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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춤추는 헤르만 헤세 Sep 10. 2021

나무들


헤르만 헤세의 시와 에세이, <나무들>을 읽었다.

책을 읽은 곳은 광화문 교보문고였지만 마치 울창한 숲 속에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나뭇가지 사이로 불어 들어오는 바람이 함께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정말 숲으로 여행을 떠나 무수한 나무들에게 기대어 이 책을 읽는다면 어떨까란 상상도 해보았다. 역시 헤르만 헤세의 글은 놀랍다.            

   


나무는 언제나 내 마음을 파고드는 최고의 설교자다. 나무들이 크고 작은 숲에서 종족이나 가족을 이루어 사는 것을 보면 나는 경배심이 든다. 그들이 홀로 서있으면 더 큰 경배심이 든다. 그들은 고독한 사람들 같다. 어떤 약점 때문에 슬그머니 도망친 은둔자가 아니라 베토벤이나 니체처럼 스스로를 고립시킨 위대한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이들의 우듬지에서는 세계가 속삭이고 뿌리는 무한성에 들어가 있다. 다만 그들은 거기 빠져들어 자신을 잃지 않고 있는 힘을 다해 오로지 한 가지 만을 추구한다. 자기 안에 깃든 본연의 법칙을 실현하는 일, 즉 자신의 형태를 만들어내는 것, 자신을 표현하는 일에만 힘쓴다. 강하고 아름다운 나무보다 더 거룩하고 모범이 되는 것은 없다.     


나무 한 그루가 베어지고 벌거벗은 죽음의 상처가 햇빛 속에 드러나면, 묘비가 되어버린 그루터기에서 나무의 역사 전체를 읽을 수 있다. 나이테와 아문 상처에는 모든 싸움, 고통, 질병, 행운, 번영 등이 고스란히 적혀 있다. 근근이 넘어간 해와 넉넉한 해, 견뎌낸 공격, 이겨낸 폭풍우들이 쓰여 있다. 가장 단단하고 고귀한 목재는 좁다란 나이테를 가진 나무라는 사실을, 가장 파괴할 수 없고 가장 강하며 모범적인 나무의 몸통은 산 위 높은 곳, 늘 위험이 계속되는 곳에서 자라는 나무라는 사실을 농부네 소년도 안다.          


(중략)


우리가 자신의 철없는 생각을 두려워하는 저녁때면 나무는 속삭인다. 나무는 우리보다 오랜 삶을 지녔기에 긴 호흡으로 평온하게 긴 생각을 한다. 우리가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동안에도 나무는 우리보다 더 지혜롭다. 하지만 우리가 나무의 말을 듣는 법을 배우고 나면, 우리 사유의 짧음과 빠름과 아이 같은 서두름은 비할 바 없는 기쁨이 된다. 나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배운 사람은 더는 나무가 되기를 갈망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 자신 말고 다른 무엇이 되기를 갈망하지 않는다. 그것이 바로 고향이다. 그것이 행복이다.               


-본문 중에서



헤세가 마주한 나무는 무엇이었을까.

그의 마음을 파고드는 최고의 설교자는 바로 나무라는 것에, 나무들에게서 경배심을 느낀다는 것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릴 적 놀러 간 산속 깊은 곳, 빽빽하게 늘어진 나무들 사이에서 왠지 모를 평온함과 존경심을 느껴본 적이 있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의 교목인 커다란 오동나무의 그늘 아래서 이 나무처럼 모두를 감싸주는 큰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다짐을 한 기억이 있다. 이렇듯 나무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전해줄 수 있는 매개체인 것이 분명하다.     


헤세는 나무가 자신을 잃지 않고 있는 힘을 다해 추구하는 한 가지는 자신의 형태를 만들어 내는 일, 자신을 표현하는 일이라고 했다. 무수한 나무들이 한데 모여 거대한 숲을 이룬다. 그 숲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나무들 때문이다. 언뜻 보면 비슷해 보이는 나무들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다른 시간과 상처를 품고 견뎌 꼿꼿이 서있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서 묵묵히 나를 찾아가는 일. 그것이 바로 나무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궁극적인 핵심일 것이다.     


마지막 문단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우리가 자신의 철없는 생각을 두려워하는 저녁때 속삭이는 나무. 우리보다 오랜 삶을 지녔기에 긴 호흡으로 평온하게 긴 생각을 한다....’

‘나무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배운 사람은 더 이상 나무가 되기를 갈망하지 않고, 자기 자신이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그것이 행복이다.’

헤세는 나무에게서 자신이 무엇인지 찾아 떠나란 교훈을 얻었다.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싯다르타> 등 헤세는 자신이 쓴 소설 속에서 그 답을 찾았을지 궁금하다.


<가지 잘린 떡갈나무>

나무야, 그들이 널 어떻게 잘라놓은 거니?
너 어찌 그리 낯설고 이상한 모양이냐!
백번이나 얼마나 아픔을 겪었기에 네 안에
반항과 의지 말고 다른 게 없단 말이냐?
난 너와 같아, 잘리면서 아픔을 겪은
목숨을 망가뜨리지 않고
시달리며 견딘 야비함에서 벗어나 매일
다시 빛을 향해 이마를 들어 올려.
내게 있는 약하고 부드러운 부분을
세상은 죽도록 비웃었어,
하지만 내 본질은 부서지는 게 아니야.
나는 만족하고 화해하며,
백번이나 잘린 가지들에서
참을성 있게 내 잎사귀를 내놓는 거야.
그 온갖 아픔에도 나는 그대로 남아
이 미친 세상을 사랑하는 거야.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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