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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묘'에 식사 장면이 그렇게 많이 나온다고?

근데 그래서 어쩌라고?

by 아틀란티스 소녀

나는 보통 연애를 하면 데이트할 장소를 먼저 정하고, 자연스럽게 맛집을 찾아 그곳으로 향하는 것이 익숙했다. 그전의 남자친구들도 늘 그 흐름에 따라왔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이런 방식이 통하지 않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남자친구와 한국영화 '파묘'를 근처 영화관에서 상영한다고 하길래 함께 보러 갔다. 영화가 어땠냐고 묻는 질문에 그는 엉뚱한 답변을 했다. “영화에 밥 먹는 장면이 한 네 번은 나온 것 같아. 한국에선 왜 이렇게 먹는 것이 강조돼?”라며 신기해했다. 나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부분이라 굉장히 흥미로웠다. 나에겐 너무 자연스럽게 흘러가서 기억에 조차 남지 않는데 외국인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 수 있다니.


남자친구는 하루에 두 끼를 먹는데, 둘 다 대부분 드라이브스루에서 음식을 사 와서 해결하는 식이다. 끼니에 관심이 없는, 그렇다고 한식을 좋아하지도 익숙하지도 않은 평범한 20대 미국남자다.

그러니 같이 이박 이상 여행을 할 때면 나만 바빠지고 챙길 것이 많다.

여행지 주변에 아시안 레스토랑이 없을 것을 생각해서 햇반을 챙기고, 고기볶음고추장을 챙기고, 블록국 그리고 김까지 알뜰하게 챙긴다. 나는 그러나 그것을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거나 눈치 보지 않는다.


나는 하루에 최소 한 끼는 한식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상적인 밸런스는 빵-밥-빵-밥.

밥-밥-밥도 괜찮지만, 빵-빵-빵은 절대 안 된다.

한국인은 밥심이거든.


그러나 그런 정서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나라에 살다 보면

데이트의 중심이 ‘맛집탐방’이 아닐 수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내가 외국에서도 밥심을 찾는 것은 전혀 잘못된 일이 아니다.

다만 그것이 익숙하지 않은 이에게 '강요'하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내가 먹고 싶은 걸 그가 함께 즐기지 못한다면, 그리고 나 또한 내가 먹기 싫은 느끼한 것을 먹기보다는, 각자 원하는 걸 먹고 만나는 것이 더 낫기 때문이다.


같이 밥 먹는 행위가 없어지니, 좋든 싫든 그 외 같이 할 수 있는 다른 활동들이 늘어났다.

공원에서 Frisbee를 던지고, 라켓볼을 치고, 같이 5km 달리기 대회에도 자주 나간다.

공원에서 Frisbee(원반 던지기)를 하는 우리

예전에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멋지게 차려입고 사진을 찍는 것이 하루를 잘 보낸 기준이 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먹는 것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면서, 오히려 새로운 것들을 '같이 하는'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게 됐다.


예전처럼 맛집에 목을 메지도 않게 됐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 음식은 솔직히 맛이 단조롭다. 피자, 햄버거, 샌드위치 정도가 대부분이고, 한국처럼 안주 문화가 발달한 것도 아니다. 다양한 음식이 끊임없이 곁들여지는 즐거움도 없다. 무엇보다 느끼하다.


물론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다.

활동적인 데이트를 마치고 나면 기운이 빠지고, 뜨끈하고 얼큰한 김치찌개가 간절해진다.
허겁지겁 집에 앉아서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스팸을 두툼하게 썰어서 넣고 칼칼하게 김치찌개를 끓인다.
그걸 한 술 뜨면 비로소 속이 풀리고, 살 것 같다.


그와 함께하는 방식이 다를 뿐,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시간을 쌓아가고 있다.
먹는 즐거움 대신 다른 것들로 채우고, 새로운 방식으로 함께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 그냥 편하게 한국인 만나지?라고 하면 난 할 말이 없다.

나에겐 같은 취향을 가졌는지, 같은 나라 사람인지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함께할 방법을 찾아갈 수 있는 사람인지가 더 중요하다.


이 관계가 어디로 흘러갈지는 아직 모르지만,

우리의 다름을 받아들이며 그냥 그렇게 살아가면서 매일 조금씩 더 가까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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