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첫 10k
우리 러닝크루에 들어오기 전까지, 나의 달리기 거리 최고 기록은 5k(거리 단위인 km를 축약해서 부름)였다.
시간을 더 되감아보면 내가 첫 러닝을 시작하고서 5k를 쉬지 않고 뛸 수 있게 되기까지는 약 1년 반 가량의 시간이 걸렸는데, 혼러닝(혼자서 러닝)을 하다가 알고 지내던 교회 동생 둘과 간간히 떼러닝(같이 하는 러닝)을 하게 된 무렵, 그중 한 동생(이하 J라고 부르겠다)이 좀 더 적절한 호흡법을 알려주며 ‘이제 누나도 쉬지 말고 5k를 뛰어봐’하고 제안을 해왔더랬다. 사실 목표는 진작부터 5k 뛰기였는데 런데이 어플로 8주면 완성할 수 있는 그 코스를 1년 반 동안 늘려 뛰고 있던 터라 나도 이젠 할 때가 됐다,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마음 한 구석엔 계속 ‘내가 할 수 있을까?’, ‘너무 힘들 것 같은데...’, ‘무리하는 건 안 좋겠지?’라는 생각이 늘 내 발목을 잡아서 영 결심이 쉽지가 않았었다. 하지만 그런 나를 옆에서 열심히 부추겨가며 친절하게 페이스메이커를 해준 J 덕분에 난 그날 생각보다 가뿐하게 5K를 쉬지 않고 뛸 수 있었고, 그날의 성취 덕분에 이젠 나도 스스로를 ‘러너’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자신감이 생겼었더랬다.
하지만 그 이후로 날씨가 급격히 추워져 ‘전국몸사리기협회협회장’인 나는 엄격한 자세로 자체 러닝 겨울 방학을 가졌고, 날씨가 조금씩 풀린 이듬해 봄부터는 내 나약한 몸과 마음이 또다시 5k에 대한 마음의 벽을 굳건히 세워놓고 내게 이렇게 속삭였다. ‘니가 한 번은 5k를 뛰었지만 몇 개월이나 쉬었으니 또 단박에 그렇게 뛸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마.’,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페이스를 끌어올려.’ 나는 내 마음의 소리에 충실히 귀를 기울이며 아주아주아주아주 천천히 페이스를 끌어올렸다. 얼마나 천천히 페이스를 끌어올렸냐면, 결국 그 해 5월 한 러닝크루에 게스트로 참석해 사람들과 한강을 뛰기 전까지 봄 내내 나는 한 번도 5k를 뛰지 못했다.
아, 그때 난 깨달았다. 이 놈의 의지박약아가 러닝실력을 늘리려면, 내 안의 두려움을 없애려면, 나는 결국 ‘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들과 계속해서 같이 뛰어야겠구나. 나는 혼자서는
1. 몸을 사리느라 (가짜 이유)
2. 고통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해서 (진짜 이유)
매번 한계점을 돌파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겠구나.
그 후 나는 소모임 기반 러닝크루에 들어가 다른 이들과 함께 뛰며 비교적 안정적으로 쉬지 않고 5k를 뛸 수 있는 몸이 되었다.
그 후 지금의 런방에 들어와 첫날부터 5k를 뛰고 난 밍키 방장을 나의 엄격한 관리자(?)로 점찍었다.
고백건대 나는 많은 이들이 저격을 일삼기도 하는 MBTI 분류 맹신도다. 사람을 16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다니 허술하기 짝이 없는- 심지어 폭력적인 분류다,라고 반발하는 이들의 근거를 모르는 바는 아니나- MBTI 분류법이 ‘완벽한 개인의 특성을 반영하지는 못한다’라는 것만 똑똑히 명심하고 있으면 사람을 16가지 카테고리로 나눠버리는 그 과감한 분류법은 한 사람의 성격특성을 재빨리 파악하는 도구로 꽤나 쏠쏠하다.
러닝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사족이 길어지는 것 같은데 다 이유가 있다. 나는 스스로를 가혹하게 다루지 못하는 의지박약아인 자신을 꽤 정확하게 메타적으로 인지하고 있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사람들을 거칠게 컨트롤해 주는 컨트롤광(?)들을 내 주변에 두는 것을 좋아한다.
