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춤추는 헤르만 헤세 May 22. 2021

영혼들이 모여 춤추는 곳


모두가 충격에 빠진 떠들썩한 사건이었다. 온갖 매스컴에는 그의 기사가 가득했다. 공연을 주최했던 무용단 측에서는 ‘무용수의 컨디션 저하로 인해 공연이 취소되었고, 추후 다시 공연 일정을 발표하겠다.’라는 애매한 대답을 남겼다. 그 이후로 몇 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그를 향한 여러 가지 소문이 맴돌았다. ‘빡빡한 공연 스케줄로 인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 그랬던 것이다.’, ‘애인에게 버림받은 충격으로 그랬던 것이다.’, ‘기억상실증에 걸려서 그랬던 것이다.’ 등 사람들은 서로 의견을 내기 바빴다.     


그는 자신의 집에 틀어 박혀 무언가를 사러 갈 때 빼고 일절 밖에 나오지 않았다. 모든 연락을 차단하고 친구들과 가족들조차 만나지 않았다. 온종일 태엽이 다시 감아지기만을 기다렸다. 다시 감아지기만 하면 무대로 바로 복귀하여 예전의 명예를 되찾을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면서. 태엽을 위해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기름칠도 해보고, 뜨거운 물에도 담가보고, 심지어 무거운 물건을 태엽에 올려놓고 억지로 몸을 비틀어보기까지 했다. 그러나 엄청난 고통만 느껴졌을 뿐, 태엽은 미동도 없었다. 그렇게 그는 하루가 다르게 초췌해져 갔다. 그리고 사람들에게서 점점 잊혀갔다.     


우울의 끝을 달리던 날들에 변화가 찾아온 건 그때였다.

음식을 사기 위해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마트를 향했을 때였다. 한 노인이 음식을 골라 담던 그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는 노인의 시선을 느꼈다. 혹시나 자신을 알아본 사람이 아닐까 걱정이 되어 빠르게 계산을 하고 나가려 했다.     


“그런 걸 등에 차고 다니면 안 불편한가?”     


그는 귀를 의심했다. “네?”

당황해서 목소리가 떨렸다.     


“그 태엽 말일세. 꽤나 고생했겠구먼.”     


“이.... 이게 보이십니까?”     


노인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날리고 마트에서 나갔다. 그는 고르던 음식을 제자리에 던져 놓고 급하게 노인을 쫓아갔다. 어쩌면 저 노인이 태엽에 대한 해답을 찾아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노인의 걸음은 빨랐다. 그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노인을 붙잡았다.     


“잠시만요! 태엽이 어떻게 보이시는 거죠? 대답해주세요! 제 인생이 달린 문제입니다.”     


노인은 그를 빤히 쳐다보더니 아무 말없이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았다. 그는 헐떡이는 기분을 가라앉히고 노인의 옆에 앉았다. 노인의 말을 기다렸다. 노인은 한참 동안이나 입을 열지 않았다. 초조한 마음에 그는 대답을 재촉하려 했다. “저....”  


“자네는 그 태엽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네? 태엽이요?”     


“다시 묻겠네. 자네에게 태엽은 무슨 의미인가?”     


질문을 받고 싶은 게 아니었다. 태엽을 감을 수 있는 방법을 아는 게 급했다. 그는 대충 생각하고 말했다.     


“저에게 축복이죠. 저를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게 해 준. 근데 지금 이 태엽이 감아지지 않아 축복이 아니라 저주 같습니다. 태엽 때문에 춤을 출수가 없어요.”     


어색한 침묵이 지나갔다. 노인은 또 아무 말없이 가만히 앉아있었다. 그는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선생님, 태엽을 다시 감을 수 있는 방법을 아시나요? 알려주신다면 사례는 원하시는 만큼 하겠습니다.”     


“날씨 참 좋지 않는가?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은 바람이 부는군 그래.”     


“네. 정말 좋네요. 그래서 방법을 아시나요?”     


그는 흥분해서 목소리가 높아졌다.     


“나는 모르네. 다시 감는 방법. 내가 아는 건 이것 하나뿐이네.”     


노인은 잠시 숨을 고른 후 말을 이었다.     


“ ‘영혼들이 모여 춤추는 곳’을 찾아가게나. 그곳에서라면 태엽에 대해 무언가를 얻을 수 있을 거야. 난 이만 가보겠네. 행운을 빌겠네.”     


노인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멍하니 방금 들은 말을 곱씹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내 정신을 차리고 떠나려는 노인에게 소리쳤다.     


“영혼들이 춤추는 곳이요? 영혼이 춤을 춘다니,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말이 되나요? 숨겨진 뜻이 있는 건가요? 그곳이 어디인가요? 어디로 가면 영혼을 볼 수 있나요? 정확한 위치를 모르신다면 대략 어디쯤에 있는지 알려주세요!”


노인은 사라졌다. 분명히 방금까지 쫓아갔는데 눈앞에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노인을 찾았다.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노인의 차림새를 설명하며 혹시 보았느냐고 물었지만 모두 고개를 저었다.


어느새 하늘이 어둑어둑해졌다. 그의 옷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숨 쉬기 힘들어 마스크를 벗어버렸다. 그는 아까 노인과 함께 앉았던 벤치로 돌아가 앉았다. 깊은 생각에 잠겼다.


태엽이 박힌 등 쪽이 아려오는 것 같았다.


이전 01화 오르골 무용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