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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헤르만 헤세 May 24. 2021

축제


노인과의 기묘한 만남을 겪은 그는 집으로 돌아가 노트북을 꺼내 ‘영혼들이 모여 춤추는 곳’을 검색했다. 당연히 그런 곳은 존재하지 않았다. 한참을 모니터 앞에서 끙끙대다가 근처 도서관에 가보기로 마음먹었다. 도서관에서 영혼에 관련된 서적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었다. 읽고, 또 읽고, 한 도서관에서 원하는 답을 찾지 못하면 다른 도서관으로 옮겨 새로운 책들을 읽었다. 그렇게 살고 있는 도시의 모든 도서관을 돌아다녀도 결과는 좋지 못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전 세계에 있는 도서관들의 목록을 뽑았다.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이 목록의 도서관을 다 돌아보겠다고 결심했다. 무모한 다짐이었지만 이렇게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 태엽이 그의 간절함을 알아주고 다시 돌아가 줄 것 같았다. 그는 가지고 있는 집과 재산을 처분하고 긴 여행길에 올랐다.     


여행은 고됐다. 방랑자처럼 이곳저곳 닥치는 대로 돌아다녔다. 영혼 박사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영혼에 대해 공부했다. 그러나 그의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듯 ‘영혼들이 모여 춤추는 곳’의 단서는 손에 잡히지 않았다. 호기롭게 떠났던 그의 눈빛이 흐려져갔다. 행색이 초라해지고 가진 돈도 거의 떨어져 갈 때쯤, 어느 산속 깊은 곳에 있는 한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은 포근했다. 시끄러운 경적 소리와 빽빽한 건물이 가득한 도시와 상반되는 모습이었다. 나무들이 울창했고, 공기는 상쾌했다. 부족함 없는 생활을 해서 그런지 사람들의 표정도 여유 넘쳐 보였다. 이방인인 그를 부드러운 미소로 맞이해주는 마을 주민들 덕분에 피곤했던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두리번거리며 마을을 구경하는 그를 향해 한 젊은 남자가 다가왔다. 아직 앳된 얼굴이었지만 어딘가 기품 있어 보이는 남자였다.     


“안녕하세요! 전 이 마을의 촌장입니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꽤 멀리서 오셨나 보군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별 것 없는 작은 마을이지만 편히 쉬다 가세요. 보시다시피 오늘 밤에 있을 축제 준비로 다들 분주하지만 모두 웃는 모습으로 반가워해 줄 겁니다.”     


“이곳에 도서관이 있나요?”     


“아, 도서관이요? 학자이신가 보군요? 무언가 연구하려고 여행을 떠나신....?”     


그는 다시 고개를 대충 끄덕였다.     


“역시 풍겨져 나오는 느낌이 다르더니 대단하신 분이셨군요! 네. 도서관은 저쪽 골목을 통해 걸어가시면 있습니다. 근데 워낙 작은 도서관이라.... 학자님께서 찾으시려는 정보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촌장은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이내 밝은 목소리로 도서관으로 향하는 그에게 소리쳤다.     


“좋은 연구 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밤에 마을에서 큰 축제가 열리니 시간 되신다면 함께 즐겨주세요!”


그는 도서관에 도착했다. 도서관은 촌장의 말대로 무척 작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열심히 책을 뒤져보았지만 역시 원하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허탈한 심정으로 도서관에서 나오니 주변이 캄캄했다. 시간이 늦어 하루 묵을 곳을 찾아야 했다. 그때, 마을의 광장 쪽에서 폭죽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밤하늘에 화려한 꽃들이 반짝이더니 이내 사라졌다. 약간의 호기심이 생긴 그는 숙소를 찾기 전에 잠시 축제를 구경하기로 했다.     


광장에 가까워질수록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그를 감쌌다. 마을 전체가 모인 것 같았다. 달콤한 음식 냄새와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어우러져 있었다. 다 함께 웃고 떠들며 행복해하는 모습에 그도 희미한 미소를 짓게 되었다.     


“한참 찾았습니다. 여기 계셨군요. 이미 마을을 떠나신 줄 알았습니다!”     


낮에 만났던 촌장이 인파를 헤치고 다가와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촌장의 손에는 음식이 담긴 접시와 음료가 들려있었다. 촌장이 먹을 것을 건넸다. 배는 별로 고프지 않았지만 그는 감사히 받았다.     


“그래서 연구는 잘 끝나셨나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무엇에 관해 공부하시는지 알 수 있을까요?”     


