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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사실 아무도 그를 반기지 않았다.)

by 아틀란티스 소녀

내 남자친구는 한국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다. 아니 아시아의 그 어떤 나라도 가본 적 없다.
나를 만나기 전까지는 한국식 코리안 BBQ조차 먹어본 적 없으니, 그냥 ‘찐 미국인’이라는 표현이 과장은 아닐 것이다. 그는 익숙한 음식, 익숙한 문화, 익숙한 일상 속에서 그는 그저 그의 방식대로 지금까지 잘 살아왔다. 그건 이상한 것도, 잘못된 것도 아니었다.


우리가 사귄 지 2년 차가 되었을 때, 그는 내게 말했다.
"이번엔 나도 네가 한국 갈 때 꼭 같이 가보고 싶어."
사실 사귄 지 1년 차에 내가 한국을 잠깐 일주일 다녀올 때도 그는 자기도 데려가달라며 같은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그때 그를 말렸었다. 낯선 환경에서 그가 겪게 될 수많은 감정들이 조금 걱정됐고, 우리 관계가 얼마나 오래갈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굳이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게 흘렀다.

우린 16시간을 함께 날아가, 인천공항에 도착했고 공항 리무진을 타고 강남으로 향했다.
뱅뱅사거리 근처에 내려 걸어가는데, 건물들이 끝도 없이 겹겹이 쌓여있는 걸 보고 그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반응에 나도 모르게 기세등등해졌던 것 같다. '봐, 이게 내 나라야.'


방문했던 시기는 11월.

온 거리에 다 하나같이 약속이나 한 듯이 검은색 패딩을 입고 왔다 갔다 하는 직장인들로 가득했고,

그걸 유심히 관찰하던 남자 친구는 한국에서 유일하게 화려한 색 옷을 입는 분들은 중장년층 아주머니들이라며 재미있어했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몸집 큰 자신을 힘 있게 밀치고 나가는 아주머니들을 보며 “와, So strong!”이라며 흥분해 설명하던 그의 모습은 정말 귀여웠다.


그는 광화문에서 수문장 교대식을 보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

평소에 사진을 찍지 않는 그이지만 그때만큼은 카메라의 셔터를 연신 눌러댔다.

광화문 수문장 교대식을 진지하게 지켜보는 그

그가 찍은 사진들을 보며 나도 놓친 펄럭이는 깃발 속의 문양 등을 보며 나도 감탄했고, 그의 시선을 통해서 다시 본 한국에 새삼스레 자긍심을 가지게 됐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낭만적이지만은 않았다.


가족은 1년 만에 들어온 나와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한다며 서운해했고,
남자친구는 또 그 나름대로 온전히 하루를 함께 보내지 못하는 나에게 아쉬움을 토로했다.


시간은 한정되어 있었고, 나는 그 시간을 최대한 알차게 보내고 싶었다.

친구들도, 가족도, 남자친구도 모두 만나고 싶었다.

결국 나는 시간표를 쪼개고, 약속을 나누고,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어쩔 수 없이 먼저 친구들과 만난 후에 이후 남자친구를 불러 함께하기도 했다.

다행히 나를 오래 알아온 친구들은 그를 귀여워했고, 백인 남자친구라는 신선함에 즐거워했지만…

그 어색한 웃음들 사이에서, 나는 친구들에게도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서울을 제대로 구석구석 보고 싶다며 10박 지내는 동안 동, 서, 남, 북 호텔을 몇 번이나 옮겨 다녔고,
난 또 나대로 바쁜 일정 때문에 하루를 온전히 함께 보내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는 하루 중 주어진 몇 시간 동안, 내가 지정한 장소에서 나를 만나 시간을 보냈고, 나는 가족 약속이나 이후 선약이 있을 때면 그를 두고 “이다음에는 여기 가봐”라고 말한 뒤 황급히 자리를 떴다.


올림픽공원에서 함께 있던 날 나는 그날도 가족 행사 때문에 먼저 가봐야 한다고 하자, 그는 의연하게 받아들이며, 미국에서부터 챙겨 온 프리스비 디스크를 꺼내 함께 모여있던 한국인들의 무리에게 씩씩하게 다가갔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조금은 대견했고, 조금은 짠했다.

올림픽공원에서 맨발로 뛰어다니던 그의 모습

한국어를 하나도 하지 못하는 그가 구글 지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네이버 지도를 깔고, 수없이 지하철을 반대 방향으로 가고, 엉뚱한 버스를 타면서 고분군투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진짜 문제는 음식이었다.
도착 후 4일 동안, 그는 제대로 된 식사를 거의 하지 못했다. 코엑스에 있던 노브랜드 버거가 그가 도착한 후, 처음으로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었다.


한국 음식 보여주고 싶어서 신경 써서 데려간 솥밥집에선 그나마 익숙한 스테이크가 들어간 메뉴를 골랐지만
그에게 스테이크는 너무 질기고, 너무 뜨거웠단다. 식당 내부의 테이블 간격도 너무 좁았는지, 그는 숨이 막힌다며 얼굴이 하얘져서 결국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그는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돌아왔고 솥밥을 한 입도 안 먹고 돌려보냈다.


그날 밤, 그는 호텔 근처 GS25에 들러 바나나와 컵과일을 골라왔다.
그게 그가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식사였다.

결국 한국에 머무는 일주일 만에 그는 6kg이 빠졌다.
나는 답답했고, 속상했고, 미안했다.


그 후로 난 그가 맘스터치, KFC, 맥도널드만 전전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그를 시험하려 한 게 아니었는데,
그가 이곳에서 살아가기엔 너무 힘들 수 있겠다는 사실이 자꾸 마음을 짓눌렀다.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밤,
나는 그가 안쓰러워서 평소보다 조금 더 늦게까지 함께 시간을 보냈다.
집에 돌아오자 엄마는 화가 나 있었다.


“넌 그렇게 뻔뻔하게 걔를 한국까지 데려와서 뭘 어쩌자는 거니?”


평소엔 조용한 아빠마저
“절대 미국사람은 안된다”라며 모질게 말했다.


그 순간, 마음속에 많은 감정이 뒤엉켰다.

이건 사랑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는 걸,
나는 그제야 아주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그의 가족이 나에게 늘 한없이 따뜻했지만 우리 가족은 한없이 차가웠다.

아니 나와의 관계를 그저 묻지도 않고 '무관심'으로 응대했으니 사실은 더 끔찍한 것이었다.

그는 미국에 돌아온 뒤, 본인이 내 가족과 한 번도 식사조차 안 한 사실에 부모님이 놀래셨다고 말했는데

그가 자기 부모님을 빌려 본인이 섭섭했던 사실을 돌려 말했다는 것을 나는 안다.

나는 그게 마음 아팠다.


그는 돌아와 이번 한국 여행이 자기 인생을 바꿨다며 고마워했다.
캐리어 가득 한국에서 산 기념품을 풀어놓으며 조잘조잘 이야기하는 모습은 귀여웠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 이면 속에서 또 다른 경험을 한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그를 바라볼 수 없었다.

너무나도 단단하게 버티고 있는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나는 점점 자신이 없어졌고, 그에게 한없이 미안했다.


한국을 다녀온 후, 나는 일주일간 몸이 좋지 않았다.
그토록 그리던 한국을 다녀왔으니 충전되었어야 할 텐데,
주말 내내 자고 또 자고, 좀처럼 피곤이 풀리지 않았다.


시차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건 마음의 피로였다.

아무리 좋고 사랑해도, 넘어설 수 없는 현실이 있다는 걸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한 내 마음의 무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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