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영 변호사 Sep 25. 2024

채권자가 처벌받는 과정

그 채무자의 채무 면제 방법

실제 형사법정에서 피고인들을 변론하다 보면,

돈을 받아야 할 채권자가 돈도 받지 못하고, 오히려 가해자가 되어 형사재판까지 받고, 채무자는 반사적으로 사실상 대금지급의무를 면하는 사건들을 변론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돈을 변제해야 할 채무자가 채권자의 불법행위를 유도한 것처럼 보이는 사건을 변론할 때면,

과연 누가 피해자인지 헷갈리기도 한다.




필자가 2021년경 서울중앙지방법원 국선전담변호사로 근무할 당시 변론했던 그 항소심 사건도 필자를 헷갈리게 했다.


피고인은 의류 제조 공장을 운영하여 처와 두 자녀를 부양하고 있는 가장이었다. 그런데, 사드 사건 이후부터 중국과의 거래가 중단되어 공장마다 일감이 없었으며, 코로나로 인해 일감은 더 없어졌다.


때마침 아는 디자이너의 소개로 피해자가 피고인의 공장을 방문했다. 피해자는 피고인에게 원피스, 재킷, 바지, 스커트 등에 대한 샘플 제작을 의뢰했고, 샘플이 나오면 제품을 제작하여 판매할 예정이라고 했다.


조그마한 일이라도 해서 아이들 학원비라도 벌고 싶었던 피고인은 피해자의 샘플제작 요구를 받아들여 샘플을 제작하여 피해자에게 샘플제작 사실을 알렸다.


샘플제작을 의뢰한 사람은,

샘플을 제작하면 이틀에서 삼일 안에 주문을 넣거나, 주문을 넣지 않으면 샘플제작비를 지급해야 한다.


그런데 피해자는 피고인에게 샘플만 제작하게 하고 한 달씩 기다리는데도

주문도 하지 않고 샘플제작비도 주지 않으면서
또 다른 샘플 제작을 의뢰하는 것이었다.


피해자의 요구대로 거래하면 피고인이 손해를 보기 때문에, 피해자에게 현실적인 공임비로 15,000원을 달라고 하자, 피해자는 공임이 비싸서 거래를 안 한다고 하였다.

이에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샘플 제작 대금 29만 원을 달라고 했다. 여러 차례 전화도 하고 문자도 보냈지만, 피해자는 계속하여 대금을 지불하지 않고 피고인을 피했다.


피해자가 계속해서 피고인을 피하자, 피고인은 사건당일 피해자를 직접 만나기 위해 문자를 보낸 후 피해자를 찾아갔다.


피고인은 00 빌딩 1층에서 피해자를 만나 서로 언성을 높여 싸웠고, 서로 욕설을 하게 되었다.

목격자는 “사건 당시 남녀가 싸우는 것을 목격했고, 돈 문제 때문에 서로 싸우는 것 같았다. 상호 욕설을 하면서 싸운 것으로 기억한다”라고 진술하였다.

목격자의 진술에 따르면, 피고인과 피해자가 상호 욕설을 한 것이지, 피고인이 일방적으로 피해자에게 욕설을 한 것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피해자가 경찰에 신고하여 경찰이 출동하게 되었고,

피해자는 출동한 경찰에게 "샘플비를 지급했는데 피고인이 욕설을 했다."라고 진술했다.


하지만, 샘플비를 납부했는데 피고인이 욕설을 하며 협박했다는 피해자의 위 진술은 거짓말이었다.(피해자는 경찰이 출동한 다음에야 피고인에게 샘플비 29만 원 중에 3만 원만 이체했다.)


피해자가 위 상황을 녹음하여 녹음파일을 증거로 제출했는데, 피해자가 제출한 녹음파일에는, 피고인이 “29만 원 안 주면, 내 돈 줘 빨리”라고 말하자,

피해자가

“하루 사이에 늙었네요. 사장님,
29만 원 되게 급했나 봐”

라는 피고인을 도발하는 내용이 녹음되어 있었고,



이에 피고인이 “이 병신아”라고 하자

피해자가 “사장님이 저 죽여버리겠다고 그랬지요? 죽여보...”라고 말하는 순간 녹음이 끊겼다.



필자는

‘피해자가 공장에 일이 없는 상황을 이용하여
샘플만 제작하도록 한 후,

대금지급을 면하려고 욕설을 유도한 것은 아닐까’

라는 의심이 들었다.


