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밍 아웃

병은 소문내야 한다.

by 강진경

암밍아웃, 암과 커밍아웃의 합성어로 암 경험자임을 주변에 알리는 일을 말한다. 나는 진단받은 날 직장에 바로 암 소식을 알렸다. 아픈 건 죄가 아닌데 딱히 숨길 이유도 없었고 숨긴다고 될 일도 아니지 않은가.


드라마를 보면서 가장 답답할 때가 말기 암 환자가 자신이 아픈 걸 가족들에게 숨기고 혼자서 끙끙 앓는 것이었다.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주변에 피해를 줄까 봐 자신이 암 환자인걸 주변에 밝히길 꺼려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도움이 필요할 때 주변에 도움을 받는 일은 전혀 부끄러운 일도, 자존심 상할 일도 아니다. 감사한 일인 것일 뿐.


수술 병원을 알아보면서 최근 연락하지 않은 지인들에게까지 연락을 하여 내 소식을 전했다. 병은 소문내야 한다는 말도 있지 않나. 굳이 이렇게 한 이유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정보를 얻고, 한 번이라도 더 위로받기 위해서였다. 한 사람의 기도보다 많은 사람의 기도가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있었다. 나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라면 깊이의 차이는 날지언정 모두 나의 회복과 쾌유를 빌어 주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암을 앓고 있었다. 친구의 어머니, 친구의 시누이, 동료 선생님의 올케, 시아버님의 지인, 친구의 사촌언니. 큰집의 작은 숙모.. 알고 보니 누구도 암에 걸렸다더라. 이런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아는 사람의 한 다리를 건너면 암 환자인 셈이었다. 세상에 이렇게 암 환자가 많다니.


암밍아웃을 하고 나면 으레 돌아오는 질문은 '얼마나 된 거래? 초기인 거지?'였다. 그리고 2기라고 하면 '요새 유방암은 별 것도 아니야. 수술하면 괜찮을 거야.'라는 위로가 따라왔다. 사실 이 말이 유방암 환자들에게 적절한 위로는 아니다. 물론 다른 암보다 유방암의 치료가 보편화되어 있고, 예후가 좋은 편이긴 하지만 세상에 별 것 아닌 암이 어디 있을까?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유방암은 전이와 재발이 잘 되는 암이다. 주로 뼈, 폐, 간, 뇌로 전이되며 한쪽 유방암 환자의 경우 반대쪽 유방암에 암이 생길 확률도 평생 10-15% 정도이다. 유방암이 무서운 것은 이 때문인데 원격 전이 재발이 있을 때는 완치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방암이 한 번의 수술만으로 완치가 된다고 알고 있다. 유방암은 수술 자체는 비교적 간단하지만 5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재발할 수 있기 때문에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한 병이다. 그래서 암 환자들은 완치란 말도 잘 쓰지 않는다.


그렇다면 유방암에 걸린 이에게 어떻게 위로를 해주면 좋을까? 가장 좋은 방법은 지금 상황을 공감해주고, 반드시 나을 것이라고 담담히 얘기해주는 것이다. '많이 놀랐지?', '나는 너가 반드시 건강하게 회복될거라 믿어.' 이러한 확신에 찬 메시지가 '유방암 별 것 아니야.'라는 말보다 백 배는 낫다.


암을 진단받기 몇 달 전, 동료 선생님의 동생분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연락을 받고 장례식에 간 적이 있었다. 그동안 동생분의 투병 사실을 몰랐는데 알고 보니 몇 해 전 유방암을 진단받고 결국 폐암으로 전이되어 세상을 떠나셨다. 지금은 초등학생인 어린 자녀가 소은이만 할 때 유방암을 진단받았다고 했다. 당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동생분이 너무 안타깝고 황망했는데 진단을 받고 나니 자꾸만 그 일이 생각나 불안감에 휩싸이곤 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 그건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입 밖으로 내기도 무서워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지만 언제든 재발, 전이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그 공포에 사로잡히면 일상생활을 영위하기가 힘들다. 내가 그토록 영양제에 집착하고, 면역 치료를 공부하는 이유도 이런 데 있었다.

물론 별 거 아니라고 위로해주는 사람에게 유방암의 재발과 전이에 대해 애써 설명하진 않는다. 그건 가족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께 나의 걱정을 전가시킬 이유도 없거니와 가뜩이나 걱정이 많은 분들께 근심을 더해드릴 이유는 없으니까. 격려와 응원의 마음만 감사히 받으면 된다.


암밍아웃 이후 많은 사람들이 내게 도움을 주었다. 수술할 때 병원을 알아봐 주고, 힘내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고, 잘 챙겨 먹으라고 보양식을 보내주기도 했다. 또래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나 대신 아이와 온종일 놀아주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몸에 좋은 걸 챙겨 먹으라고 돈을 보내주기도 했다. 종교가 있는 사람은 각자의 신께 기도를 했고, 어떤 이는 나의 회복을 위해 내 얼굴도 모르는 분들께 대신 기도를 부탁해주시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해준 덕분에 나는 생각보다 빠르게 회복했다. 그리고 아프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이렇게 사랑받고 있음을. 내 곁에 소중한 사람들이 있음을.


치료가 끝난 지 반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이따금씩 나의 안부를 물어봐주는 사람들이 있어 힘이 된다. 그리고 꼭 건강을 회복해서 내게 마음을 베풀어준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싶다. 혹시나 주변에 암 환자가 있다면, 자주 안부를 물어봐주면 좋겠다. 연락하기가 망설여진다고? 조심스럽다고? 주저하지 말고 연락해봐라. 당신의 메시지가 아픈 이에게는 큰 위로와 용기가 될 수 있으니 말이다.


(photo by Peter Boccia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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