MBTI 분류상으로는 대표적으로 ENTJ, ESTJ들이 그런 컨트롤광의 면모를 보인다. (난 그런 컨트롤프릭이 아니다 이 미친 일반화의 오류를 대범하게도 범해버리는 작가야!라고 맹비난하는 여기저기서 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지만 난 분명히 그들이 그런 ‘면모를 보인다’고 했지 ‘컨트롤 광이다.’라고는 하지 않았으므로 빠져나갈 구멍이 마련되어 있다는 무적의 실드를 먼저 쳐놓겠다.) 그들은 대체적으로 자신들을 엄격하고 가혹하게 다루며,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를 그렇게 엄격하고 가혹하게 다루지 못하는 점을 이해하기 힘들어 ‘하기도 한다’.
나는 첫날부터 왜인지 밍키 방장에게서 그런 엄격한 관리자의 냄새를 맡았는데, 알고 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는 ESTJ였다. 그와 달리기를 몇 번 거듭할수록 우리 사이는 (서로가 결코 찔리지는 않는) 창과 방패가 되어갔다.
밍 : 콩, 오늘은 10k 가야지.
콩 : 에? 10k? 나 아직 6k도 안 뛰어봤어. 10k는 좀 오바...
밍 : (자르며) 아냐. 너 할 수 있어. 내가 볼 때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말하는 거야.
콩 : 오빠. 사실은 내가 안 그래 보이지만 몸이 좀 약한 편이거든...? (주절주절 오늘 당장 10k를 뛸 수 없을 것 같은 이유를 빠르게 나열한다)
밍 : (다시 자르며) 알겠고, 무슨 말인지는 다 알겠는데 내가 니 몸 상태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하는 말이야. 넌 오늘이라도 당장 뛸 수 있어.
콩 : 오빠. 나 진짜 이렇게 런스라이팅 해주는 거 너무 고맙거든? 진짜 고마운데... 너무 좋은데... 좀만 살살해줘. 일단 나 오늘은 진짜 무서워...ㅠㅠ
물론 밍키 방장이 나한테만 그러는 건 아니다. 그는 어느 정도 런스라이팅(?)이 필요한 의지박약(?) 회원들에게는 늘 저렇게 다정하지만 엄격한 채찍질을 하곤 한다. 그리고 나는 고백하자면 저런 채찍질에 환장하는 변태다.
대화를 보면 내가 부담감을 느끼거나 무서워한다고 착각할 수 있지만 사실 나는 저렇게 질질 끌려가다가 결국 ‘알겠어하면 되잖아!!!!!!’하고 어느 순간엔 과감히 설득당해 버린다. 그리고는 이리저리 내빼려는 나를 이렇게 저렇게 열심히 설득해서 끝까지 멱살 잡고 끌고 가준 엄격한 관리자에게 무한대의 감사 인사와 사랑 폭격을 퍼부어버리는 요상한 인간이다.
내가 밍키 방장에게 결국 설득 당해 멱살을 잡힌 채 10k를 뛴 그날은 바야흐로, 2023년 7월 18일.
처음으로 5k를 뛴 2021년 가을로부터도 약 2년의 시간이 흐른 뒤니... 이 10k 달리기를 향한 내 심리적 장벽은 그때보다도 더 높고 견고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으리라.
그 근래 뜻하지 않게 5k를 뛰고도 이상하게 체력이 남아 충동적으로 1k, 2k씩 더 뛰어보며 8k까지 기록을 쌓아 올려둔 뒤긴 했지만, 늘 그렇듯 ‘오늘은 10k를 뛸 수 있을 거야’라고 가뿐히 마음을 먹을 수는 없는 나날이 이어졌다. ‘6k는 이제 될 거 같은데... 10k? 10k는 6k, 7k, 8k를 천천히 골고루 여러 번 뛰어서 몸을 만들어둔 뒤에 정복해야 할 고지 아닐까?’라고 생각하던 어느 날. 밍키 방장이 ‘오늘은 10k 가자.’며 ‘거절은 거절하겠다’라는 얼굴로 제안(이라고 쓰고 통보라고 읽을 수도 있는 것)을 해왔다. 어김없이 창과 방패의 대화가 이어졌다.
콩 : 오빠. 나 엊그저께 우중런 8k 뛰었잖아. 그러고 나서 발목이 아직 좀 아파.
밍 : 일단 뛰어봐. 뛰어보고 괜찮으면 10k 쭉 가면 돼.
콩 : 괜찮은 줄 알고 뛰었는데 발목 뽀각 되는 거 아닐까?
밍 : 아니야. 그거 내가 볼 땐 별 거 아닌 통증이야. 뛰면 오히려 괜찮아지는 경우가 많아. 내 말 믿어봐.
