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몬순의 경제학이라는 얘기를 들어보셨나요?
구자라트는 산이 없고 더운 날씨로 유명하다. 라자스탄주와 더불어 인도에서 가장 더운 지역 중 하나로, 일조량 또한 인도에서 최고 수준을 보인다. 이 때문에 인도 내에서도 태양광 발전에 최적지로 알려져 있다. 구자라트는 매년 2월부터 더워지기 시작하여 5~6월에 최고조에 이른다. 2024년 5월에는 기상 관측 사상 처음으로 50도를 넘어서며 살인적인 무더위를 기록했다. 실제로 거리에서 생활하거나 열악한 환경에 있는 사람들이 사망하기도 했다. 2024년 인도의 에어컨, 쿨러 등 냉방기기 판매는 연일 신기록을 세웠다.
6월이 시작되면 사람들은 비를 기다린다 못해 갈망한다. 비가 오면 뜨거운 공기가 누그러지고, 비가 오지 않을 때 외부 활동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여름 장마를 인도에서는 '몬순'이라고 불린다. 둘 다 특정 기간에 많은 비가 집중적으로 내린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인도의 몬순은 한국의 장마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인도의 몬순은 단순한 기상 현상을 넘어 인도의 경제, 사회, 문화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인이다. 매년 6월부터 9월까지 지속되는 몬순은 인도 아대륙에 막대한 강수량을 가져오며, 인도 경제의 여러 측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몬순은 특히 농업, 물 자원 관리, 에너지, 인프라에 큰 영향을 미치며, 이를 통해 인도의 전체 경제 성장과 안정성에 매우 중요하다.
인도의 정치인들이나 총리가 몬순에 대해 자주 언급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몬순을 잘 관리하는 것은 국가 지도자들에게는 중요한 과제이다.
인도 경제에서 농업은 여전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인구의 약 60%가 농업에 종사하며, 농업은 전체 GDP의 약 17-18%를 차지한다. 몬순의 강우량은 인도의 농업 생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쌀, 밀, 토마토, 면화, 양파 등 주요 작물의 성장은 몬순 강우에 크게 의존한다. 적절한 강우는 농작물의 풍작을 보장하며, 이는 농민들의 소득 증가와 국가의 식량 안보에 기여한다. 반면, 강우가 부족하거나 과도하면 농작물 피해를 초래해 식량 부족과 가격 상승을 유발할 수 있다.
몬순은 인도의 주요 강, 저수지, 지하수 자원의 재충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도의 강수량의 80%가 몬순 기간 동안 내리며, 이는 연중 물 공급의 기초를 형성한다. 이러한 물 자원은 농업 관개, 식수 공급, 산업용수 등에 사용된다. 따라서 몬순의 강우 패턴은 물 자원의 가용성과 관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물 자원의 부족은 농업 생산성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도시와 농촌 지역의 물 공급 문제를 악화시킬 수 있다.
인도는 수력 발전에도 크게 의존하고 있다. 몬순 강우는 댐과 저수지의 수위를 높여 수력 발전의 원천이 된다. 충분한 강우는 수력 발전량을 증가시켜 전력 공급을 안정화시키며, 이는 산업 생산과 가정용 전력 소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반면, 몬순이 불충분하면 수력 발전량이 감소하여 전력 부족 사태를 초래할 수 있으며, 이는 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몬순은 인도의 인프라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도로, 철도, 항만 등의 교통 인프라는 몬순 강우에 의해 심각한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홍수나 산사태 등 자연재해는 교통망을 마비시키고, 물류와 경제 활동을 방해한다. 이는 상품의 이동을 지연시키고, 공급망에 차질을 빚어 경제적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이렇게 인도에서는 몬순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몬순의 경제학"이라는 단어가 있을 정도다.
