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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rete Oct 11. 2023

16. 모두의 극장 Theater für alle!

뉘를베르크극장의 음악과 연극교육매개를 중심으로

필자가 다니는 공연예술대학의 대학원 과정 중에 실습은 필수이다. 실습은 극장, 오케스트라, 축제 등 공연예술을 주최하는 어느 기관이든 가능하다. 다만 실습자리는 직접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 극장매개 담당 강사가 근무하는 뉘를베르크극장에 문의했는데 흔쾌히 2주간 실습을 받아 주었다. 이 글은 실습기간 동안 경험한 극장의 음악과 연극의 예술교육 프로그램의 준비 및 진행 과정에 관한 글이다. 독일 극장 시스템과 예술 교육 과정의 일부를 엿볼 수 있는 글이 되기 바란다.


1. 미취학 아동을 위한 동화 렉쳐 콘서트 - 가키타의 달걀

드라마투기(극작가)와 음악교육감독은 미취학 아동에게 의미 있는 동화를 선정한다. 드라마투기는 동화내용의 편집 및 교정, 음악은 음악감독의 몫이지만 수차례 회의를 거쳐 음악과 이야기가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한다. 가키타의 달걀이라는 동화는 알을 낳지 못하는 닭이 어느 날 알 하나를 품게 되는데 알에서 닭이 아닌 악어가 깨어난다. 엄마 닭과 아기 악어가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을 통해 타인의 다른 점은 틀린 게 아니다는 교훈을 전달하는 이야기이다. 클라리넷, 오보에, 바순의 트리오 음악이 메인이 되어 동화의 내용 중간중간 들어간다. 유치원생에게 들려줄 음악이니 동요 수준의 음악이 짜깁기 됐을 것으로 상상할 수 있으나 절대 아니다. 독일 대부분의 극장과 오케스트라에는 음대생을 위한 아카데미 프로그램이 있는데 연주는 이 아카데미의 실습생들이 맡는다. 연습의 효율을 위해 모든 악보에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연주하고 어떤 대사 다음에 음악이 나와야 하는지 표시를 하는 작업도 이들이 체크한다. 이 공연의 연습은 10월 중순에 시작되며 공연은 11월 말에 열린다.

동화 렉쳐 콘서트에서 연주되는 악보들


2. 어린이 오페라 - La Malibran

이 프로그램 또한 드라마투기의 역할이 크다. 어린이 눈높이에 맞게 대사와 내용을 각색한 오페라를 음악 감독과 1시간이 약간 넘는 프로그램으로 만든다. 성인 성악가들과 합창단 아이들의 적절한 배역 분배 또한 그들이 기획한다. 성인 배역은 오페라 스튜디오 단원이 맡는다. 음대에서 성악을 전공한 그들은 장학금을 받으며 일정 기간 동안 극장에서 기획되는 음악회나 오페라에 참여한다. 그밖에 오페라 스튜디오에서 제공하는 성악레슨 및 오페라 연기 수업도 받는다. 어린이 오페라 또한 수차례 회의를 거쳐 각 장면마다 필요한 소품, 의상, 조명, 배우의 대사와 동선 등이 결정되고 최종 자료는 담당 파트에 보내지며 연습, 리허설, 공연 일정에 맞춰 착오 없이 준비된다. 이 공연 또한 11월 중에 열린다. 그 이후엔 연말 가족 프로그램으로 호두까기인형을 준비한다고 했다.


연습에 쓸 소품이 이런 형태로 연습실에 배달되었다.


3. 어린이, 청소년 합창단

긴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 학기말에 합창단원 신청을 받는다. 신청한 아이들은 짧은 오디션을 거쳐야 한다. 선발 과정에서 목소리나 노래실력뿐 아니라 아이들의 의지와 호기심을 가장 중요하게 본다고 했다. 부모에 의해 억지로 하는 아이는 없다고 보면 된다. 이 극장에는 65-70명 정도의 아이들이 합창단원으로 등록되어 있다. 대기자도 20명이 넘는다. 극장 시즌의 본격적인 연습이 시작되기 전 오디션에 합격한 아이들과 부모를 극장에 초대한다. 오페라 작품에 어린이 배역으로 참여하거나 합창단이 합류되기 때문에 청소년 보호법에 따라 각종 동의서를 부모와 학교로부터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극장에 있는 동안 극장 보험 적용을 위해 모든 학생과 부모는 극장과 연계된 병원의 의사와 짧은 면담을 해야 한다. 모든 서류에 동의 서명을 받으면 본격적인 합창 수업을 한다. 여러 화성이 쌓여 하나의 음악으로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을 배운다. 또한 몇몇은 큰 오페라 무대에 서보는 경험을 갖는데 아이들에게 귀중한 자산임에 틀림없다.


