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디까지 놀아 봤니? 2탄

숲속 청소부

by 탐험가

기록의 소중함을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동안 내 기억을 자만하며 지냈던 생활이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막상 글 쓰려하니, 머릿속에는 결과만 남아 있었다.

내가 기억하고 좋으면 됐지 뭣 하러 그런 걸 글로 남기냐며 귀찮음을 핑계로 했던 말들이 떠오른다.


'캠핑놀이 전자책'을 쓰며 절실히 느꼈다. 놀이 방법만 남아 있을 뿐 그때 겪었던 사소한 행동과 감정들은 작게 남아 있었다. 처음은 다 그렇다고 위안하며 그래도 그거라도 기억해내 기록을 한 덕분에 브런치에는 조금 더 풍부하게 글을 쓸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마무리 짓자.




나는 지독히도 어린아이가 미디어를 가까이하는 것을 싫어한다. 가정보육 8년 동안 아무리 힘들어도 TV 켜 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내 육아의 큰 기준 중 하나였다. 다른 아이가 마트나 식당에서 스마트폰을 보며 엄마 아빠를 기다리거나,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 눈살을 찌푸리곤 했다. 저러면 아이 정서에 안 좋을 텐데, 기다림도 배우고, 식사 시간엔 온 가족이 함께 이야기하며 먹어야 할 텐데 하며 오지랖을 떨었다. 각 가정마다 상황에 맞는 이유가 있을 텐데, 그땐 나도 초보 엄마라서 그랬다. 이제는 나름 각 가정의 양육 방식을 존중하는 사람이 되고 있다.


미디어를 가까이하지 않는 대신, 아이가 어떻게 놀아도 눈 감아 주었다. 집안이 좀 엉망이 되어도 스스로 찾아서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환경을 마련해 주었다. 그런 덕분인지 '놀이 근육'이 나도 아이도 많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활동을 좋아하고, 요리를 해도 같이 하고 싶다. 요리가 멋은 안나도 함께 만들면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다. 유아기 시절을 잘 놀아서 그런지 성장하면서도 어디 가도 잘 논다는 말을 듣곤 한다. 놀이 근육은 집에서 뿐만 아니라 캠핑에서도 빛났다.


캠핑에 자주 다니기 시작하면서 아이가 좋아하는 계곡이 있는 캠핑장을 주로 선택했다.

캠핑장을 고르는 기준이 하나 더 있다. 놀이방이나 방방장이 없는 곳을 선호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아이들과 자연에서 되도록이면 새로운 놀이를 찾아내고, 즐기고 싶어서다. 이런 기준으로 찾다 보면 생각보다 캠핑장 고르기가 쉽지는 않다. 자리가 비어 예약하려고 하면 방방장이 있고, 원하는 캠핑장을 골랐는데 예약이 꽉 차거나... 그래도 내 기준은 나름 명확하다.


계곡이 있는 캠핑장은 여름이면 물놀이, 낚시, 다슬기 채집 등 할 수 있는 놀이가 많지만 다른 계절에는 특별히 할 수 있는 놀이가 많지 않다.


겨울에서 봄이 오는 애매한 계절 계곡물에 가면 늦가을~겨울 동안 떨어진 나뭇잎과 나뭇가지가 뒤 썩여 있다. 여기저기 돌들도 뒤 엉켜 물이 잘 흐르지 못하고 고여 있곤 한다.

계곡의 모습이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구나 싶어 쓸쓸함이 느껴지곤 한다. 계곡을 바라보며 아이는 쭈그리고 앉아 말라빠진 나뭇가지로 물속을 휘휘 저어 본다. 그러다 보면 바닥에 깔린 나뭇잎들이 떠오르고 물속이 뿌옇게 흐려진다.


그 작은 행동이 우리 집의 '캠핑 놀이'가 됐다. 매번 그 계절이 되면 계곡으로 달려가 큰 나뭇가지를 고르고, 누가 더 멋진 청소 도구를 고르나 대결하며 계곡 청소를 시작했다. 바닥에 깔린 나뭇잎을 건지다 보면 속이 후련해진다. 아이를 따라 시작하니 멈추기가 어려웠다. 나름 중독성이 있다. 신랑은 내게 뭘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그렇게 재미있냐고 묻곤 했다. 본인도 엄청 열심히 했으면서 말이다.


해 묵은 청소를 하듯 나뭇잎을 건져내고 막혀 있던 물길을 터주고, 돌을 옮겨 고여 있던 계곡물을 흐르게 했다. 건지다 보면 그 속에 무언가 튀어나오지는 않을까? 시꺼멓게 보이는 나뭇잎 뭉치를 보면 사실 겁도 났다. 물길을 터주고 나뭇잎이 정리되고 물이 졸졸 흐르기 시작하면 성취감이 최고다. 그렇게 우리는 두어 시간 '청소부 놀이'를 즐긴다.


우리 가족이 매년 그 계절이 되면 하는 놀이. 우리 가족만의 놀이.

그 놀이를 다른 가족 캠퍼에게 알려주고 싶다.


'숲속 청소부' 캠핑놀이!


<숲속 청소부 놀이 How to>

1. 굵고 힘이 있는 나뭇가지를 구해 옵니다. 구해 오는 과정도 즐겨 봅니다.

2. 계곡물속 나뭇잎을 나뭇가지로 건져내어 봅니다. 많이 건져 내다보면 여기저기 튀기도 하고, 재미난 에피소드가 각 가정마다 생깁니다.

3. 돌을 옮기고 예쁘게 정리해서 물이 흐를 수 있도록 길을 터 줍니다.

4. 겨울 동안 쌓여 있던 나뭇잎이 정리되고 나면 멈춰 있던 계곡물이 졸졸 흐르기 시작합니다.

5. 아이들과 소통하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서 놀이를 즐겨 봅니다.


keyword
이전 11화어디까지 놀아 봤니? 1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