“영혼에 대한 책을 찾아봤어요. 이곳에서도 제가 원하는 답을 찾을 수 없었네요.”     


“아.... 영혼이라. 뭔가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먼 듯한 애매한 것이죠. 저희 마을이 도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할 따름입니다.”


촌장이 슬퍼하며 말했다. 잠시 흐르는 침묵 사이로 폭죽 소리가 들렸다.     


“이건 어떤 축제인가요?”


그가 음식을 맛보며 물었다.     


“아! 저희 마을에서는 매년 이맘때쯤에 일주일간 축제를 엽니다. 오늘이 바로 그 첫날이죠.”


촌장이 신이 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어서 그에게 다시 되물었다.


“혹시 ‘세상을 삼킨 아이’라는 동화를 아시나요?”     


“네. 어릴 적에 어머니가 읽어주신 기억이 나요.”     


“그 동화에서 등장한 마을이 바로 이곳입니다! 원래 저희 마을에서 먼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이야기였는데 어쩌다 보니 세계로 널리 알려지게 되어 사람들이 동화로 읽더라고요. 덕분에 저희 마을 홍보도 되고, 참 감사하죠. 동화에서 아이가 태어난 날이 오늘이기 때문에 이렇게 큰 축제를 여는 겁니다.”     


촌장의 말이 끝나자 광장에 음악의 전주가 울려 퍼졌다. 사람들은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하나둘씩 가운데로 모여 음악에 몸을 맡기기 시작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서로와 눈을 맞추며 춤을 추었다. 축제가 무르익어가고 있었다.     


“드디어 시작했네요! 저희 축제의 하이라이트입니다! 학자님도 함께 하시죠!”


촌장이 그의 손을 잡고 이끌었다. 그는 화들짝 놀라며 손을 뿌리쳤다.     


“전 괜찮습니다. 춤을 잘 못 춰서요. 그냥 여기서 보기만 할게요.”     


“에이, 왜 그러실까? 그러지 말고 같이 춥시다! 여기까지 오셨는데 아쉽잖아요.”     


“아닙니다. 사실 전 춤을 출 수 없는 몸이라서요. 자세한 건 말할 순 없지만 지금은 춤 추지 못해요.”


그가 단호하게 이야기하자 촌장도 더 이상 재촉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의 옆에 다시 앉아 춤과 음악이 가득한 광장을 바라보았다.     


“학자님께서 이렇게까지 거부하시니 어쩔 수 없군요. 부끄러움이 많으신가 봅니다. 하하!”


촌장은 어색하게 웃음을 보였다. 잠시 후,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춤을 출 수 없는 몸이라, 과연 그런 몸이 진짜 존재하나요? 물론 학자님의 상황은 제가 잘 알지 못하지만 이런 생각이 듭니다. 춤을 춘다는 게 무엇인가요? 저 앞을 보세요. 저들 중 춤을 배운 사람은 한 명도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즐겁게 춤을 추고 있죠. 저기를 보세요. 저분은 다리를 크게 다쳐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지만 그 휠체어 위에서 춤을 추고 있잖아요. 정해진 동작도 없고, 음악에 딱 맞아떨어지지도 않지만 그래도 모두 춤을 추고 있어요. 좋은 음악에 몸을 던지는 거죠. 오직 자신을 위해서, 이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즐기는 겁니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즐기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에요. 춤을 춘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요?”     


길게 이야기를 마친 촌장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머리를 긁적였다. 그리고 말을 덧붙였다.     


“제가 두서없이 말이 많았네요. 그럼 전 이만 축제를 즐기러 가보겠습니다! 학자님도 마음이 바뀌신다면 들어오세요!”     


촌장이 자리를 떠났다. 몸을 흔드는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멍하니 촌장이 춤을 추는 모습을 바라보던 그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촌장의 춤이 너무 웃겼던 것이다. 하지만 촌장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신나는 음악 속에서, 뜨거운 축제의 열기 속에서, 사람들의 넘치는 에너지 속에서, 각자의 방식대로 춤을 즐기고 있었다.


그는 생각에 빠졌다. ‘진심으로 즐기는 춤’이라.

그렇다면 지금까지 그는 춤을 즐기고 있었을까. 확실하게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저 태엽이 이끄는 대로 몸을 움직였을 뿐, 자기 자신의 기분은 생각해 본적이 한 번도 없었다.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음악의 리듬에 맞춰 손가락을 까딱거리고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그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

‘손가락을 움직인 이것도 춤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태엽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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