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서 Oct 27. 2024

글쓰기 튜터, 마지막 독서 에세이

  지난겨울, 글쓰기 튜터 10주년 워크숍 때 발표를 해 보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때 발표를 준비하며 글쓰기 튜터는 제게 대학생활의 전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대학생활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튜터들과 기숙사 룸메이트를 신청해서 야식을 먹으면서 첨삭하기도 했더랬죠. 참 고단했지만, 또 즐거웠습니다. 글쓰기 튜터를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제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만큼 글쓰기 튜터를 하면서 많이 성장하고 배웠습니다. 그 과정을 브런치에 잘 담아내지 못해 아쉽습니다. 훗날 여유가 더 생겼을 때 리메이크해 보길 바라며, 제가 추구하는 인생이 담긴 마지막 독서 에세이를 남깁니다.






먼지라서 다행이다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

미디어콘텐츠학과 김민서

  중학교에 막 들어간 시기의 하굣길은 계절 따라 갖가지 풍경으로 바뀌었는데, 시간이 더 흐른 어느 때부터는 그저 어둠뿐이었다. 그 전환점이 2학년 때 새로 지어진 기숙사에 들어갈 무렵이었는지, 고등학교 입시 준비로 늦게까지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던 무렵이었는지 모르겠다. 정신없이 해가 뜬 시간을 보내고 정신을 차리면 이미 어둠이 내린 후였다. 차가워진 공기에, 가로등 불빛도 멀어진 사이의 어둠에 들어서면 나는 무심결에 하늘을 올려다봤다. ‘아, 오늘 별이 보이는구나.’ 침묵과 어둠으로 촘촘하게 짜인 시골의 밤하늘은 어느 망원경 하나 부럽지 않을 정도로 수놓은 별을 보여줄 때가 있다. 그러면 어떤 하루를 보냈는지는 상관없이, 그 한순간으로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가 채워지는 듯했다.

  당장 앞에 놓인 과제들을 해치우며 삶을 살아가다 보면 사는 게 버겁다고 느껴진다. 특히 해야 할 일 100%로 채워져 그 외의 것을 하기에 여력이 남아 있지 않을 때 뇌의 논리회로가 작동하지 않는다. 그렇게 한때 사랑한다고 여겼던 일도, 나의 일부라 여겼던 일도 무의미해져 버린다. 그럴 때면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치를 매길 수 없이 중요하다고 여겼던 것들은 어느새 소외되어 있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남들과 나누는 것, 그러니까 사랑, 나눔, 배려 따위다. 내 것도 없는데 남을 위해 나누기란 쉽지 않다. 때로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하다고 여겨지기까지도 하다. 나눌 마음이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무엇을 나누란 말인가. 그렇게 내게 아무것도 없는 것만 같을 때 올려다본 밤하늘은, 너무도 광활해서 이런 종류의 안도감을 느끼게 해 주는 것일 테다. 내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안도감, 내가 아무것도 아니어도 괜찮다는 안도감.

  드넓은 우주 앞에서 내가 아무것도 아니어도 괜찮은 이유는 내가 이 세계의 전부가 아니라, 일부이기 때문이다. 나 하나 잠깐 길을 헤맨다고 해도 이 세계는 무너지지 않는다. 그래서 길 잃은 나도 굳건하게 존재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우주는 아주 시간이 많고, 할 일은 없는 천재 과학자(신의 경지에 다다른)가 평생을 걸쳐 만든 건 아닌지 의심할 정도로 예측 불가능한 오차에도 정교하게 흐른다. 폭발하며 죽는 별은 우주에 먼지를 남기고, 우주에 유영하던 먼지는 다시 뭉쳐 새로운 별이 탄생한다. 설사 태양이 폭발해 모든 인류가 죽는다 하더라도, 우주 전체로 보면 멸망이 아니라 새로운 탄생의 시작인 셈이다. 그런 우주의 먼지보다 어쩌면 더 먼지일 내가 가진 불행과 고민은 말 그대로 아무것도 아니다. 오히려 먼지 주제에 뭘 그리 힘들어했나 하며 웃기기도 하다. 그러면서 내가 그 무엇도 아닌 먼지라서 다행이라고 여기게 된다.

  우리도, 너도 아닌, ‘나’가 중요해진 세상에서 한낱 먼지라서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느끼다니. 어불성설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너른 우주에서, 그중에서 태양계에, 또 그중에서도 지구에, 지구에서도 동아시아 저쪽 언저리에 붙은 한국의 시골에 사는 먼지가 맞는 걸 어쩌나. 이 세계의 설계자가 있다면, 그리고 자신이 공들여 만든 이 세계에 조금이라도 애정을 느낀다면 그 먼지가 세상에나 잘살아 보겠다고 용쓰는 게 얼마나 자랑스러울까. 그런 상상을 하며, 그러니 먼지는 먼지답게 살자고 다시 털고 일어날 수 있게 된다. 잠깐 들른 이 별에서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잠깐 마주친 풍랑을 유연하게 넘기며 살아가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느껴질 수 있게 만든다. 나는 이따금 밤하늘을 목이 빠져라 바라본다. 에라 모르겠다며 누워도 본다. 그리고는 묘비에 새길 문구를 조금씩 수정하며 킥킥거린다. -‘안녕, 나 먼지. 이 세계에서 어쨌든 잘 놀았음. ⭐️⭐️⭐️⭐️⭐️ ’

이전 09화 사실 첨삭이라기보다 편지를 씁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