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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가울 Jun 12. 2023

7급 공무원은 어쩌다 휴직하게 됐을까

나를 궁지에 몰아넣은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은 적이 있는가. 내가 공직에 들어온 지 2년도 채 안된 시점에서, 휴직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내게 있었다. 나 자신을 혹사시키며 일한 행동의 결과물이었다. 그 결과로 나는 하루아침에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 되었다. 자연스레 공직 사회로부터 최대한 멀리 벗어나고 싶은 욕구는 나날이 커져만 갔다. 그리고 그 욕구는 나를 옥죄어오는 덫으로 다가왔을 정도로 괴로웠다. 나는 벗어나야 했다. 공직에 들어가기 전의 모습으로 살아가야만 했다. 나는 최대한 이 괴로운 심정을, 나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야만 하는 그 처절한 감정을 감내할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일종의 도피로 휴직을 하게 된 이후, 나는 결심했다. 누구에게나 위기의 순간은 올 수 있다. 하지만 매번 벅차오르는 이 불안의 무게감을 더 이상 무시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겪고 나니 알게 되었다. 마음속 신호를 잘 알아차려야 한다는 의무감 내지 내면의 소리를 들어줘야 한다는 사실을. 고로 나를 함부로 대할 이유도, 그럴만한 당위성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길다고 하면 길었을, 짧다고 하면 짧게 느껴질 1년이라는 휴직 기간 동안 이 글을 써야 한다는 강한 이끌림이 있었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끝내 상처받았다고 해서 마냥 숨어만 있을 명분 또한 내게 없었다. 그저 들키고 싶지 않은 과거로만 치부하고 싶진 않았기에 하나의 글로 완성해갈 수 있었다. 


이 글은 온갖 고난과 역경을 내딛고 엄청난 성공을 거둔 비범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신 주변에서 볼법한 평범한 사람에게 닥쳐온 시련을 어떤 방식으로 치유해 가는지, 그 감정선을 따라 기록한 글이다.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누군가에게 적잖은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글이라는 점을 명심해 줬으면 좋겠다.


스스로 선택한 직업이지만, 공무원이란 신분을 애써 부정하려고 했던 가짜 7급 공무원의 휴직 이야기, 

지금 시작해보려고 한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관자놀이를 눌렀던 두 검지에 힘이 빠지자, 머릿속에 가득 찼던 뜨거운 열기가 등줄기를 타고 내려온듯한 기분이 들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벌써 정오가 넘었다. 달력을 보니 2022년도 벌써 반이 지나버렸다. 이러한 생활이 반복된 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식탁 위에 올려진 약봉지를 보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버스를 타면 8 거장 뒤에 위치한 정신의학과 의원에 다닌 지도 벌써 세 달 째다. 적응되지 않았지만, 당분간은 이렇게 살아도 상관없는 사람처럼 침대에 정자로 누워 천장만 멀뚱멀뚱 바라봤다. 

그저 쉬는 게 어설픈 나는 이제 막 병가를 낸 7급 공무원이다.




6개월 전이었다. 보건직들이 가장 기피한다던 의약과로 발령받은 것은. 감염병 대응팀과는 다르게 인원이 적었던 의약과 의무팀은 두 번째 발령 부서였다. 발령장을 건네주시며 고생하라는 소장님의 어색한 미소가 도장 찍듯이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의약과에서 배울 것이 많다며 마지막 밥을 사주시던 감염병 대응팀장님의 얼굴 또한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내가 귀에 이상이 있다는 걸 감지한 건 감염병 대응팀에서 일했던 해, 즉 2021년 하반기부터였다. 왕복 3시간을 통근하면서 유독 지하철에 서 있을 때마다 어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땐 피곤해서 일시적으로 생긴 증상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야근을 하느라 저녁 먹는 시간이 불규칙해도 개의치 않았다. 


새벽 한 시 넘어 귀가해도, 주말과 평일 상관없이 근무해도, 새벽에 당직 전화를 받아도 그저 이 직업을 선택한 나의 몫이라고 생각해 왔다. 

특히 나의 주된 업무는 코로나19 집단감염에 관한 역학조사였으므로, 많은 업무량을 소화하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처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저 주어진 일에 묵묵히 일만 했을 뿐인데, 귀는 점점 먹먹해져가만 갔다.




처음에는 3초였다. 귓가에 삐 소리가 맴돌았던 찰나의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소음은 누적되어 강도와 유지시간뿐만 아니라 빈도마저 늘어났다. 몸에서 제발 알아달라는 적신호였다. 


간호사 동료에게 증상을 말하니, 메니에르라는 질병이 의심된다며 언질을 줬다. 2021년이 지나가기 전 처음으로 검사받았던 곳은 동네의 작은 이비인후과였다. 검사 장비가 부족하니, 정확한 진단을 받으려면 큰 병원에 가라는 의사의 조언을 따라 곧장 대학병원 진료를 예약했다. 


대학병원에서 60만 원이 넘는 검사를 받으며, 내가 겪는 이 어지럼증이 단순한 질병은 아닐 거라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혔을 때였다. 하지만 그 강박관념은 건강염려증을 뒤로 한 채, 휴직에 대한 기대감으로 변질되어 갔다. 무척이나 쉬고 싶을 정도로 몸도 마음도 여유가 없었다.


검사 결과를 들으러 병원을 재방문한 날, 나는 여러 장의 종이 중 '진단서'라 쓰여있는 종이가 구겨질라 가방에 품다시피 넣어뒀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의 건강 상태를 인질로 잡아, 휴식이라는 달콤한 거래를 하려는 생각에 강렬하게 스며들었다는 걸.





2021년 12월 29일, 나는 H810 메니에르병을 진단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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