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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가울 Jun 14. 2023

감염병 대응팀에서 근무한 지 어느덧 1년

한순간에 내 몸 하나 간수 못하는 머저리가 돼버렸다

나는 이 문장 하나로, 본인에게 관심조차 안 가지는 무능한 사람으로 나락해 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열심히 일한 결과였다. 결국 내 몸에 스크래치를 낸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 처음 입직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일련의 기간들이 파노라마처럼 길게 펼쳐졌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옭아매는 고통의 강도는 점점 커졌다. 




집단 감염 업무를 같이 할 인력을 충원해 달라고 팀장님께 말씀드린 건, 퇴근시간이 훨씬 지나버린 21시 이후였다.


나를 비롯해 팀원들 앞에 마주 보고 앉으신 팀장님은 난색을 표하셨다. 팀장님의 안경알 사이로 비춰오는 눈빛과 대조적으로, 사무실 창가에는 온전한 불빛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내 결심했다는 듯이 굳게 다문 양입술 사이에 틈새가 보이기 시작했다.


2명만 추가로 더 붙여주면 될까?



우리는 최소 3명 이상을 원했지만, 여건상 어렵다며 재협상 안을 먼저 제시한 건 팀장님이셨다. 그렇게 해서 충원된 인력으로 어느 정도 급한 불은 꺼진 줄 알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작은 불씨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3인에서 5인 체제로 변경됨에 따라 훨씬 수월해질 알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오히려 업무가 배로 급증하는 바람에 체감을 느끼지 못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한기가 느껴지는 초겨울이 되자, 코로나19 확진자는 미친 듯이 증가했다. 추워질수록 그 기세는 한층 거세져만 갔다. 나는 코끝에 올라오는 겨울 냄새를 KF94 마스크로 차단하며, 봄이 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새벽 공기가 차가운 12월 어느 날이었다. 건강 검진을 받기 위해 검진센터복으로 환복한 나는 침대 위에 모로 웅크려 누워 있었다. 입속으로 들어오는 내시경을 감지할 때쯤, 의식은 정지되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으려나. 눈을 반쯤 떴을 때는 하얀 천장이 어렴풋이 보였다. 그러곤 양 귓가에 높고 낮은 음역대의 목소리가 내리 꽂히듯 관통했다. 비몽사몽 한 상태로 안내 데스크까지 간신히 걸어갔다. 약간의 위염이 있다는 직원의 설명을 들은 뒤에야 그곳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달리는 지하철에 내 몸을 맡기듯 의자에 기대고 나서야, 잠시나마 숨을 고를 여유가 생겼다. 공복 상태에서 검진을 받아서였었는지, 유난히 평소보다 어지러운 정도가 더 심하게 느껴졌다. 지하철 내에 울러 퍼지는 음성 안내에 삐 소리가 겹쳐 들려왔다. 평상시에 출퇴근할 때 들려왔던 데시벨보다 더 강력한 소음의 세기였다.

 

그로부터 6일 뒤, 이비인후과를 가보라는 동료의 말마따나 동네의 작은 이비인후과를 내원했다. 결과는 알 수 없었다. 큰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다시금 한기가 온몸에 둘러싸였다. 바깥에서 바라본 대로변은 낯설게만 느껴졌다. 다리는 천근만근 무거워졌고, 발을 앞으로 내딛을수록 경사진 땅 위에서 중심 잡기가 어려워졌다. 귀에 이상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감지한 것만으로도 세상이 단번에 달라 보이는 건 일순이었다. 


몸의 이상은 비단 귀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검진을 받은 날로부터 정확히 12일째 된 날, 그 결과는 말 그대로 처참했다.




종합소견을 보자마자, 눈가가 촉촉해졌다. 앉은자리에서 눈물이 계속해서 시야를 가렸다. 막막해진 심정에 불을 더 지피듯 가슴이 저려왔다. 역류성 식도염과 허혈성 심근 손상이 의심된다는 내용을 읽자마자 눈동자가 심히 흔들렸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요단백과 혈뇨를 평가하는 칸에는 양성이라는 두 글자가 선명하게 찍혔다. 마지막으로 종합소견지 끝에는 이러한 문구가 적혔다.


건강은 스스로의 관심과 관리 속에서 지켜지는 것입니다.


나는 이 문장 하나로, 본인에게 관심조차 안 가지는 무능한 사람으로 나락해 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열심히 일한 결과였다. 결국 내 몸에 스크래치를 낸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 처음 입직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일련의 기간들이 파노라마처럼 길게 펼쳐졌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버틸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옭아매는 고통의 강도는 점점 커졌다. 그리고 그 고통의 동아줄을 자르기 위해 예약해 둔 대학 병원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현실을 다시 지각해 보니, 병원 출구로 향하는 에스컬레이터에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마냥 가볍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이 무거웠던 것만은 아니었다. 이비인후과를 간 김에 타과에서도 진료를 봤다. 애써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두 눈으로 심전도와 소변 검사 결과가 정상이라는 글자를 확인한 후였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결국 나는 최종적으로 역류성 식도염과 메니에르를 진단받았다. 동료에게 이 사실을 알렸을 때, 동료의 표정은 웃는 얼굴도 아닌, 그렇다고 해서 울상도 아닌 그 중간쯤이었다.


주임님이 쉬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진단받은 건 다행이긴 한데,
이게 축하할 일인지는 모르겠네요.



한편으로는 병가를 낼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놓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의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었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헛된 소망이었다. 팀장님께 면담을 재요청드려 양자대면을 했을 때, 나의 목소리는 점점 떨궈지는 고개의 무게만큼 짓눌러졌다. 그 소리는 점점 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팀장님, 저 병가를 내고 싶습니다.'로 시작했던 문장은 '다 너를 위해서 하는 소리다.'라는 말로 종결되었다. 팀장님으로부터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 밖의 것들이었다. 

연초부터 병가를 내면 너에 대한 인식이 안 좋아질 수 있다. 만성질환으로는 병가를 내기는 힘들다. 이미 소장님께 인사 이동해 달라고 말씀은 드렸으니 좀만 기다리라는 말이었을 뿐, 정작 내가 원하는 대답은 단 한 마디도 듣지 못했다.


다 너를 위해서 하는 소리다.



판단력이 흐렸던 그 당시, 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그 후 다음연도인 2022년 1월, 의약과로 인사 발령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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