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21, 2019
뉴스에 나오는 조국 교수 딸의 학술지 논문 제1저자 논란에 대해 제 나름대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우선 저는 이 문제가 단순히 조국 교수 가정의 사생활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성년자 자녀의 교육 과정에서 이루어진 일은 기본적으로 부모의 책임이 상당하다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이 논란에는 연구 윤리와 입시 공정성 문제가 걸려 있습니다.
논문과 연구 윤리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고교생이 실험실에 2주 출근하고 제1저자로 논문을 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이미 실험실 책임자 단국대 장영표 교수는 해당 학생이 “외국 대학을 지원한다고 해서 제1저자로 만들어준” 것임을 실토하고 있습니다 (CBS 인터뷰). 조국 교수가 이 부분을 인지하지 못했고 청탁이 없었다 하더라도 딸이 제1저자로 올라간 것을 확인했다면 정말 딸이 연구를 주도하고 해당 논문에 제1저자급 기여를 했는지 확인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무엇보다도 조국 후보자는 서울대 교수로 재직해온 학자입니다. 연구 윤리와 논문 작성 과정을 모를 수 없는 자리에서 근무해왔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입니다.
가장 간단한 논란 해결 방법이 있습니다. 정말 제1저자라면 실험실 연구 노트를 공개하거나 해당 연구 과정과 그 결과의 의미에 대해 설명하면 됩니다. 이 부분은 학술지 편집위원회 쪽에서 제대로 조사를 하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입시 복마전
대학 측에 자신의 노력과 잠재력을 호소하기 위해 여러 활동을 하는 것. 그럴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조국 교수 딸이 쌓은 스펙은 학부형 인턴십 프로그램을 통해 대학교 실험실에 가서 인턴십을 한 것입니다. 일종의 스펙 품앗이입니다. 교수, 변호사, 의사 학부모가 즐비한 특목고에서 부모가 가진 인적 자본과 사회적 연결망을 통해 자녀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해주고 학생은 그 기회를 통해 스펙을 쌓는 방식입니다.
이런 기회,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조국 교수는 그 동안 형식적인 법치주의만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실체적인 기회의 평등에 대해서 이야기해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자녀는 기울어진 운동장의 높은 곳에서만 누릴 수 있는 연결망을 통해 손쉽게 스펙을 쌓았습니다. 이건 조국 교수가 여러 차례 지적한 대로 부모 세대의 차이가 자녀 세대의 차이로 대물림되는 것입니다.
백 번 양보해서 호기심 많은 자녀에게 좋은 기회를 제공해주고 싶었다 치더라도, 논문 제1저자로 이름을 올리는 것은 선을 넘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논문 한 편 때문에 머리를 쥐어짜며 일하고 있을 수많은 대학원 동기, 선후배들 모두 잘 알 것입니다. 연구자에게 연구는 단순한 논문 한 편이 아니라 희노애락이 녹아있는 조각품과 같습니다.
전인 교육의 허상: 학생부 종합 전형의 이상과 현실
제 눈길을 끈 건 해당 실험실 책임자인 단국대 장영표 교수가 언급한 “외국 대학 지원 학생 밀어주기”입니다. 미국 명문 사립대에선 입학사정관 제도를 통해 학생을 선발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최근 증가하고 있는 학생부 종합 전형이 바로 이 모델을 수입한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비리그를 지망하는 수많은 특목고 학생들이 스펙을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대략 15년 전부터 한국 특목고에선 아이비리그 학부 지망 열풍이 불었고, 저는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른바 입시 복마전을 목격해왔습니다. 조국 교수 딸도 그러한 준비를 해오다가 그 과정에서 쌓은 스펙을 국내 대학 입시에도 활용할 수 있기에 나중에 진로를 바꾼 것으로 추측됩니다.
