~~ 하며 부러워했다. 아버지 없는 아이들이 천지인 시절이다. 그 와중에 훈장 찬 군인이 아바이라니. 학교가 끝나기도 전에 가방을 싸고 아바이군인의 군인차를 타고 할마이와 어마이가있는 방적 공장 앞 돼지국밥 집으로 함께 갔다.

한참을 울고, 한참을 쓰다듬고, 한참을 바라보고, 그렇게 그렇게 잃어버린 몇 년을 하룻밤 동안 메꾸었다. 벽성의 아바이 이갑 씨는 전쟁중 북한군에서 도망쳐 국군에 자원입대했다. 이갑 씨는 매우 상황 파악에 능하다. 엘리트 북한군 정보통인 이갑 씨는 전쟁 중 승승장구 진급을 했다.


 그렇게 전쟁을 끝내고 서울에서 군인으로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살았다. 대구에 사람을 보내 벽성을 찾아보기도 하고, 수소문을 했지만 벽성을 찾지는 못했다고 한다.

 벽성이 국민학교를 입학할 나이가 돼서야 대구에 있는 국민학교들에 연락해보면 벽성을 찾을 수 있겠다 싶었단다. 죽은 줄만 알았던 아바이를 찾았는데 벽성에게 새 어마이도 덤으로 생긴 것이다.

꼬였다. 가족관계에서는 부족한게 낫지, 과하면 사단이 난다. 남자 하나에, 어마이하나, 부인하나도 무척 힘든 상황이다.  남자 하나에, 부인 하나와, 또 하나의 부인은 아주 골치 아프다.


3대가 대대로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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