실제로 인도에서는 몬순 강우량에 따라 경제 전망이 조정되는 사례가 많았다. 2009년은 몬순 강우량이 평년보다 약 22% 부족했던 해로, 주요 농작물 생산량이 크게 줄어들고 식량 가격이 급등하면서 인플레이션이 심화되어 경제 성장이 둔화되었다. 정부는 농민 지원을 위한 특별 정책과 재정 지원을 확대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2014년에는 엘니뇨 현상으로 인해 몬순 강우량이 예상보다 적어 경제 성장이 약화될 것으로 전망되었고, 실제로 농업 생산 감소로 GDP 성장률이 둔화되었으며, 인플레이션 상승을 막기 위해 중앙은행이 금리를 조정하고 정부는 농민 지원 대책을 시행했다.
반면, 2016년에는 몬순이 평년보다 강하게 발생하여 농업 생산이 크게 증가하였고, 식량 가격 안정과 농민 소득 증가로 경제는 활기를 띠었다. 2019년에는 몬순이 늦게 시작되어 초기에는 강우량 부족으로 불안감이 있었으나, 후반부에는 평년보다 많은 비가 내리면서 좋은 수확을 거두었다. 2020년과 2021년에는 몬순 강우가 양호하여 농업 생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특히 2020년에는 역대 최고 수준의 곡물 생산량을 기록하며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적 충격 속에서도 농업 부문은 안정적이었다.
인도 법인에서 근무하다 보면 본사에 매주, 매월 시황 보고를 해야 할 때가 있다. 인도 시장의 불확실성을 표현하는데 항상 빠지지 않는 단어가 인도의 몬순이다. 매년 3~5월경에는 "몬순 접근으로 인한 시장 내 고객사 구매 관망세 지속"이라는 제목의 보고서가 많이 올라오고 실제 7월이 되면 "몬순으로 인한 건설, 인프라 시행 지연에 따른 경기 하락으로 시장 일시적 침체" 등과 같은 맥락으로 많은 보고서가 작성된다. 또한 몬순 대비 공장 개보수 작업, 긴급 계획 수립 등 몬순으로 인해 파생되는 일들이 매우 많다. ‘몬순’은 주재원들에게는 정말 친숙한 단어다.
인도가 워낙 큰 나라이기에 몬순도 지역마다 다르다. 남서쪽에서 가장 빨리 시작하여 북부로 올라가고 첸나이가 있는 타밀나두가 가장 느리다. 이 때문에 인도의 여러 지역을 담당하는 한국의 담당자 입장에서는 어쩌면 1년 내내 몬순이라는 단어를 접할 수 있다.
인도인에게는 어쩌면 몬순이 반가울지 몰라도 한국인에게는 달갑지 않다. 비가 조금만 오기 시작해도 길거리는 금방 강처럼 물이 넘친다. 관리가 부족한 배수 시스템, 적절하지 않은 도시 계획, 불법 건축물들이 주요 이유다. 차량을 타고 다녀도 차가 멈추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다. 주위에는 오토바이를 타거나 그대로 비를 맞고 다니는 인도인들이 많고, 물이 넘쳐서 외부 활동은 전혀 할 수 없다. 도로의 구분도 없어져 이내 아수라장이 된다. 때로는 천둥번개도 동반되어 꼼짝없이 집에만 있어야 한다.
한국에 장마 시즌에 잠시 들어와 사람들과 얘기하다 보면, 비가 많이 와서 짜증이 나거나 꿉꿉하다고 한다. 인도에서 몬순을 경험한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비가 오는 한국에서 우산을 쓰고 어린 아들과 길을 걷는데 아들이 한 마디 했다.
"아빠, 팝콘 튀기는 소리가 나요!"
무슨 말인가 싶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우산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두고 한 말이었다. 한방 맞은 느낌일 정도로 좋은 표현에 미소가 살펴 시 나왔다.
'그래, 한국의 여름비는 이렇게 경쾌하구나!'
이렇게 쾌청하고 시원한 여름비가 어디 있을까? 한국의 장마는 인도의 몬순보다 아름다운 건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