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사랑 Oct 29. 2023

드라마 쓰는 러너입니다. (11)

내 인생의 첫 마라톤 하下


21k 거리의 하프 코스에 도전하는 출전자들을 먼저 보내고, 우리의 출전 시각이 임박해져 왔다. 그때 머릿속에서 나 자신에게 계속 주입하고 또 주입한 생각은 ‘느리더라도, 걷지 말고 뛰어서 완주만 하자’였다.


11k라는 <거리>에 대한 부담감은 충분한 연습으로 인해 이제 거의 없는 상태였지만 막상 뛰기 직전이 되니 각양각색의 부담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는데, 각종 부담감들의 근원을 스스로 면밀히 살펴보니 이러했다.


1. 이른 아침 시각에 장거리를 뛰어본 적은 없는데 내 몸 컨디션 괜찮을까?

2. 첫 마라톤 출전이니만큼 (비싼 돈도 냈는데) 절대 낙오만큼은 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

3. 오랜만의 ‘혼런’에 대한 두려움.


셋 중에서, 마지막 두려움이 가장 컸다.


나는 러닝을 건강상의 이유로 시작했지만 혼자 뛰는 게 싫어 러닝크루 가입을 선택했고, 다른 이들과 함께 뛰는 즐거움으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극복해 왔다.


하지만 마라톤 대회에서만큼은 함께 출전한 다른 크루들도 개개인별 기록을 위해 각자의 페이스로 최선을 다해 뛰어야 했다. 즉, 내 페이스에 맞춰 양보하며 뛰어줄 페이스메이커가 없다는 것.


그건 머릿속에 ‘힘들다, 지루하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어도 그 생각을 이겨내기 위해 말을 걸 옆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뜻이었고, 내가 ‘그만하고 싶어’라고 포기 직전 고통을 토로해도 ‘아니야, 할 수 있어’라고 한 번 더 무너진 내 마음을 추스르고 앞으로 이겨낼 수 있게 등을 떠밀어주는 친구(=멱살잡이)가 없다는 뜻이었다. 새삼 내가 그간 얼마나 다른 이들에게 의지하며 뛰어왔는지가 절실히 느껴졌다.


알고 보니 오늘은 거리나 기록 경신이 목표가 아니라 ‘혼자서 고통을 극복하고 목표를 향해 끝까지 달려보는’ 날이었던 것이다.






모든 게 준비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고독하고 지루한 싸움에 대한 마음의 준비는 조금 부족했던 상태에서, 나는 거듭 마음을 다잡았다.


‘외로워도 끝까지 뛰는 거야.’

‘힘들어도 끝까지 뛰는 거야.’


속으로 새기다 보니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고 끝까지 달려라 달려라 해야 하는 캔디와 하니의 합체판 아수라백작... 아니 러너가 되어야 했다. 마음 한 편에서 계속해서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지만 어차피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는 쓸데없는  질문은 관두고 출발 신호가 들려옴과 동시에 몸을 움직였다.


내 앞과 옆에 나란히 서 있던 우리 크루들이 번개같이(솔직히 이 정도는 아니었지만, 내 눈엔 그래 보였다.) 튀어나갔다. 어차피 나보다 페이스가 빠른 주자들이었다. 처음엔 뛰자마자 밀려오는 불안함과 외로움에 그래도 그 크루들의 페이스를 뒤쫓아 뛰어보려고 열심히 따라다녀봤는데 금세 숨이 벅차오기 시작했다. 냉정해져야 했다. 완주를 위해 페이스 욕심도 버리고, 부질없는 그리움(?)도 버리고 무수한 군중 속에 오롯이 혼자가 되었다.


이게 얼마만의 ‘혼런’인가? 그 와중에 너무 고독해지고 싶진 않아 내 바로 앞에, 나와 페이스가 비슷한 갈래머리 여자분을 내 마음속의 페이스메이커로 점찍었다. 솔직히 말하면 수다런에 익숙해진 본성을 주체하지 못해 그분한테 말이라도 걸어볼까? 하는 생각까지 했는데... 중요한 대회 날에 그런 민폐를 끼칠 수는 없어 자꾸만 솟아나는 내적 친분감을 억지로 마구 짓밟아 눌러가며 뛰어야 했다.


2~3k 구간은 몸이 덜 풀린 탓인지, 익숙지 않은 서울 광장 코스의 초입 오르막 구간에 뒤따른 피로감 때문인지 많이 뛰지도 않았는데 괴로웠다. 하지만 그 구간을 이겨내고 4~5k 구간이 되자 몸을 열심히 푼 덕분인지 골반의 피로감도 덜하고(원래 몸을 덜 풀면, 서서히 골반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던 구간이다) 호흡도 오히려 안정되기 시작했다.


그때 즈음 내가 어느 정도의 페이스로 뛰고 있을지 잠깐 궁금하기도 했지만 어차피 기록 욕심 없이 완주가 목표였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손목의 워치를 보지 않았다. 내가 너무 느리게 뛰고 있다면 박탈감에 멘탈이 흔들릴 것 같았고, 오히려 생각보다 빠르게 뛰고 있다면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라는 부담감에 페이스가 흐트러질 것 같았다.


