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 <박쥐>
<박쥐>는 러닝타임 내내 관객들에게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그들의 본능적인 감각을 건드렸기 때문이다. 영화는 계속해서 시각적 자극과 함께 후각적인 자극 역시 예민하게 한다. 관객들은 피 냄새를 맡는 박쥐와 그들에게서 도망치는 인간들의 뒤를 따라가며, 되살아나려는 본능으로부터 도망치고 있는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인간은 원초적인 상태와 마주하기를 두려워한다. 프로이드는 인간의 원초적인 상태를 ‘원초아(id)’라고 하였는데, ‘성’과 ‘공격성’이 바로 가장 근본적인 인간의 본능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인간은 성적인 행위와 함께, 아이러니하게도 통증에 큰 쾌감을 느낀다. 폭력과 아픔을 즐기는 인간의 본능은 복수, 파괴, 파멸, 자살, 살인 등에 대한 충동과 동경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내면 깊숙이 죽음을 향한 욕망인 ‘타나토스’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이런 타나토스의 욕망을 무의식에 숨긴 채 살아간다. 사회의 질서와 틀에 맞춰 본연의 순수한 본능을 숨겨야만 하는 동물은 인간만이 유일하다. 합리적인 자아로서 도덕과 이상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인간이, 그래서 사회적 존재인 것이다.
<박쥐>는 사회적 자아로서의 인간보다는, 인간의 본성을 파헤쳐 인간에게서 순수한 결정체를 끄집어내었다. 무의식에서 들끓고 있는 피를 향한 뜨거운 욕망, 악(惡)에 대한 쾌감을 보여줌으로써 억눌린 인간내면의 모습을 정면으로 바라보도록 하였다. 그래서 관객들은 누군가가 마음속을 정확히 꼬집어낸 것처럼 어쩐지 찝찝한 기분을 안고 극장을 나오게 된다.
인간에게 남몰래 존재하는 타나토스의 욕망을 보여주기 위해서, 영화에선 ‘신부’를 필두로 세운다. 주인공 ‘상현’(송강호)은 박애사상이 가득한 신부로, 병원을 돌아다니며 아픈 환자들을 위해 기도를 해주고 그들에게 힘이 되어준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사람들은 그를 절대적으로 믿고 찬양하였다. 어디가 아프거나, 죽을 위기에 처해 있거나 등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사람들은 ‘상현’을 찾아온다. 그는 그들에게 땅에 잠시 내려오신 신과 다름없었다. 이는 나중에 ‘상현’이 흡혈귀가 된 후에도 계속 그러는데 이게 참 아이러니하다. 좋은 일을 하러 의료실험에 참여했다가 흡혈귀가 된 ‘상현’. 결국 그는 자신의 갈증을 위해 환자의 손을 잡고 기도를 해주면서 환자의 피를 핥는다. 환자의 피를 빨아먹으며 누워있는 그의 모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를 추앙하는 사람들을 보여주면서 영화는 아이러니를 극대화한다.
인간은 온갖 옷들을 겹겹이 입고 있다. 선(善), 사랑, 배려, 용서, 절제, 이성, 질서, 도덕 등 인간에게 걸쳐진 옷들은 무겁기만 하다. 박찬욱 감독은 인간에게서 이런 옷들을 모조리 벗겼다. 세상에서 가장 착하고, 이타적인 사랑과 포용으로 사람들을 감싸 안았던 ‘신부’가 하루아침에 사람들의 피를 빨아먹는 ‘흡혈귀’로 변해버린 모습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신부’ 역시 부끄러운 몸을 숨기기 위해 사회에서 걸치고 있는 옷일 뿐, ‘상현’도 ‘신부’라는 옷을 벗으면 언제든 흡혈귀가 될 수 있는, 내면에 무한한 타나토스의 욕망을 지닌 인간에 불과하다는 것을 상징하였다. 감독은 본성을 숨긴 채 온갖 가식을 보이는 사회 속에서 ‘신부’를 선택했고, ‘신부’가 ‘인간’이 되어서 어떻게 파멸해 가는지 냉소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사실 ‘상현’이 흡혈귀가 되었지만 크게 악(惡)한 모습을 보이진 않았다. 사람을 살인했다고는 하나, 그건 한 여자를 사랑하고 그녀를 아프게 한 사람에게 복수를 한 죄밖에 없다. 인간의 본능과 파멸을 충실히 보여주기 위해 ‘신부’ 캐릭터를 내세웠지만, 완벽하게 ‘신부’의 옷을 벗길 수가 없었던 것일까.
여기서 감독은 ‘태주’(김옥빈)라는 캐릭터 한 명을 더 등장시킨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버려져 모욕과 창피를 당하며 살아오다가, 의지와 상관없이 자신을 괴롭혔던 사람들이 있는 그 집으로 시집을 가게 된다. 지옥 같은 그 집에 갇혀 살아온 ‘태주’는 ‘상현’의 도움으로 흡혈귀가 된다. 그리고 그녀는 그동안 억눌렸던 모든 것들을 다 분출해내며 자유를 만끽하며 이리저리 날뛴다. 그녀에게 절제는 없다. 갈증이 나면 바로 사람을 죽이고, 인간사냥을 떠나기도 하며,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을 한 명 한 명 죽여 나간다. 감독이 보여주고 싶었던 순수하고 자유로운 ‘원초아(id)’의 모습은 바로 ‘태주’에게 있었다.
