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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우울이 물들까 봐 망설였다.

3장. 엄마라는 자리

by 코지한울

나는 막내로 태어나, 책임감의 무게를 견뎌본 적이 거의 없었다.

하고 싶은 일과 하기 싫은 일 사이에서 마음껏 선택하며,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힘이 늘 내 곁에 있었다.

세상과 부모님은 늘 나를 자유롭게 내버려두었고, 그 안에서 나만의 속도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나서, 세상은 전혀 다른 질감으로 바뀌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몸과 마음, 새벽마다 찾아오는 울음, 끝없이 이어지는 집안일과 책임들.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 했고, 참기 힘든 순간에도 참고 넘어가야 했다.

아이들의 작고 따뜻한 시선이 내 모든 걸 견디게 만들었다.

그 눈빛 안에서, 나는 처음으로 ‘내 선택이 누군가의 하루를 바꾼다’는 사실을 몸으로 느꼈다.


엄마라는 자리는 내가 처음 겪는 무게였다.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방 안을 채울 때도, 저녁의 냉기 속에서 아이를 안을 때도, 나를 붙잡는 책임감이 늘 함께 있었다. 아이를 재우며 안고 있자면 가슴에 느껴지는 온기, 작은 손가락이 내 손가락을 꼭 붙드는 느낌, 쌕쌕 거리는 숨결 사이로 스며드는 체온과 향기. 이 모든 감각이 나를 현실로 붙잡았다. 내가 내 안의 최악을 마주할 때, 동시에 최선을 발견하기도 했다. 피곤하고 지치지만,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의 모습은 매 순간 나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내 안의 내면아이를 비추는 거울이기도 했다. 아이들을 돌보며 어린 시절 느꼈던 불안과 외로움이 떠오를 때면, 마음이 무겁고 가슴이 찌르듯 아팠다. 하지만 되려 그 과정을 통해 나는 천천히 치유되었다. 아이들의 숨결, 작은 손길, 귓가에 스치는 웃음소리가 내 안의 상처를 부드럽게 쓰다듬고, 오래 감추고 있던 감정을 조용히 인정하게 했다. 잠든 아이의 작은 얼굴을 바라보며 느끼는 고요함 속에서, 나는 어린 나에게도 다정하게 손을 내밀 수 있었다.


엄마가 되길 선택한 순간부터, 나는 삶의 무게와 방향을 다시 측정하게 되었다. 그저 하고 싶은 대로 살던 내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생각하고, 기다리고, 고민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이의 건강에 맞춰 음식을 만들고 , 잠든 아이곁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매일 반복되는 집안의 일들 속에서 나는 작은 결정을 내렸다. 다정한 사람이 되기로. 그 결심 하나하나가 내 안의 불안을 조금씩 누그러뜨렸다.


엄마라는 자리에서 나는 다채로운 나를 발견했다. 지치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사랑과 책임감으로 나를 붙들고 버티는 나. 피곤함 속에서도 숨죽이며 웃고, 울면서도 안정을 찾는 나. 그 모든 순간을 통해 조금씩 단단해지는 나.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는 내 안의 내면아이를 달래고, 동시에 나 자신에게 다정함을 배워간다. 때론 아이의 말 한마디에 눈물이 스며들고, 웃음소리에 마음속 응어리가 풀리기도 한다.


엄마라는 자리, 그것은 나를 완전히 바꾸는 자리이자, 나를 치유하고 성숙하게 만드는 자리였다. 오늘도 나는 그 자리에서 조금씩 나 자신을 배우며, 아이들과 함께 하루를 살아간다. 하교 시간이 되어 엄마를 부르며 들어오는 순간, 아침이면 인사하러 안기는 아이의 보드라운 살결, 아이의 숨결과 웃음, 손끝으로 느껴지는 아이들의 체온 이 모든 순간이 내 삶의 풍경이 되었다.


엄마라는 자리 속에서 나는, 내 안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마주하며, 살아있음을 실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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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아기.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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