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이유』
질리도록 붙어 있던 고교 시절을 지나고, 가장 친한 친구들은 해외로 떠났다. 공부, 취업, 휴식 등 이유는 각자 달랐지만, 그 이유를 위해 국내 어느 곳이 아닌 해외로 떠났다는 사실이 의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해외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자신이 있을 곳이 아니라며 훌쩍 떠나는 친구들을 보면서 나는 왜 더 넓은 세계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지 고민하곤 했다. 혹시 해외에 내가 원하는 것이 없다는 그럴듯한 핑계로 새로운 세계가 두려운 마음을 회피하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고 싶었다.
해외에 나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는 첫 번째 이유를 여행의 첫인상에서 찾았다. 나에게 여행은 그저 골치 아픈 일로 여겨졌다. 본가에서 1시간 걸리는 광주만 나가도 신경 써야 하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집에 돌아가는 버스를 타려면 언제 터미널로 가야 하는지, 택시를 타는 게 나은지, 버스를 타는 게 나은지부터 고민을 시작한다. 켜켜이 쌓인 생각들은 복통과 두통을 유발했다. 그 모든 걸 견디고 여행에 나서면, 내가 평발 뚜벅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어김없이 좌절했다. 오래 걸어 욱신거리는 발을 겨우 이끌고 집에 들어오면 더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녹초가 됐다. 한 치 앞도 예상할 수 없는 여행과는 참 어울리지 않는 성격과 체력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돈 주고 고생하는 여행에 반해 일상은 너무도 편안했다. 해외 대학을 고려조차 하지 않은 것, 가고픈 해외 여행지가 있느냐는 질문에 언제나 없다고 답한 것은 안정된 일상을 살고 있었다는 증거인지도 모르겠다.
또 다른 이유는 외로움을 잘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누구는 홀로 있는 시간이 못 견디게 힘들다던데, 나는 홀로 있는 시간이 되고 나서야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내게 혼자 있는 시간은 내 옆에 있는 이가 무얼하고 싶은지, 혹여 나를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건 아닌지를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의 시간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해야하는 것에 치중해 사는 시간은 편안함으로 가득했다. 이렇게 혼자 잘 있다 보면, 나는 타인이 그렇게 필요치 않은 사람인가 하는 생각에 다다른다. 그래서 연락도 잘 하지 않고, 가까운 몇몇 외에는 무심한 건 아닌지, 나와 타인의 관계에 벽을 세워두는 건지 고민도 했다. 그리고 이런 성격은 때때로 큰 결점처럼 느껴졌다. 사람과 교류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이 사람과 함께 일하고, 더욱이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는 직업을 갖고 싶어 하는 건 누군가에게 기만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외로움은 타인을 끌어당기려 하는 감정인데, 이렇게 외로움이 없는 나는 타인을 곁에 잡아둘 이유도 찾지 못한다. 나아가 타인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건, 전혀 다른 세계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연결된다는 걸 요새 들어 느낀다.
나는 확실히 여행이 필요한 인간보다는 여행이 필요 없는 인간에 가깝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확하게는 무언가로부터 도망치는 여행은 여태까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나에게도 여행은 필요하다는 걸 여행을 통해 매번 배운다. 마치 공부 못하는 아이에게도 공부는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저자가 말했던 것처럼, 여행은 ‘추구의 플롯’을 띄고 있어서, 언제나 갖고자 했던 것보다 더 큰 배움을 준다. 돌이켜 보면 나는 미처 알지 못했던 나의 빈칸을 인지시켜주고, 때로 채워주기까지 한다는 점이 여행의 매력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