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다 괜찮을 거라는 믿음

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by 강진경

24년 10월 26일, 한 달 전 건강검진 엑스레이에서 폐에 음영이 증가했으니 폐 CT를 찍어보라는 소견이 나왔다. 평온했던 토요일 오후, 예상하지 못한 소견에 정신이 아득해졌고, 당황스러움에 눈물도 나지 않았다. 암 치료 후 3년 6개월 만에 처음으로 닥친 위기였다.


많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역시 복직을 하면 안 되었나?

당장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걸까?

뭘 위해 내가 이렇게 살고 있었지?

내가 만약 잘못되면 우리 소은이는 어떡하지?

다시 아프게 되면 나는 학교로 돌아간 나의 선택을 후회하게 될까?


부정적인 생각이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드는 찰나

생각의 스위치를 서둘러 다른 방향으로 전환시켰다.


나는 잘못되지 않아.

이건 아무것도 아니야.

설령 문제가 있으면 다시 치료하면 돼.

내 건강에 문제가 생겨도 소은이는 잘못되지 않아.

나는 학교로 돌아간 걸 후회하지 않아.

나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했고,

분명 내게서 좋은 영향력을 받은 친구들도 있을 거야.

그렇다면 나의 선택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니야.


그리고 몇 개월 전 대학생이 되어 학교에 찾아온 제자 H를 떠올렸다. 교무실에 그녀가 나타났을 때 나는 왠지 모를 반가움에 눈물이 울컥 났다. 유난히 나를 많이 따랐던 H.


중학교 1학년 꼬맹이가 어느새 어엿한 어른이 되어 내 앞에 있을 때 그 감동이란.. 갑자기 휴직을 한 탓에 내가 H를 가르친 건 불과 몇 개월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H는 졸업을 할 때까지 3년 동안 가끔 연락을 해왔다. 선생님 대체 언제 학교로 돌아올 거냐고, 보고 싶다고, 나의 안부를 물어주던 아이.


고맙게도 그 아이는 멋진 어른이 되어, 나와 같은 교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선생님 덕분에 국어라는 한 과목을 좋아하게 됐고, 그로 인해서 한국어를 더 사랑하게 됐어요. 그 때문인지 말을 하는 것도 한 마디 한 마디 조심스럽게, 소중하게 내뱉게 되더라고요. 제가 중학생 때 선생님을 만난 건 나중에 오랜 시간이 흘러도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축복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나는 H가 보내온 메시지를 다시 꺼내 읽으며 조용히 내 삶의 이유를 찾았다. 어디에 있든, 나는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을 주고 싶고, 누군가의 삶이 나로 인해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뀐다면, 내 인생은 헛된 게 아니다.


H의 메시지는 나를 따뜻하게 위로해 주었고,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니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며칠 뒤 주치의 유방외과 교수님을 찾아갔고, 교수님은 괜찮을 것 같지만 걱정되면 검사를 해보자 하셨다. 그때 가장 빠른 검사 일정이 한 달 뒤였다.


그 사이 걱정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게다. 처음에는 시간이 참 더디게 흘렀다. 빨리 검사를 하고, 아무 이상 없다는 얘기가 듣고 싶어 로컬 병원도 두 군데 방문했지만 결국 본원에서 검사를 하는 것이 가장 낫다는 결론이 났다.


검사를 기다리면서 내게 힘이 되었던 건 처음 유방암을 진단을 받았을 때와 마찬가지로 글쓰기였다. 마침 그때가 <예민한 아이, 현명한 엄마> 출간을 앞두고 있을 때라, 그 작업에 몰두하다 보니 첫날 느꼈던 두려움은 사라지고, 어느새 나는 다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 드디어 어제, 정확히 31일 만에 검사를 하러 병원에 갔다. 평소와 다름없이 출근을 하고, 수업을 하고,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병원에 도착했다. 지하주차장이 비어있었지만 일부러 지상에 주차를 했다. 바람을 쐬고, 바깥 풍경을 보고, 조금이라도 걷고 싶었다. 암센터로 가는 길에 바람이 불었다. 내 뺨을 스치는 바람이 11월답지 않게 포근했고 이상할 만큼 기분이 좋고 편안했다. 다 괜찮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을까.



늦은 시간 CT를 찍고 나오는 길에 본 단풍잎이 얼마나 곱고 예쁘던지. 그동안 밤 벚꽃만 예쁜 줄 알았는데, 밤에 보는 단풍도 이렇게 아름다운 거였구나. 밤하늘을 수놓은 빨강 노랑 단풍잎을 바라보면서

"아, 이렇게 또 엉뚱한 곳에서 단풍을 구경하네."

싶어 웃음이 났다.


다음 주에 결과가 나오기까지, 또 열흘을 기다려야 하지만 그 시간이 그리 힘들지는 않을 것 같다. 나는 괜찮을 거니까. 지금의 걱정이 무색할 만큼. 아무렇지 않을 거니까. 그리고 어떤 결과가 나오든 나는 소중하고, 내 인생은 가치 있으며,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있는 모든 순간이 의미 있음을 믿고, 변함없이 나 자신을 사랑할 것이다.





안녕하세요! 독자님.

이 글은 24년 10월에 적은 글이에요.

저는 지금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답니다!

(그 당시 폐 CT검사 결과 아무 이상이 없었고 건강검진에 엑스레이에서 보인 음영은 방사선 치료 흔적으로 결론이 났어요. 방사선 치료를 받으신 유방암 환우분들은 엑스레이 찍고 나서 저와 같은 사례가 생길 수 있으니 조심하셔요)


벌써 복직한 지 2년이 흘렀고 이제 곧 방학이 다가오니 그동안의 기록들을 정리해 또 한 권의 이야기로 내보려고 합니다. 그간 미처 발행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서랍 속에 차곡차곡 담아 둔 글들부터 하나씩 꺼내보려고요.

제가 계속 글을 쓰는 삶을 멈추지 않도록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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