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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해버린 Love Language Test

미국 MZ의 연애 관문

by 아틀란티스 소녀

우리가 심하게 다툰 날, 그가 내뱉었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You are too spoilt!!!"(사전적 의미: 너무 잘해줘서 응석받이로 자라다).


난 그가 축 쳐져 있어서 그를 위로한다 쉽고 응원하는 말들을 구구절절 늘여놓은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가 나의 성의에 반응하지 않자 "내 마음을 무시하는 거냐"라고 말했던 나에게 돌아온 대답이 바로 그 말이라니.. 그는 내가 그의 감정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부족하다고 했다. 억울하고 서운했다. 눈물이 나자 그는 한층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Love Language Test 했던 거 기억나?"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내가 그 테스트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니.




미국에서 처음 연애를 해보고자 마음먹고 몇몇 사람들을 만났을 때 그들이 하나같이 물어오는 꼭 빠지지 않는 질문이 있었다. 마치 한국에서 모두가 MBTI가 어떻게 되는지를 묻는 것과 같았다.

5 Love Language Test

직역하자면 오글거리지만 ‘5가지의 사랑의 언어’다. 약 30개의 응답을 통해 결과를 확인할 수 있는 간단한 테스트인데, 본인이 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느끼고 표현하는지 높게 나온 영역부터 순서대로 보여준다.


다섯 가지의 사랑의 유형은 다음과 같다.

Words of Affirmation(칭찬과 인정) : 말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

Gifts(선물) : 마음을 담은 선물을 통해 사랑을 느낌

Acts of Service(봉사): 도와주거나 집안일을 대신하는 등 행동으로 사랑을 표현

Quality Time(함께하는 시간) : 함께 보내는 시간이 중요

Physical Touch(신체적 접촉) : 포옹, 손잡기, 키스 등 스킨십을 통해 사랑을 표현




네 번째쯤 되었던 소개팅남과 밥을 먹게 되었을 때, 이제 이런 테스트를 통한 아이스브레이킹? 에 익숙해진 나는 오히려 상대에게 그의 Love Language는 물었다.

그는 웃으며 “모르겠어”라고 대답하더니, 집에 돌아가 테스트 결과를 보내주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나와 그의 상위 두 가지 유형이 완전히 달랐다. 나는 함께 보내는 시간과 칭찬과 인정이 상위권을 유지한 반면 그는 스킨십과 봉사행동이 상위를 차지했다. 심지어 그의 결과는 스킨십이 40%를 훌쩍 넘어서 나를 살짝 겁에 질리게(?) 했다.

그런데 그는 "우와 재밌네, 우리 진짜 exciting 한 연애를 할 수 있겠다" 라며 대수롭지 않아 했다. 나는 그 재고 따지지 않는 그의 털털한 웃음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린 곧 사귀게 되었다.

테스트가 끝나면 본인이 가장 중요시하는 '사랑의 언어'부터 순서대로 보여준다

이제야 거꾸로 퍼즐이 맞춰지는 것처럼 생각이 명확하게 정리가 되기 시작했다.


나는 늘 함께 시간을 보내고, 대화를 나누고, 여행하고, 밥을 먹는 것이 사랑의 증표라고 믿었다. 그것이 부족하면 사랑이 식었다고 오해하고 서운해했다.

그러나 그는 다른 사람이었다. 그에게 스킨십은 너무 중요해서 나를 잠시도 가만두지 않는다.

손을 잡고, 머리를 쓰다듬고, 팔을 어루만지며 행복해한다. 처음 외운 한국어 단어가 '말랑말랑' 일 정도다.

그리고 본인이 우울할 땐 백 마디 위로의 말 대신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을 더 필요로 한다.


발이라도 잡고 있어야 직정이 풀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Spoilt. 물론 이게 영어라서 때로는 더 또렷이 내 마음에 때려 박히는 경우도 있긴 하겠다만.

그간 내가 관계를 유지했던 방식에 큰 깨달음을 주는 말이었다.



그간 내가 얼마나 쉽게 상대방의 마음을 추측하려 했는지, 나의 기준이 상대의 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묻고 배우는 과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가 화해해야 할 때, 나는 그의 머리를 아무 말 없이 쓰다듬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나도 점차 편안함을 느꼈다. 반대로, 함께 하는 퀄리티 있는 시간을 중요시하는 나를 위해서 우린 매주 정해진 데이트 시간을 갖는다. 'Weekend Golden Time'을 기꺼이 함께 공유하며 점차 반복되던 갈등이 줄어들고 있다.


우린 이미 언어부터 시작해서 문화도 다른데 야속하게도 서로가 얼마나 또 다른 방면에서 다른 지 알게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하지만 그게 마이너스가 될 건 없다. 상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란 때로는 그것이 머리를 쓰다듬는 작은 손길일 수도, 혹은 이번 주말에 그녀가 가고 싶다는 브런치 집에 같이 가주는 것과 같은 작은 것일 수 있다.


그러니 다음번에 잘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단순히 그 사람의 MBTI를 궁금해할 게 아니라 그가 어떤 방식으로 사랑을 느끼고 표현하는지 물어보면 어떨까..

물론 이 테스트는 어쩌면 헬게이트 오픈. 그 장엄한 대장정의 시작 일 수 있겠지만.. 궁극적으로 둘의 관계를 더 풍요롭게 만들고,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해 줄 수 있다면 해볼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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