콩 : 오늘은 좀 가볍게 뛰고... 다음번에....
밍 : (자르며) 넌 너무 몸을 사려. 오늘 일단 뛰어봐. 힘들면 그냥 중간에 관둬도 돼.
콩 : ......
밍 : 너보다 내가 훨씬 많이 뛰어봤으니까, 내 말을 좀 믿어봐. 엉?
콩 : ......
더 이상 반박할 말이 없어지면서, 그리고 오늘도 내빼면 왠지 밍키 방장이 앞으로는 나를 ‘컨트롤’해 줄 것 같지 않았기에... 난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 중간에 힘들면 관둬도 된다고 했으니까... 그러면 되니까...’
이런 무거운 마음으로 마음보단 덜 무거운, 그러나 조금 삐걱거리는 발목을 이끌고, 우린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그날 10k를 뛸 수 없을 것이라고 체념하려던 순간은 7k를 넘기기 직전이었다. 그리고 내가 그날 10k를 뛸 수 있을 것이라고 예감한 순간은 8k를 넘긴 직후였다.
내가 자주 돌곤 하는 운동장의 트랙은 약 400미터 코스. 그러니까 7k에서 8k 사이, 약 두 바퀴 반을 ‘그만두고 싶어’ ‘힘들어’ ‘그만둔다고 할까?’ ‘지금 이탈할까?’ ‘아냐, 딱 한 바퀴만 더 뛰어보자’ ‘다음 바퀴 때도 힘들면 그때 이탈하자’ 이런 맹렬한 갈등을 하며 돌았다.
그리고 그렇게 꾸역꾸역 8k 지점을 돌파한 후로는 이상하게 문득 ‘이렇게 된 이상, 내가 뛰고 말겠구나’하는 예감이 들면서... 몸이 더 가벼워지고, 기분은 고조되어 가는 러너스하이를 경험했다.
보통 5k를 뛸 때는 마지막 바퀴가 늘 몹시 힘들고,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지만 그날 9k를 넘기고, 마지막 한 바퀴가 남았을 때는 그렇게 힘들지도 않았다. ‘드디어 목표를 달성한다’라는 기대와 설렘만이 가득했다. 심지어 마지막 반 바퀴가 남았을 때는 밍키 방장에게 내가 먼저 스퍼트를 올리자고 제안해, 페이스를 더 끌어올려 날 듯이 목표지점에 골인했다.
그날의 성취감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해냈을 때의 그 쾌감, 엄청난 자기 충족감을.
내가 러닝을 하며 배운 것들은 많지만 그날 가장 확실하게, 또렷하게, 그리고 기쁘게 깨달은 것은 이것이다.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왜 이런 격언들은 실제로 내가 생생하게 체험하기 전에도 이미 다 아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아니, 알고 있긴 했지만 그건 사실 내가 깨달아 안 ‘나의 것’이 아니었다. 남의 말이었다.
난 그날 10k를 뛰고서야 비로소 내 육체에, 정신에 한계란 없음을, 그것들은 내가 스스로 만들어 세우는 장벽에 불과하고 마음만 먹으면 세상의 모든 일을 의지로 해낼 수 있음을 깊숙이 뼈에 새겼다.
그리고 그전에도 역시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날 또다시 더욱 확실하게, 또렷하게, 그리고 기쁘게 새긴 또 하나.
‘혼자 가면 빨리 가고 같이 가면 멀리 간다.’
이 깨달음은 다른 이들과 함께 달릴 때마다, 그때마다 매번 내 뇌에 더욱 깊숙한 회로를 파며 음각으로 새겨진다.
인생은 이런 식으로 굴러가는 걸까?
뭔가를 ‘주워듣고’ 배웠다고 생각하고. 그리고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조금씩 조금씩 그 남의 말을 ‘나의 것’으로 체화시킨다. 이렇게 내가 진실로 체험하고 깨달은 ‘나의 것’들이 쌓여갈수록, 내 인생은 또렷한 나만의 방향성을 가지기 시작하고, 나만의 고유한 색깔을 입는다.
가끔 달리기는 길 위에서 하는 철학 수업 같다. 나의 맨몸으로 인생의 여러 위기를 나만의 경험과 깨달음으로 정면 돌파 해가는 방법을 배운다. 고통이 고통이 아니라, 극복하지 못한 나의 한계임을 알게 된다.
이게 바로 내가 달리기와, 내 곁에서 함께 뛰는 친구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