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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우울이 물들까 봐 망설였다.

2장. 어린 날의 집, 그늘과 빛

by 코지한울

우리 집은 번화가에 위치한 요가원이었다. 아래층은 아빠가 요가 강사로 수업을 준비하고, 그 위층으로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이 있었다. 나는 그 틈에서 자라며 사람들을 관찰하는 걸 좋아했다. 지나가는 이들의 표정, 친구들의 작은 손짓, 사람들의 웃음과 행동, 그 모든 것이 어린 내 눈에는 흥미로운 세계였다. 집이 늘 안정적이지 않았던 탓에, 나는 바깥 풍경을 통해 세상의 리듬을 배웠고, 관찰을 통해 호기심이라는 이름으로 불안을 잠재우곤 했다.


집 안에서는 늘 공기가 흔들렸다. 아빠와 엄마의 이혼 이후, 집이라는 공간은 나에게 더 이상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라, 언제 금이 갈지 모르는 벽과 같았다. 발을 디딜 때마다 마음속 어딘가가 긴장했고, 작은 소리에도 쉽게 마음이 요동쳤다. 그 예민함은 단순한 성격이 아니라, 어린 시절의 불안정 속에서 길러진 감각이었다.


어릴 적 아빠는 요가 선생님이자 나의 동행자였다. 전국으로 연수를 다니며 나를 데리고 다니셨고, 달리는 차 안에서 노래를 부르고 구름 속에서 함께 동물 모양을 찾았다. 여행길의 신나는 순간들은 어린 내 마음을 단단히 지켜주었다. 아빠와 함께 보낸 시간 속에서 나는 잠시나마 불안정한 집을 벗어나 안전을 느낄 수 있었다.


할머니는 내 마음의 또 다른 울타리였다. 방학이면 엄마와 언니를 보고 돌아와 서럽게 울던 나를 꼭 안아주셨다. “이런 썩을 잡것들” 하며 부모님을 원망하시며 나를 부둥켜안고는, 나의 편임을 확실히 알려주셨다. 할머니는 살림살이를 정갈히 챙기는 법, 검소함 속에서도 깔끔히 살아가는 법, 힘든 상황에서도 잃지 않는 유머러스함, 예절과 배려를 몸소 보여주셨다. 지금 내가 엄마이자 주부로 살아가며 지키려 애쓰는 습관들은 대부분 할머니에게서 배운 것들이다.


엄마와 언니와 떨어져 지내야 했던 시간들은 어린 내 마음에 큰 그림자로 남았다. 그 부재는 외로움과 불안을 남겼지만, 동시에 세상을 더 섬세히 관찰하게 만들었다. 사람들의 말투, 손길, 표정에 민감했던 이유는, 어쩌면 그 빈자리를 메우고 싶었던 마음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춘기가 찾아오고 집에 들어가기 싫을 땐 친구 집에서 며칠씩 머물며 밥을 얻어먹고, 친구와 침대를 나눠 쓰던 시절이 있었다. 그곳에서는 내 마음이 잠시 쉬었다. 낯선 집이지만, 그곳의 공기와 작은 평범한 일상들은 내게 안정감을 주었다. 나는 친구의 부모님이 주는 다정한 눈길 속에서, 집이라는 건물에서 느낄 수 없었던 안전을 배웠다. 집에서 맞이해 주는 엄마의 모습, 친구의 방에서 라디오 노래를 따라 부르며 수다를 떠는 소소한 시간, 작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 그 모든 것들이 내 안에 작은 평온을 만들었다. 싫지만 좋은, 좋지만 싫은, 복잡한 감정이 뒤섞인 채로도, 나는 그 공간에서 내 마음을 붙들 수 있었다. 불안과 외로움 속에서 내 안의 균형을 찾고, 내면아이를 다독이는 법을 조금씩 배웠다.


돌아보면, 집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었다. 아빠의 노래, 할머니의 품, 친구 집에서의 시간들, 요가원의 공기. 그것들이 모여 내게 집이 되어주었다.

나는 흔들리는 집에서 자랐지만, 그 안에서 다정과 빛을 배우며 내면아이를 조금씩 치유해 왔다.


지금의 예민한 내가 괜찮다고 느낄 수 있는 건, 그 예민함이 상처의 부산물이 아니라, 나를 살아남게 해 준 감각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글을 쓰고, 누군가의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어린 날의 집은 완벽한 안식처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 그늘 속에도 분명히 빛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그 기록을 남긴다.

혹시 나처럼 불안정한 집에서 자란 이가 있다면, 기억 속 다정의 조각을 떠올려보길.

그것이 당신을 지켜주는 또 다른 집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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