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궁금했다.
끼리끼리 만난다고 하는데
왜 그 착한 사람이 범죄자를 만나
피해를 당하게 되었을까?
착한 사람이 악한 사람을 만나는 연결고리는 무엇일까?
필자는 형사법정에서 범죄를 저지른 수천 명의 피고인들을 변론하면서, 그들이 원했던 것은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욕구"와 "감정" 충족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는,
살기 위해서 움직이고, 인정받기 위해서 움직이고,
누군가를 또는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해서 움직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피고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다만 문제는, 그 "욕구"와 "감정"을 "위법"하게 충족시키려 했다는 것이다.
모든 피고인들을 일반화시킬 수는 없겠지만,
1) 사기, 횡령, 배임 등 금전적 이익을 취하는 범죄를 저지른 대다수의 피고인들은, 생존 욕구(돈)를 충족시키기 위해 범죄를 저질렀고,
2) 강간, 강제추행 등 성범죄를 저지른 대다수의 피고인들은, 성적 욕구 충족을 위해 범죄를 저질렀으며,
3) 모욕, 상해, 살인, 방화 등의 범죄를 저지른 대다수의 피고인들은, 감정조절의 어려움이나 정신적 문제 등의 이유로 범죄를 저질렀다.
결국 범죄란, ‘욕구’와 ‘감정’을 ‘위법’한 방법으로 충족시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범죄자가 원하는 건 무엇일까?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쉽게” 충족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범죄자는
'욕구'와 '감정'을 "쉽게" 충족시켜 줄 수 있는
"쉬운(약한)" 상대를 찾는다.
예를 들어
사기 범행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거짓말을 해서 다른 사람의 돈을 편취하고 싶다. 어떤 사람에게 거짓말을 해야 돈을 쉽게 받아낼 수 있을까?
착한 사람에게 "도움이 필요한 사람, 불쌍한 사람"이라고 속이면 그 착한 사람은 도와주고 싶은 마음에 돈을 쉽게 줄 가능성이 클 것이다.
필자가 형사법정에서 만난 수천 명의 피해자들 중에 대다수는 착한 사람이었고, 범죄자들은 그 착한 사람을 피해자로 선정했다. 그렇게 착한 사람이 범죄자를 만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착한 사람은 누구나 쉽게 피해자가 되는 것일까?
사실,
"착하다"는 것이 "약하다(쉽다)"는 것과 동의어는 아니다.
피해자들 중에 착한 사람들의 비율이 높은 것이 사실이더라도, 모든 착한 사람들이 피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범죄를 저지르고 싶은 사람은
바꿔 말하면,
아무리 착한 심성을 갖고 있더라도
범죄에 성공하기 “어려운” 사람은
감히 피해자로 선택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