대학원 동기 중에 20세기 미국 입시 제도의 변화에 대해 연구하던 하와이 출신 일본계 미국인 친구가 있었습니다. 미국은 입학사정관 제도를 왜 시작했을까요? 이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놀랍게도 공부 잘 하는 유태인 학생들이 주요 명문 사립대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20세기 초, 폴란드 등 동유럽에서 건너온 유태계 이민자 가정에서 아이비리그 입학생을 많이 배출하자 성적으로만 신입생을 뽑는 게 아니라 예체능 활동, 리더십, 인성, 잠재력 등을 보겠다는 입학사정관 제도가 도입됩니다. 명분은 그럴 듯 했지만 이른바 개신교-앵글로 색슨 집단으로 대표되는 WASP (White Anglo-Saxon Protestant) 기득권의 기획이었던 셈입니다.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서 아메리카 원주민, 흑인 등 미국 사회에서 차별받았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적극적 배려 정책(affirmative action)을 실현하기 위한 조치로 편입되지만, 그 태생엔 이런 비화가 있습니다.
어쨌든 앞서 언급한 대로 미국이든 한국이든 이러한 입시 제도를 마주한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만들어낸 기형적인 현상이 바로 조국 교수 딸이 참여한 학부형 인턴십 프로그램 같은 것입니다. 이건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류층 자녀들은 대부분 알음알음 고교 때부터 이런 과정을 통해서 스펙을 쌓습니다. 대학 입시 컨설팅 업체도 많습니다. 최근 뉴스에 나온 할리우드 배우처럼 불법 로비로 자녀를 대학에 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국은 전통적으로 대학 진학률이 낮았는데 최근 대학을 지망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그 경쟁도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요새는 우스개소리로 아프리카 아이들을 위한 비영리 재단이나 단체 하나쯤은 설립한 경력이 있어야 하버드, 스탠포드 가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도 하더군요. 한인 미용실에 비치된 교포 신문에 비영리 단체 설립 등 화려한 스펙으로 명문대에 합격한 한인 2세나 3세 학생 이야기가 실려있는 경우를 종종 봤습니다.
제 대학원 친구는 이걸 두고 전인 교육의 허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학생부 종합 전형 같은 제도로 명문대 입시가 돌아가다 보니 공부 뿐만 아니라 — 적어도 서류 상으로는 — 모든 면에서 완벽한 올-어라운드 플레이어(all-around player)를 부모와 산업이 만들어낸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전인 교육, 참 좋은 말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다 그러한 환경과 기회를 제공받지 못한다면 이는 곧 불평등한 기회, 불공정한 결과로 이어지게 됩니다. 저는 한국의 교육계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심도 있는 고민 없이 제도의 겉모습만 보고 수입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 그렇다면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창의력이 중요한 미래에 전인 교육 모델을 포기하고 성적으로 줄세우는 방식으로 회귀하자는 이야기냐는 반문이 나올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른 포스팅에서 제 생각을 정리해볼까 합니다.
각자도생의 입시 지옥 그 너머
저는 미국의 입학사정관 제도, 한국의 학생부 종합 전형 제도 같은 것은 그 명과 함께 암도 깊다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사회적 뒷받침이 없다면, 전인 교육의 이상만 제시해놓고 공교육에서 담아내지 못하는 것들은 알아서 부모와 학생이 준비해오라는 방치와 다름 없는 것이죠. 각자도생의 교육판이고 입시 지옥입니다. 그러나 교육이 고민해야 할 것은 공적인 것(res publica)입니다. 이 라틴어는 곧 공화국(Republic)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각자도생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공존하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미래 세대를 길러내는 것이 교육의 목표라면, 애초에 고민하는 지점이 달라져야 합니다.
아울러 이 모든 비극의 시작은 바로 명문대 학위라는 지위, 그러한 지대 추구(rent seeking)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봅니다. 물론 “서울대 나와봐야 뭐하나,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말이 나오는 세상이 되었지만, 온라인에 명문대 강의가 무료로 공개되는 세상이 되었지만 대학은 영원할 거라고 봅니다. 4년 동안 같은 시공간에서 쌓는 인적 연결망과 경험은 쉽사리 대체가 가능하지 않습니다. 한국은 그러한 지대(rent)가 굉장히 높은 사회입니다. 명문대일수록 그 지대를 더 많이, 더 오래 누립니다. 그렇기에 누구나 그 좁은 문을 통과하려 합니다. 결국 이 모든 난장판을 해결할 유일한 방법은 그 지대(rent)를 낮추고 전인 교육이 꿈꾸는 대로 각자 적성대로 진로를 택해 먹고 살아도 행복한 세상, 마음 놓고 불행해질 수 있는 세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