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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Jul 27. 2021

시소 위 가족

균형잡기


시소는...

여느 놀이터에나 흔히 볼 수 있어서 재미있어 보이고, 친근하고, 동심의 세계 같지만 내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좀 무섭기도 하다.




시소의 묘미는 균형이다.


그 짧은 찰나에 나는, 저만하면 나랑 비등하겠는걸 - 하며 상대 아이의 무게를 가늠해야 한다. 올라가서 하늘을 보든, 내려와서 땅을 짚던, 상대방 아이가 나와 얼추 비슷해야 쿵작이 맞고 놀이가 된다.


눈치 없는 덩치 큰 녀석이 반대편에 올라타, 내 팔다리가 허공에서 내려달라고 팔랑팔랑 거리면 그만큼 자존심 상하는 일도 없다. 반대로 자잘한 녀석이 같이 놀자고 올라타도 재미 참 없다. 나 혼자 죽어라고 발을 굴러 반대편 아이를 자꾸 올려주어야 한다.

시소는 균형 답이다.




아빠 엄마의 시소는 항상 아빠 쪽으로 한참 기울어 있었다. 엄마가 하늘을 만끽할 때 아빠는 항상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아빠가 시소를 올리려고 발을 구를 때마다, 땅이 패이는 줄도 모르고, 시소가 땅으로 가라앉는 줄도 몰랐다.   

물론 아빠가 늘 힘들었던 것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땅에서 신나게 놀기도 하고, 딴짓도 하고 그렇게 쉬다 놀다 했을 것이다. 엄마가 하늘에서 또 어떤 어려움이 있는 줄은 모르고...


잔병치레가 많았던 나는 아빠와 성모병원에 다녔고, 어린이날 자연농원도 아빠와 다녔다. 양재동 꽃마을 비닐하우스에서 마당에 심을 화초며 딸기 모종 같은 것을 아빠랑 골라 왔으며, 강화로 화문석도 사러 갔다. 밤마다 사각사각 풀 먹인 빳빳한 요와 이불을 깔면, 그 하얀 링에서 아빠랑 씨름을 했고, 물놀이할 때도 아빠만 물에 들어오면 그게 그냥 놀이터였다. 바쁜 엄마가 아빠에게 이런저런 부분은 분담을 요했을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아빠는 엄마나 우리에게 싫은 소리를 하거나 나무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아빠의 발은 항상 땅에 있었다.      


엄마는... 정작 엄마는 엄마가 시소위에 있는 줄 몰랐다. 엄마가 하늘에 있는 줄 몰랐다. 엄마도 거기에서 힘들었을터여서, 아빠가 발을 쉼 없이 굴러 엄마를 올리고 있는 줄을 몰랐다.

엄마는 점점 커가는 집과, 점점 커가는 사업으로 하늘을 올랐다. 엄마의 빠른 머리만큼이나, 엄마는 판단도 빠르고 그 결과도 빨랐다. 엄마는 벌써 그 당시에 주식을 시작했고 나는 점점 엄마를 보는 날이 없었다. 엄마는 내가 무슨 옷을 입고 학교를 가는지 몰랐고, 하굣길 비를 맞고 집에 왔는지, 언제 소풍을 가고, 언제가 운동회인지, 반장선거나 손톱 검사가 언제인지, 누구와 노는지 몰랐다.


나는 아빠가 재미있었지만, 가끔 시시했고, 답답했다.

나는 가끔 엄마가 자랑스러웠지만, 자주 외로웠고, 매일 보고 싶었다. 까만 아빠보다 하얀 엄마가, 담배 냄새보다 화장품 냄새가, 아빠의 장난스러운 손길보다 엄마의 눈길이 더 필요했다.

나는 겨우 열 해 남짓 사는중이었다.


1980년 초 강남 한복판에서 아빠 엄마는 시소 한가운데  자기 자식들이 손잡이도 없이, 안전벨트도 없이 이리 흔들, 저리 흔들 곡예를 하는 줄을 몰랐다.


시소라는 게 도무지 수평을 이루기 힘들다는 걸 알았다면, 애초 시소를 타고 싶지 않았을 수 있을 텐데 타고 보니 시소인 거다.

평생 시소위에 같이 올라있는 게 가족이다.


지금 내 시소는 어떤 기울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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