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방외과 첫 진료 : 중증환자가 되다.

2021년 4월 23일

by 강진경

그렇게 어렵던 대학병원 예약이 암을 진단받았다고 하자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젊은 유방암 환자는 진행속도가 더 빠르고 위험해서 일반 환자보다 더 빠른 '패스트 트랙'이 있다고 한다. 다행히 집에서 그나마 가까운 곳으로 예약이 빠르게 잡혀서 진단받고 다음날 대학병원 진료를 볼 수 있었다. 평일 오후인데도 병원은 사람들로 붐볐다. 이 세상의 아픈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은 걸까.


내가 가야 할 곳은 '암센터' 안에 있는 유방외과였다. '암센터'라니.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적응이 되지 않는 게 당연하지. 의사 선생님과의 면담은 아주 짧았다. 조직 검사 결과 암이 발견되었으나 지금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정밀 검사를 해야만 한다는 것.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나는 암환자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병원에서는 수납할 때 산정특례 중증 등록 서명을 하고 가라고 했다. 중증 등록이란 중증질환자와 희귀 중증 난치질환을 가진 사람의 의료비 본인부담금에 혜택을 주는 제도란다. 중증 등록이 되면 5년 동안 등록된 암과 관련된 질환은 요양급여비용 총액의 5%만 부담하면 된다. 우리나라에 이런 좋은 제도가 있었나. 수납을 하고 영수증을 출력하니 환자 구분란에 '산정특례 중증'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이로써 공식적으로 나는 중증환자라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아침에 암환자가 되는 걸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 쉽지 않다. 암환자가 된다는 것은 나는 똑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데 어제와 전혀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일이다. 진단을 받고 하루 동안 인터넷을 통해 꽤 많은 정보를 찾아보았다.

'호르몬 수용체, 호르몬 양성, 허투 음성, 허투 양성, ki지수, 온코 검사, 브라카, 타목시펜...'

전혀 알지 못했던 낯선 단어들이 내게 의미심장한 단어로 다가온다. 평생 모르고 살았으면 좋을 전혀 다른 세상에 발을 담그는 기분.


검사일정이 빼곡하게 적힌 '진료 후 안내문'에는 내가 받아야 할 검사들이 줄줄이 적혀있었다. 오늘 받고 갈 검사는 분자유전학, 생화학 유전학(대사이상 질환), 소변검사, 혈액검사, X-선 가슴 검사, 심전도 검사, MRI유방 검사였다. 그리고 나흘 후에 면역 조직 화학검사, 외과 병리학적 검사, 디지털 유방단층활영, 유방 액와 초음파, 뼈 검사, CT흉부, CT복부/골반 검사, 산부인과 진료가 잡혀있었다. 면역 조직 화학검사를 위해서는 처음 진단받은 병원에서 블록 1개 또는 면역용 비염색 슬라이드 8장을 반드시 가져와야 한다. 쉽게 말하면 조직검사를 하기 위해 떼어낸 조직을 본원으로 가지고 와서 다시 정밀 검사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진료실을 나오면서 울지 않았다. 울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었고, 알아봐야 할 것들은 너무 많았다. 새로운 세계의 사람이 되려면 그에 맞는 공부가 필요했다.

흔히 병을 진단받고 나면 사람들은 다음의 심리 단계를 걸친다고 한다. 처음에는 '내가 암에 걸렸을 리 없어. 아닐 거야.'라고 <부정>하고, 다음에는 '왜 하필 나야, 왜 내가 암에 걸린 거야.'라고 <분노>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어느 정도 거치고 나면 '그런데 나는 왜 암에 걸린 걸까?' 의문을 가진다고 한다. 암이라는 병이 왜 발생했는지 의미를 부여하는 <의미부여>가 지나면,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해하려고 하는 <해석> 단계를 경험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제해결> 단계가 있다. 암과 싸우는 과정에서 환자가 주도권을 쥐고 행동하고 결정하려고 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환자 본인이 직접 암과 그 치료에 대한 정보를 구하고, 치료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치료의 부작용을 잘 극복해 나가는 것이 바로 마지막 단계이다.


나는 부정과 분노 단계는 가뿐히 건너뛰기로 했다. 내가 암에 걸린 것은 기정 사실이고, 운다고 달라질 것은 없었다. 나라에서 이렇게 중증 환자 등록까지 해준 이상 번복될 소지도 없어 보였다. 왜 내가 암에 걸렸을까 의아하지도 않았다. 진단을 받기 전에 암에 걸릴 만큼 힘든 나날이 계속되었기에 어찌보면 '올 것이 왔구나.'하는 심정이었다. 나는 빠르게 문제 해결 단계에 착수하기로 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