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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서 Oct 27. 2024

사실 첨삭이라기보다 편지를 씁니다

첨삭이 일이 되지 않으려면

  제 첨삭 인생을 돌이켜 보면, 언제나 글을 만날 때마다 어떻게 첨삭을 해야 할지 몰라 지치곤 했습니다.


  신입 튜터 때는 글을 볼 때 기준이 ‘잘 썼냐, 못 썼냐’밖에 없었습니다. 이 시기에 가장 힘 빠지게 만드는 글은 온갖 띄어쓰기와 맞춤법이 틀린 글입니다. 마음속으로 부디 유학생이 쓴 글이길 간절히 바라곤 했습니다. 그다음은 독서 에세이를 써야 하는데 독후감처럼 책을 읽게 된 계기, 줄거리, 내용에 대한 감상, 책 추천만 작성한 글이었습니다. 그래서 독서 에세이와 독후감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독서 에세이를 쓰는 방법 (주제 설정, 개요 짜기)에 치중한 첨삭을 제공합니다. 그래서 담당 선생님으로부터 학생마다 다른 첨삭을 작성해야 한다고 반려도 많이 받았었습니다.


  뭣도 모르는 신입 튜터를 지나 튜터 두 학기째인 책임 튜터가 됐을 때, 한 학기를 했어도 첨삭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라고 느꼈습니다. 여전히 독서 에세이가 무엇인지만 알려주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제 첨삭의 터닝포인트는 선배 튜터의 조언이었습니다. 제 첨삭을 보고 선배는 ‘학생 개개인의 수준을 고려해 다른 첨삭을 제공할 줄만 알면 될 것 같다.’라고 했어요.

  그때부터 ‘이 글이 독후감이냐, 독서 에시이냐’가 아닌 학생들의 글 수준을 파악하는데 집중했습니다. 그랬더니 살면서 글을 쓴 경험이 손에 꼽을 것 같은 사람, 글을 써 보기는 한 사람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전자는 문장을 첨삭하는데 치중했고, 후자는 주제나 내용의 흐름, 근거 적합도를 판단하는데 힘썼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학생들에게 맞춰 첨삭을 제공하는 ‘시작’이었습니다.


  세 학기째인 수석 튜터가 됐을 때 글을 어느 정도 쓰지만 독서 에세이라는 장르가 어색한 사람, 글을 쓰는데 능숙하지만 글이 매력적이라고 느껴지지 않은 사람 등등 글에서 더 많은 걸 볼 수 있었습니다. 이때 제 첨삭의 목표는 ’ 글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글이 재밌게 느껴지도록, 글을 어느 정도 써 본 사람에게는 이야기가 더욱 잘 전달되도록 첨삭하자.’였습니다. 덕분에 교과서 같은 진부한 설명은 줄이고, 학생이 쓰고자 하는 방향성에 맞는 글의 소재나 주제를 추천할 수 있는 정도까지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추천하기 위해 책, 다큐멘터리, 뉴스 등 세상의 이야기를 많이 수집하려고 노력하곤 했습니다. 학생이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걸 생각해 보게 하는 게 튜터의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튜터 4, 5, 6회를 거듭할 때마다 저는 한계를 느꼈습니다. 학생 한 명당 첨삭하는 데 30분 정도 소요될 장도로 능숙해졌지만, 첨삭에 대한 고민은 깊어졌습니다. 제 첨삭이 진정 학생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첨삭을 제공할 수 있을지 전혀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렸달까요. 매 학기 더 나은 첨삭을 위해 고민하고 반영했던 과정이 사라지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가 됐어요.

  그럴 때 제가 마음속으로 되뇌며 부담을 덜고 즐겁게 첨삭에 임할 수 있도록 만드는 문장은 '나는 편지를 쓰고 있다'였습니다. 편지는 상대방을 고려하지만, 제 진심을 타인에게 전하는 데 초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진심을 잘 담기만 하면, 그걸 소화하는 건 온전히 대상의 몫이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내 첨삭이 상대방에게 ‘평가’가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 컸습니다. 그렇게 편지를 쓰는 마음으로 첨삭을 썼더니 진심을 담는다는 건 전과 같았음에도 부담이 덜어졌습니다.


  제가 첨삭에 대해 고민하던 일련의 과정은 인생과 닮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경험할 때는 요만큼밖에 안 보였는데 경험을 하면 할수록 더 보였다가, 그것마저도 익숙해졌을 때 방황하는 것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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