1) 피해자는 녹음을 준비한 상태에서 피고인을 만났고,


2) “하루 사이에 늙었네요. 사장님, 29만 원 되게 급했나 봐”라고 피고인을 도발하는 발언을 했다. 일반사람들은 이 상황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피고인의 반응이 일반적이지 않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3) 목격자는 상호 욕설을 했다고 진술했는데 피해자가 제출한 녹취파일에는 피고인의 욕설 부분만 녹음되어 있음에 비추어보면, 피해자가 피고인의 욕설 부분만 발췌해서 제출한 것으로 보였다.

(피해자는 원심 법정에서 “피고인이 40만 원을 요구했다”라고 객관적 녹음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거짓 증언도 했다.)


4) 피해자는 본건 사건이 발생한 후 경찰이 충돌하고 나서야 피고인의 계좌로 금 3만 원을 이체했고 나머지 샘플대금은 지급하지 않았다.

(피해자는 1심에서 증인신문당시 샘플비 5만 원을 이체했다고 주장하다가, 다시 3만 원을 이체한 것이 맞다고 증언을 번복했다.)


5) 피해자는 피고인으로부터 받은 문자와 피고인의 욕설이 녹음된 녹취파일을 증거로 제출하여 피고인을 협박죄로 고소했다.


-> 이 모든 상황이 우연이었을까?




피고인은 납품대금을 받으려 하다가 욕설 등을 하여 협박죄로 약식기소되었고, 정식재판을 청구하였다.

1심에서 무죄를 주장하며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문까지 했지만, 피고인이 욕설을 한 사실이 문자, 녹취파일 등의 객관적 증거로 증명되므로 피고인에게 벌금 300만 원이 선고되었다.


피고인이 항소를 해서 필자가 항소심의 국선변호인으로 선정되었다.


피고인은 필자에게,


변호사님, 너무 억울합니다. 억울해요.

라며 하소연을 했다.

필자가 피고인이라도 억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고인이 피해자를 만난 이유도,

피해자가 피고인을 찾아와 샘플제작을 의뢰했기 때문이었고,

본건 협박사건의 시작도

피해자가 샘플제작비를 지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피해자는 자신이 경찰에 신고해서

피해자라는 위치를 선점하여 피해를 받았음을 주장하며 납품대금도 지급하지 않았음에 반하여,


피고인은 자비를 들여 피해자에게 납품했지만, 납품대금도 받지 못하고 벌금 300만 원까지 납부해야 했고, 전과도 생겼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피해자가 피고인을 도발했다고 하더라도 피고인이 욕설 등으로 협박한 사실 자체를 부인할 수는 없었다.


항소심에서는 1심과 다른 사정변경이 없는 한, 1심 선고가 유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필자는 ‘피고인이 본건에 이른 경위를 자세히 설명하여 양형상 감경사유를 주장하면서 “피해자와의 합의”로 벌금형의 집행유예나 선고유예를 받는 방향’을 피고인에게 제시했다.


그러자 피고인이 말했다.

“피해자가 합의 안 한데요.
1심에서도 합의하려고 했는데 피해자가 거부했어요. 합의 못해요.”


‘아~ 그렇구나, 피해자가 합의할 이유가 없구나’

라는 생각이 그때서야 스쳐 지나갔다.



피해자는 이미 대금지급의무를 사실상 면하는 이익을 받았으니

굳이 피고인과 합의할 이유가 없었다.



피해자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대가인 샘플대금을 납부해야 했지만,

피고인의 형사처벌로 인해 사실상 대급지급의무를 면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 되었다.



피고인은 어떻게 행동했어야 할까?


피고인이 피해자를 만나 샘플대금을 받기 위해서, 만약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1) 피고인은 피해자를 만나러 갈 때 모든 상황을 녹음할 준비를 하고 갔어야 할 것이다.

2) 또한, 피해자가 피고인의 감정을 긁어서 피고인을 도발하게 할 수 있음을 예상하고

 “하루 사이에 늙었네요. 사장님, 29만 원 되게 급했나 봐”라고 피고인을 도발하는 발언을 듣더라도,

감정을 조절했어야 할 것이다.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면,
채권자가 오히려 가해자가 돼버리기 때문이다.



이전 05화 너무 간절하다면, 너무 절박하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