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후배교사의 수줍은 고백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어요.

by 강진경

학기 초가 쉴 틈 없이 바쁜 것처럼 학년말의 학교 또한 그 동안의 교육활동을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시간이라 정신없이 바쁘다. 해야할 일은 늘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급한 일부터 하나 둘 씩 해나가며 미션을 수행하다보면, 어느 새 종업식이 다가오기 마련.


오늘은 시험 마지막날이라 학생들이 일찍 귀가를 하고, 모처럼 선생님들도 일이 있는 사람들은 조퇴를 해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우리 부서는 점심에 회식이 계획되어 있어서, 정말 오랜만에 밖에 나가서 동료 선생님들과 점심을 먹게 되었다. 학교에서는 너무 바빠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눌 새가 없는 교사들은 이런 날에야 겨우 얼굴을 마주하고 속에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저 내년에 결혼해요.'라는 반가운 소식부터, 방학 중 부전공 연수를 가게 된 이야기, 기타를 취미로 연주하던 선생님이 학생들 앞에서 크리스마스 공연을 하게 된 이야기, 가족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반려견 이야기, 자녀 교육에 대한 생각과 은퇴 후의 미래까지... 이런 저런 이야기꽃을 피우고 헤어질 무렵, 선생님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혼자가 된 내게 우리 학교에서 가장 나이가 적은 20대 선생님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선생님, 저 아까 쑥스러워서 말을 못한 게 있어요."

"네? 뭔데요?"


나는 쑥스러워서 말을 못했다는 말에 그녀가 당연히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를 털어놓을 거라 생각했다. 젊은 선생님이 고민이 있었나? 우리가 너무 우리끼리 이야기를 했나? 짧은 순간 여러 생각이 머리를 스치며 지금이라도 이야기를 잘 들어줘야지 생각을 하면서 뒷 말을 기다렸다. 그런데 그녀의 입에서는 뜻밖의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선생님, 항상 열심히 하시는 모습이 너무 멋지고 존경스러워요.
이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수줍게 웃는 게 아닌가. 나는 어린 선생님의 갑작스런 고백을 듣고, 용기를 내어 내게 이 말을 해준 그녀가 너무 대견하고 예뻐보였다.


어머~ 뭐야~ 선생님. 정말이에요?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요.


나는 진심으로 그녀에게 고마웠다. 누군가에게 인정 받는다는 건 이렇게 기쁜 거구나. 복직을 하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았는데 그 노력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 감격스러웠다. 특히 내게 칭찬을 해준 선생님이 관리자나 선배교사가 아니라 후배교사라는 사실이 더 뜻깊었다. 윗사람이 나를 칭찬했다면, 그건 으레 하는 말이거나, 앞으로 더 잘하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건 정말 그 사람의 순수한 마음이 그대로 녹아있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느새 후배교사에게 존경받을 수 있는 교사가 되었다니. 묘한 기분이 들었다. 존경이라는 단어를 쓸 만큼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것이 낯설면서도 얼떨떨했다. 내년이면 교단에 선 지 15년차가 되는데 그러고 보니 그녀와 나도 대략 15살 정도 차이가 나는 것 같았다. 문득 15년 전, 풋풋했던 내 초임 시절이 떠오르며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이 선생님도 그 시절의 나처럼 힘들고, 어렵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애틋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자 내가 더 그녀를 살뜰하게 챙기지 못한 게 못내 미안했고, 앞으로 혹시라도 내가 도와줄 일이 있으면 더 나서서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게 말 한 마디의 위력이겠지. 그러자 아까 그녀에게 전하지 못한 나의 속마음이 입가를 맴돈다. 다음주에 출근을 하면 나도 용기 내어 이 말을 해주어야겠다.


"선생님, 내가 아까 선생님께 S에 대해 말한 이유가 뭔 지 알아요? 선생님이 S에게 끼치는 영향력이 우리 학교에서 가장 클 것 같아서였어요. S를 잘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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