‘상현’은 그런 태주를 통제시키는데, 자신에게 매달리는 본능적인 태주와 사회 속에서 갈등하는 그의 모습이야말로 인간의 모습과 매우 비슷하다. 결국 인간은 ‘원초아(id)’와 ‘자아(ego)’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뇌하는 존재라는 것을 감독은 의도한 듯하다. 영화의 마지막에 햇빛에 드러난 흡혈귀 둘이 차 위에 나란히 앉아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장면은, 인간의 본능은 결국 다시 어둠 속으로 숨겨져야만 한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었을까.
후각은 가장 동물적인 감각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후각이 그리 예민하지 않는데, <박쥐>에선 후각에 예민한 흡혈귀 인간을 내세워 후각을 영화에서 사용하고 있다. ‘상현’과 ‘태주’는 인간의 피의 냄새를 들이마시며 이성을 잃고 본능을 흔들어 깨운다. 인간의 냄새를 맡고 인간을 찾아나서는 서사 자체가 인간의 동물적인 감각을 깨우기에 충분하며, 그것이야말로 만들어지지 않은 인간의 순수한 모습이다.
화면은 전체적으로 피로 물들여져 있다. 사람을 죽이고, 피가 튀고 흐르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관객들로 하여금 불편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데 한 몫을 하였다. 흡혈귀가 된 ‘상현’과 ‘태주’가 온 집안을 하얀색 페인트로 도배하는 장면은 주목해볼 만한데, 이 집은 후에 처참한 인간 살육의 현장이 된다. 하얀 집에 흐르는 검붉은 피와 시체들은 선명한 색채대비와 보이며 관객들에게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이 외에도 영화는 물의 이미지도 사용하고 있는데, 그 특유의 기분 나쁜 축축함으로 영화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극대화시켰다. ‘상현’과 ‘태주’가 관계를 맺을 때에도, 가족들이 그냥 탁자에 둘러앉아 게임을 할 때에도, 영화는 관객들에게 뭔지 모를 찝찝함을 최대한 느끼게 하려는 듯했다. 또한, 흡혈귀가 된 ‘상현’이 박쥐처럼 검은 옷과 검은 망토를 입고, 관속에서 잠을 자고 창문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부분이나 영화에 삽입된 음악들은 ‘판타지 장르’를 연상케 하기도 했다.
<테레즈 라캥>은 프랑스의 자연주의 소설가 에밀 졸라에게 큰 명성을 가져다주었던 문학작품이다. <테레즈 라캥>을 시작으로 문학계에선 인간의 밑바닥에 대한 탐구와 인간의 내면의 깊숙한 이해를 위한 소설들이 등장하였고, 환경의 영향을 받는 동물로서 인간을 의식하는 ‘자연주의 문학’도 대두되기 시작되었다. ‘자연주의 문학’이란, 인간을 둘러싼 환경이 인간을 선하게도 악하게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는 문학이다. 똑같은 본성을 가진 인간이더라도 어떠한 환경에 내던져지냐에 따라 그들의 운명은 바뀐다. 이는 회화에서 ‘인상주의’하고도 연결이 되는데, 에밀 졸라와 인상파 화가들의 긴밀했던 관계도 생각해 볼만 하다. 인상주의 화가들은 빛에 의해 시시각각 달라지는 사물이나 풍경을 그려내었다. 똑같은 사물이라도 어떤 빛이 쬐고 있고, 어느 방향에서 빛이 들어오는지에 따라 다양한 그림이 나올 수 있으며, 이는 환경에 따라 다양한 인간이 만들어질 수 있는 ‘자연주의’ 문학관과 일맥상통한다.
영화 <박쥐>는 <테레즈 라캥>을 모티브로 만들어진 영화다. 당시 불륜, 외설적인 내용과 장면들로 많은 비난을 받기도 했던 <테레즈 라켕>과 박찬욱 감독의 영화 <박쥐>는 서사적으로 비슷한 구조를 갖는다. 어려서부터 고아였던 ‘테레즈’는 몸이 허약한 사촌 ‘카미유’와 함께 자라며, 시간이 흘러서 고모의 욕심으로 ‘테레즈’는 의지와 상관없이 ‘카미유’와 결혼하게 된다. 허약한 ‘카미유’와 결혼하여 본성을 억누르며 살던 ‘테레즈’는 어느 날, ‘카미유’의 어린 시절 친구인 ‘로랑’과 사랑에 빠진다. ‘테레즈’는 ‘로랑’에게 거짓말을 하여 그로 하여금 ‘카미유’를 죽이게 한다. 영화 <박쥐>의 모티브 영화인만큼 스토리라인을 그대로 따라갔다.
하지만, 박찬욱 감독은 여기서 더 나아가 ‘박찬욱 스타일’로 바꾸어 <테레즈 라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였다. 서사구조만 그대로 가져왔을 뿐, 등장인물과 연출의도도 <테레즈 라캥>과는 다르다. 우선, <테레즈 라캥>은 자연주의 문학이었던 만큼 환경의 중요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박찬욱 감독은 ‘환경’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인간의 내면과 본능에 더욱 집중했고, 순순한 인간의 모습과 그들의 욕망을 보여주기 위해 힘썼다. 그래서 영화 <박쥐> 흡혈귀 영화로 바꾸었으며, 더욱 신랄하게 인간의 모습에 파고들게 하기 위해 ‘로랑’ 역할의 ‘상현’을 ‘신부’로 설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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