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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가울 Jun 13. 2023

코로나19에 대응하는 보건소 공무원의 비애

1+1은 마트 행사 제품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었다


마트 진열대에서 판매하는 1+1 행사 상품은 그곳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이 보건소에서도 그런 가성비 있는 존재로 점차 변질되었다. 일은 일대로 계속 늘어가는 반면, 거기에 맞는 대가는 제자리였다. 정정당당하게 가격을 지불해 달라는 요구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 익숙해져 갔다. 내 몸값의 할인율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만 갔다.





자고 일어나니, 등 뒤가 땀으로 흥건해질 정도로 흠뻑 젖어 있었다.


침대에 걸쳐 앉아 책상에 어수선하게 놓인 종이들을 다시 보니 눈앞이 하얘질 정도로 아찔해졌다. 새벽 내내 응급 상황이었던 환자를 비롯해 보호자들과 사투 끝에 남겨진 흔적들이었다. 2021년도는 코로나19의 해였고, 보건소 직원들에게 일복이 많던 해이기도 했다. 정규 근무 시간 외에도 일하는 건 당연지사였고, 돌아가며 새벽에 당직용 전화를 받는 것은 일상이었다.

1시간 반을 지하철과 버스에 몸을 싣고 도착한 곳은 한 자치구 보건소였다. 새벽 내내 잠을 설친 까닭에 비몽사몽 한 상태였지만, 13시에 출근한 덕분에 잠깐의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때였다.


  가울 주임님, 주임님이 맡았던 OO요양병원 말인데요.
지금 추가 감염자가 30명 이상 늘어났어요.




동료의 말 한마디에 짧았던 휴식을 뒤로하고, 다시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감염병대응팀에서 나의 업무는 집단 감염된 사례를 추적하여 역학조사하는 일이었다. 언제 어디서 무더기의 사람들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걸릴지 예상이 안 갔기에 항상 신경을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하루가 다르게, 낯빛이 어두워지고 훌쭉해진 볼과 앙상해진 몸으로 탈바꿈해 갔다.

가장 큰 문제는 추가 감염을 막기 위해 자가격리자 수를 늘리고, 확진자의 경로를 파악하더라도 또 다른 변수가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 변수는 나의 노력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어버렸으며, 그런 일은 허다했다. 거짓말하거나 역학조사에 협조하지 않는 사람들로 인해 일의 진행 속도는 점점 느려져 갔다. 뿐만 아니었다. 바이러스의 전파력도 감당 못할 정도로 일의 가세를 더하기 시작했다. 폭발할 듯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집단 감염의 규모는 그 누구도 쉽게 막을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해졌다.


하루의 반 이상을 보건소에서 생활을 한 지도 어느덧 6개월이 지났을 무렵, 나의 몸은 1.5인분, 어떨 땐 2인분 이상을 소화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같은 업무를 하는 동료 2명과 번갈아가며 1명씩 쉴 때마다 하루에 버틸 수 있는 체력 대비 업무량은 2배 이상 폭주했다. 개인의 경조사와 같은 일이 겹치는 날이면, 2명이서 하루씩 교대근무하며 도합 3인분의 일을 해냈다.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은 일들이 마치 줄줄이 엮인 소시지처럼 계속해서 올라왔다. 희한하게도 급여는 업무량에 비해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런 일상 속에 작은 변화가 생겼다.


날이 좋은 주말에 더 이상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되었다. 날씨와 상관없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언제나 보건소 안이었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렀고, 봄내음을 찾아다니는 새들의 지저대는 소리는 언제나 청량했다. 하지만 나와는 별개의 것들이었다. 오로지 내가 보고 듣는 건 바깥세상이 아닌 컴퓨터 모니터 화면과 수시로 울려대는 전화 벨소리였다. 퇴근길에 어둑해진 밤거리를 나서는 것도 익숙해졌다. 술냄새가 가득한 골목에서 고성방가에 심취한 취객들을 지나치더라도, 그들은 그들이었고 나는 나였다. 외부 세계와 나를 분리해야만, 한없이 추락하고 싶은 기분을 그나마 제어할 수 있었다.


휴일이 찾아와도 방심은 금물이었다. 연신 알림이 뜨는 업무 카톡에서 벗어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이틀 이상 쉬다가 다시 출근하더라도 일을 안일하게 대처해서는 안 됐다.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면 성적이 떨어진다는 압박감을 느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복습하는 수험생과도 같았다. 나는 업무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바보가 되고야 말았다. 어떻게든 감염자를 줄이려고 했던 열의는 점점 사라졌다. 모든 일에 대해 수동적으로 바라보는 고장 난 기계가 돼버렸다. 마트 진열대에서 판매하는 1+1 행사 상품은 그곳에서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내가 몸담고 있는 이 보건소에서도 그런 가성비 있는 존재로 점차 변질되었다. 일은 일대로 계속 늘어가는 반면, 거기에 맞는 대가는 제자리였다. 정정당당하게 가격을 지불해 달라는 요구를 하지 못하는 상황에 익숙해져 갔다. 내 몸값의 할인율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만 갔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다. 친구의 연락으로 모처럼만에 인천으로 나들이를 가는 날이었다. 창밖에 비친 바다를 한없이 바라보다 15년 지기의 한 마디가 귓가에 들려왔다.


  가울아, 그동안 진짜 많이 힘들었나 봐. 눈에 생기가 사라졌어.

서로의 동공이 마주치자, 그동안 직면하기 싫었던 내 본모습을 거울에 억지로 비쳐 본 느낌이 들었다. 그랬다. 나는 1년도 채 안된 시점에 삶의 모든 걸 내려놓았다. 희망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한 상태였다.


그날 집에 돌아가는 길이었다.


이대로 계속 살아선 안된다는 생각이 번뜩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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