그 상태에서 묵묵히 7~8k 구간으로 넘어가자 슬슬 지루함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몸을 막 뒤틀고 싶었다. 평소에도 내가 제일 못 참는 게 지루함이다. 신체적 고통보다는, 심리적 지루함이 늘 러닝의 가장 큰 숙적이었다. 머릿속에선 계속 ‘아직도 한참 남았네’, ‘내가 끝까지 달릴 수 있을까’ 등등의 불평과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피어나기 시작했고, 당장 달리는 것을 멈추고 터질 듯이 차오른 숨을 고르며 천천히 걷고 싶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왜냐면 모두가 분명히 완주를 하고 들어올 텐데 (모두가 어차피 까먹고 있지만 그래도) 명색이 크루 운영진인 내가 본새 안 나게 중도 포기를 할 수는 없다는 압박감이 컸기 때문이다. 공명심은 없을지언정, 도태만큼은 못 참는 인간이 나다. PB(Personal Best=개인 최고 기록)는 못 세울지언정 낙오를 해서야 되겠는가?


그때부터는 거의 이를 악물고 달렸다. 페이스가 느려졌는지 내 앞에서 비슷한 속도로 총총히 뛰어가고 있던 나만의 페이스메이커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냥 계속 뛰었다. 8k, 9k.. 숫자가 커져가는 안내 표지판을 보는 것만이 유일한 낙이었다. 그쯤 되니 뇌도 지쳤는지 더 이상 머릿속에서 불평을 쏟아내던 것을 멈추었던 것 같다. 다른 생각 없이, 계속해서 커져가는 다리 통증을 최소화시키기 위해 밍키오빠가 알려준 대로 올바른 발 착지법으로 땅을 번갈아 짚는 것에만 동물적으로 집중했다. 그렇게 얼마 후 10k 구간을 통과했고, 원래는 그때쯤 되면 ‘고지를 정복했다’는 희미한 확신이 차오르기 시작해 고통이 사라지고 몸은 더 가벼워지게 마련인데 그날은 여전히 ‘1k를 더 뛸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아 정신없이 고통 속에 마지막 1k를 채워야 했다.


고통과 불안이 사라지고 ‘내가 해냈다’는 승리의 기쁨은 눈앞에 펼쳐진 결승점 구간을 똑똑히 확인하고서야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대회 피니쉬 라인을 통과하고서도, 그날 애플워치를 살짝 늦게 켠 까닭에 마지막 200m 정도를 종종거리며 더 뛰고서야 자체적으로 대회를 종료할 수 있었는데 그리고서 확인한 페이스는 1km당 6분 25초로 개인 최고 기록이었다.



기록을 전혀 의식하지도 않고 완주만을 목표로 충분히 천천히 느긋하게 뛰었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걸까? 믿기지 않은 결과에 짜릿함이 두 배였지만 그 옆에 기쁜 소식을 나누며 손 붙잡고 방방 뛸 크루가 없어, 얼른 (틀림없이 나보다 한참 앞서 결승점을 통과했을) 굥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모두들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하고 그쪽으로 ‘걸었다’. 마음은 날 듯이 뛰고 싶었지만, 내 다리는 이미 내 다리가 아니었기에......






역시 내 예상대로 중간에 낙오를 한 크루는 아무도 없었다. 나처럼 PB를 갱신한 크루도 많았고,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페이스로 다들 각자의 성취를 만끽하고 있었다.


우리는 한 명 한 명 모여 그 사람의 기록을 확인하고, 각자의 메달 샷을 찍어주며, 떨 수 있는 최대한의 오두방정으로 우리가 ‘따로 또 같이’ 함께한 마라톤 대회를 있는 힘껏 축하했다.


육체적으로 모두가 지치고 힘들었을 텐데 머리끝까지 차오른 ‘러닝뽕’을 빼는 데에는 시간이 꽤 필요해서 밥도 먹고 우리들의 본거지인 한강 이남으로 이동해 또 커피도 한 잔 더 마시며 끝없이 수다를 떨었다. 처음으로 혼자서 끝나지 않는 억겁 속의 시간을 달리는 것만 같았던 11k 완주는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외롭고 힘들었지만, 그 후에 만나 힘듦에 대해서 시시콜콜히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행복했던지.


‘혼자 가면 빨리 가고 함께 가면 멀리 간다’지만, 때로는 인생에서 분명히 혼자서 빨리, 그것도 멀리 가야 하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외로운 길 속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 따뜻한 친구들을 떠올릴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친구들이 분명히 나의 힘듦을 알아주고 지친 나를 환대하며 안아줄 것이라는 믿음을 유지할 수 있다면... 우리는 혼자 걷는 두렵고 낯선 길에서도 반드시 멋진 모험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다.


2023년 10월 8일의 내가 그랬듯이.







P.S. 내 인생의 첫 마라톤을 함께 해준 반달런 식구들, 모두 사랑합니다! 그날 같이 뛰지 않아도 평소에 나와 단 한 번이라도 같이 뛰어준 모든 러너들에게도 이 영광을 돌립니다! (예? 무슨 보스턴 마라톤 풀코스 뛰었냐고요?) (마음만은... 아테네에 승전보를 가지고 도착한 그분 못지않습니다~~~^_^)

작가의 이전글 드라마 쓰는 러너입니다. (10)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