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미워하지 않을 용기가 필요했다
뭔가를 해내야 했다. 혼자서라도 이뤄낼 뭔가가 있다는 걸 증명해내지 않으면, 나의 쉼은 이유 없는 핑곗거리로 전락해 버릴 것만 같았다. 자꾸만 목이 말랐다. 몸속에 남아 있던 갈증은 한밤중에 일어나 물을 마시는 걸로는 해소가 되지 않았다. 더 많은 양의 물을 마실수록 그 욕구는 커져만 갔다. 누군가 내 온몸에 구멍을 내어 헤싱헤싱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면 설명할 길이 없었다.
블라인드의 접힌 가로선 사이로 아침을 알리는 햇살이 쏟아졌다. 정수리에 따뜻한 기운이 웃돌았다. 채도가 낮은 팥죽색 블라인드에 밝은 빛깔이 더해져 어느새 옅은 분홍빛이 은은하게 내비쳤다. 6년 전, 남향인 아파트로 이사 오면서 제일 먼저 구매한 물건이었다. 짙은 어둠이 싫어 암막 커튼 대신 골랐었다.
가능한 한 외출을 많이 하세요. 특히 한낮에.
여건상 어렵다면 가로로 긴 창이 있는 방에서 지내도록 하세요.
넉 달 전부터 내원한 정신의학과 담당 의사의 목소리가 맴돌았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10을 향해 있는 시침이 보였다. 병가를 내고 난 이후 하루 일과는 엉망이 되어갔다. 매주 금요일 19시부터 21시까지 소설 창작 강의를 듣는 것 외엔 이렇다 할 활동은 없었다. 기상 시간은 제각각이었지만, 시간은 빠짐없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동시에 끝을 향했다. 시간이 축적되어 하루가 되고, 그 하루가 쌓여 일주일이 완성된다는 걸 체감했을 땐, 이미 추석 연휴는 지나갈 무렵이었다. 인지하지 않았을 뿐, 2022년도 3분기의 끝에 다다랐다.
뭔가를 해내야 했다. 혼자서라도 이뤄낼 뭔가가 있다는 걸 증명해내지 않으면, 나의 쉼은 이유 없는 핑곗거리로 전락해 버릴 것만 같았다. 자꾸만 목이 말랐다. 몸속에 남아 있던 갈증은 한밤중에 일어나 물을 마시는 걸로는 해소가 되지 않았다. 더 많은 양의 물을 마실수록 그 욕구는 커져만 갔다. 누군가 내 온몸에 구멍을 내어 헤싱헤싱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면 설명할 길이 없었다.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사로잡힐 게 눈에 선했다. 이도저도 아닌 현실을 받아들일 담담한 태도가 필요했다.
글을 쓰기 시작했다. 단편 소설을 먼저 써 내려갔다. 한 글자, 한 마디, 한 문장씩 타자를 칠 때마다 스스로와 타협하기도 하고 다그치기도 했다.
'이 정도면 충분해.' 때론 '좀 더 잘 쓸 순 없겠니', 하며.
마음속 생각을 글로 끄집어낼수록 알 수 없는 성취감에 휩싸였다. 가끔씩 측은한 시선이 닿을 때면, 자기를 향한 연민이나 동정심 따위의 것들이었다. 혼자 있는 방에선 그 모든 것들이 가능해졌다. 일종의 우월감을 보인 건 아니었으나, 내가 바라보는 대로 나를 설정할 수 있었다. 소설 속 주인공은 다름 아닌 나였다.
<소설 내용 일부 인용>
이제야 실감이 나네요.
진영의 눈길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10km 마라톤을 알리는 현수막이 있었다. 네 면이 끈으로 묶인 현수막은 이도 저도 갈데없이 꼼짝 못 하는 나의 신세와 같았다. 한 번 배에 오른 이상, 목적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도망갈 수 없어. 정박할 때까지 너는 네 역할을 해야만 해. 주의사항을 알리는 개최자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리자 선장의 근엄한 표정이 떠올랐다.
오전 10시였다. "빵" 총소리가 울려 퍼지자, 선두에 선 빨간 물결들이 앞서 나가기 시작했다. 파동에 이끌려 나도 한 발, 두 발 조심스럽게 규칙적인 리듬을 만들어냈다. 두 발을 움직일 때만큼은 어깨를 짓눌렀던 무게감도, 축 처진 속눈썹도 가벼워졌다.
현수막과 같은 존재로 남아있기 싫었다. 결국 도망치듯 보건소로부터 가까스로 나왔다. 하지만 더 이상 돌아갈 곳은 없었다. 막다른 길 위에 서서 지난날을 곱씹어보는 것 외엔 할 줄 아는 것이 없었다. '네가 요령이 없어서, 몸이 약해서, 예민해서 이 사달이 일어난 거야.'라는 말로 그들과 타협하고, 스스로 깎아내리고 싶진 않았다. 자기혐오에 빠진다는 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것과 같았다. 대신 본인을 미워하지 않을 용기가 필요했다.
글은 유일하게 그 용기를 터득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매개체였다. 바깥 날씨는 사시사철 변하지만, 글은 그 자리 그대로 변함없이 있어주었다.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면 글을 계속 써야만 했다. 미사여구로 가득한 글이 아닌, 최대한 담백한 문체로 표현해야 했다. 때론 간결한 한 마디가 더 간절하게 느껴졌다. 굳이 내 상황을 구구절절하게 나열하고 싶지 않았다.
한 편의 소설을 완성했다. 9쪽을 끝으로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가 찍혔다. 이는 내게 작은 해방감을 선사했다. 조금이나마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마침내 바라본 9월 끝자락에서의 하늘은 여전히 여름과 가을 사이를 갈팡질팡하는 듯 보였다.
그때 나는 이미 가을의 중턱에 서서 겨울을 기다렸다.
아마도 가을과 겨울 사이에, 뭔가 큰 결심을 할 거라는 걸 지레 짐작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