의사 면담 체크리스트


4. 청소년 연극 워크숍과 청소년 연극반

학교와 연계된 프로그램으로 김나지움 학생들에게 극장 견학, 워크숍, 연극관람을 제공한다. 이는 뉘른베르크 극장의 70년 전통이 있는 '학교자리대여' (Schulplatzmiete)라는 프로그램이다. 필자의 실습기간에는 15-17세 학생들 15명이 극장을 방문했다. 해설과 함께 극장 전체를 둘러보고 쉬는 시간 30분 포함 9시-13시까지 진행되는 연극 워크숍을 했다. 사춘기의 정점에 있는 나이라 연극 전공 강사가 애를 먹기는 했지만 이미 예상한 듯 노련하게 이어갔다. 아침 9시 쭈뼛쭈뼛했던 아이들이 끝날 때쯤 되니 표정은 밝아지고 움직임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청소년 연극반도 운영이 된다. 이들은 본인의 의지로 등록한 아이들이라 수업참여도와 퀄리티가 높았다. 몸풀기부터 즉흥극까지 여러 단계에 거쳐 수업이 진행되었다. 특히 음악에 몸을 맡기는 시간에 아이들은 무아지경에 빠져 온 공간을 장악하며 누구도 의식하지 않은 채 소리에 반응하는 몸을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즉흥극의 수준은 바로 무대에 세워도 될 것 같은 실력이었다. 앞서 설명한 연극 워크숍에 참여해 본 아이들이 청소년 연극반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들어서 아는 것과 실제 경험한 것의 차이는 엄청나다.  


5. 청소년 오케스트라

합창단 아이들의 선발과정과 비슷하지만 오디션을 통해 중급이상의 연주실력을 갖춘 아이들이 뽑힌다. 새 시즌의 연습을 위해 담당자는 이미 전 시즌에  기획된 작품의 악보를 아이들이 방학기간 연습해 올 수 있도록 미리 제공한다. 10월에는 60명이 넘는 아이들의 부모로부터 받은 각종 문의에 대한 답이 주된 업무이다. 한국이었다면 단체톡으로 해결될 공지사항 및 개인 문의사항을 이메일로 처리하고 있었다. 비생산적이었으나 독일은 개인정보보호에 민감하기 때문에 공공기관에서 진행하는 일의 과정은 특히 더 서류화하고 기록으로 남는 이메일을 선호한다. 청소년 오케스트라 단원은 극장 오케스트라 단원의 앙상블 지도를 받으며 합주 연습은 부지휘자, 연주는 극장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지휘한다.


어린이, 청소년 콘서트 프로그램 브로슈어


6. 시니어 극장교육 프로그램

월 2회 진행되는 시니어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할머니들만을 대상으로 한다. 이들은 대부분 극장의 정기회원이면서 열혈팬이자 후원자이다. 30년이 넘은 이 극장의 전통 프로그램 중 하나이다. 1부가 시작되기 30분 전에 테이블 번호가 적혀있는 티켓을 받은 후 자리에 앉는다. 동그란 테이블에 5명씩 앉도록 되어 있었는데 약 200석이 매진이었다. 이들은 극장에서 준비한 케이크와 차를 마시며 공연을 기다린다. 대부분 70대 이상이며 이날만큼은 근사하게 차려입고 청각, 미각을 즐기는 시간이다. 공연 프로그램은 그때그때 다르지만 대체로 성악파트에서 가곡의 밤 형식으로 준비한다. 분위기를 편안하고 유쾌하게 만드는 재치 있는 작품 해설은 필수이다. 인터미션이 끝나고 2부에는 샴페인이나 탄산 주스를 마신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독일의 할머니들은 노후에도 문화예술을 즐기며 극장에서 명예봉사활동을 하고 정기적으로 후원한다.  


오페라 스튜디오의 한국인 단원이 노래를 불렀는데 너무 잘해서 할머니들이 좋아하셨다.


공연예술이 교육과 결합해 양질의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환경은 매우 중요하다. 독일의 극장 시스템은 이를 가능하게 한다. 한데 모여 있으니 다장르와 협업이 가능하고 생산적인 작업 환경이 조성된다. 이는 비용절감으로 이어질 수 있는 큰 장점이기도 하다. 악기 연주자를 위한 아카데미 단원, 오페라 스튜디오 단원 시스템 역시 음악교육의 연장선상에 있다. 예술분야뿐 아니라 극장에서는 운영 파트를 위한 실습과 인턴 프로그램도 운영된다. 예를 들면 대학교 수업 월-수요일, 극장 실습은 목, 금요일. 이들이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면 초년생이어도 경험이 풍부하다. 극장은 이처럼 교육 프로그램을 넘어서 청년 예술가에게 직업 교육 및 일자리까지 풍부하게 제공한다.


독일 극장의 운영 시스템은 기존의 방식만 고수하지  않는다. 현대 기술의 발전에 발맞추어 시도하고 도전한다. 예를 들면 미디어 시대에 맞는 실험적 작품이나 VR 공연예술, 시대의 화두를 다루는 예술교육에  열려있으며 엘리트주의를 추구하지 않는다. 이는 문화예술의 공공성을 충실히 수행하는 독일 극장이 탄탄하게 이어져오는 이유이다.


덧붙이는 글:

1. 뉘른베르크 주립극장의 음악, 연극 교육을 중심으로 작성하였으며 타 극장의 교육 프로그램과 생산방식은  다를 수 있습니다.

2. 10번 글과 중복되는 내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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