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내 우울이 물들까 봐 망설였다.

4장. 사랑과 거리 두기

by 코지한울

성인이 된 나의 첫사랑은 집착에서 시작되었다.
불안정한 어린 시절의 공기가 오래도록 내 안에 남아, 연애를 할 때마다 상대를 움켜쥐려는 마음으로 나타났다. 마음의 거리가 느껴질수록 불안이 커졌고, 나의 사랑은 곧 두려움과 닮아갔다.


어릴 적부터 불안정했던 내 마음은, 누군가를 사랑할 때 더더욱 그 불안을 드러냈다. 가까워지고 싶다는 마음엔 늘 두려움과 함께였고, 놓칠까 봐 애써 붙드는 내 모습은 오히려 상대를 질리고 멀어지게 했다. 오래 연애했던 한 연인에게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끊임없이 확인을 원했고, 상대는 점점 마음의 거리를 두었다. 결국 그 관계는 내 집착으로 인해 무너졌다. 그때 나는 사랑에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뼈아프게 배웠다.


그 경험은 나중에 결혼 생활에서 큰 도움이 되었다. 배우자와 함께 살면서도, 나는 여전히 과거의 그림자를 떠올리곤 했다. 붙잡으려 할수록 멀어진다는 사실을 알기에, 애써 내 마음을 다잡았다. 완전히 놓아버리는 것이 아니라, 숨 쉴 틈을 서로에게 내어주는 일. 그 배움은 내가 건강하게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첫걸음이었다.


신혼 시절, 나는 미국에서 생활했다. 모국이 아닌 낯선 땅에서 나보다 타지생활을 먼저 시작했던 남편에게 자연스레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언어도, 환경도, 관계도 낯설었으니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은 남편뿐이었다. 남편은 내 곁에서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고, 나는 그 품 안에서 안정을 느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그 밀착된 관계가 나를 점점 답답하게 만들었다. 내가 원하는 건 전부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이면서도 각자의 자리를 존중하는 관계였음을 그때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다시 역이민을 한 뒤, 우리는 각자의 일에 몰두하며 서서히 거리를 조율하기 시작했다. 하루의 일정 속에서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고,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필요할 때 곁을 내어주는 것. 그것이야말로 함께 오래 걸어가기 위한 길임을 깨달았다. 지나치게 가까운 것도, 지나치게 멀어진 것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에서 숨을 고르는 것. 나는 그 균형 속에서 비로소 편안함을 느꼈다.


육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아이를 향한 사랑이 집착이 되는 순간들이 많았다. 혹시 다칠까, 혹시 힘들어하지 않을까, 늘 예민하게 살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깨달았다. 아이는 내가 다 막아주고 대신 살아줄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오히려 조금의 거리를 두었을 때 아이는 더 건강하게 자라고, 나도 엄마로서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적당한 거리 두기는 아이에게 자유를 주었고, 나에게는 숨을 쉴 여유를 주었다.


돌아보면, 사랑이란 붙잡는 것이 아니라, 놓아주는 용기에서 시작된다는 걸 알게 된다.

놓아주는 건 포기가 아니라, 서로가 더 오래 머무를 수 있도록 내어주는 자리를 만드는 일이다.

연인에게서, 배우자에게서, 그리고 아이와의 관계에서 나는 그것을 배워왔다.


사랑의 거리 두기는 결국 신뢰의 다른 이름이다. 믿기 때문에 거리를 둘 수 있고, 그 거리 속에서 서로는 더욱 단단해진다.


나는 여전히 서툴지만, 오늘도 배우고 있다.

사랑이란 함께 있으면서도 각자의 시간을 지켜낼 수 있는 용기라는 것을.



#사랑과거리두기 #관계의균형 #집착 #신뢰 #코지한울

사랑.jpg


keyword
이전 04화내 우울이 물들까 봐 망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