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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우울이 물들까 봐 망설였다.

1장. 우울을 마주하는 법

by 코지한울

나는 우울을 지우기 위해 참 많은 길을 걸어왔다.


처음엔 종교에 기대어 보았다.
매주 예배에 나가고, 눈 내리는 새벽에 이불을 털어내듯 몸을 일으켜 기도회에 나갔다. 가사도 잘 모르는 CCM이 예배당을 가득 채우면, 그 진동 속에서 잠시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아무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 없을 때 새벽 내내 성경을 붙들고 기도를 하면 모든 문제가 조금은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예배당을 나서는 순간, 찬 바람과 함께 다시 현실이 발목을 붙잡았다. 기도로 덮어둔 우울은 더 짙게 번져, 오히려 내 어깨를 눌렀다.


그다음엔 글을 붙잡았다.

책상 앞에 앉아 오래된 기억을 긁어내듯 문장을 길어 올렸다. 그렇게 감정을 글로 옮겨두면, 그 속에 가둬둔 무게가 조금은 비워질 거라 믿었다. 실제로 쓰는 동안은 숨이 트였다. 그러나 원고를 덮는 순간, 되려 내 안의 우울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글은 분명 치유였지만 동시에 잔혹한 거울이었다. 쓰면 쓸수록 감춰온 내 얼굴을 마주해야 했고, 그 내면의 얼굴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지쳐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아예 심리상담을 배우기로 했다.

상담사가 되면 내 마음도 자연스레 치유될 거라 믿었다. 교재를 펼치고, 인강을 틀고, 이론을 외우며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법을 익혔다. 그러나 배움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내면의 그림자를 만났다. 책 속에서 설명하는 불안, 우울, 애착의 상처들이 모두 내 이야기처럼 읽혔다. 상담사가 되기도 전에, 나는 먼저 내 안의 환자를 마주해야 했다.


우울은 내가 애써 외면하려 할수록 더 강렬하게 존재를 드러냈다. 나아지려 애쓰던 어느 순간부터는 내 삶 전체가 그것을 기준으로 움직였다. 가족과의 대화에서도,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우울은 늘 가장 먼저 끼어들었다. 사소한 오해에도 쉽게 마음이 무너졌고,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했다. 그렇게 갈등이 깊어질수록 우울은 더 견고해졌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우울에 사로잡혔을까. 답을 찾으려 애쓰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우울은 없애야 하는 적이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하는 손님 아닐까.’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종교도, 글쓰기의 치유도, 상담 공부도 내 안의 우울을 지워주지는 않았다. 그저 내가 내 그림자를 정직하게 바라보도록 이끌어준 길이었다. 우울은 나를 삼키려는 괴물이 아니라, 내가 너무 오래 외면해 온 마음의 한 조각이었다.

우울을 마주한다는 건 그것을 인정하는 일이다. 내가 약하다는 낙인이 아니라,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로 받아들이는 일이다. 누구나 마음속에 감당하기 힘든 그림자를 품고 있고, 그 그림자는 삶의 일부다. 나는 이제 우울을 떨쳐내려 애쓰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알아차리고, 말을 건네고, 때로는 손을 잡으며 하루를 산다.


혹시 지금 누군가도 자기 안의 우울 때문에 두려워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우울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고.

그것은 당신의 삶이 망가진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당신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우울을 마주하는 법은 완벽한 해답을 찾는 일이 아니다. 숨기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늘 하루를 함께 견디는 것이다. 나는 그 법을 배우는 중이고, 아마 평생 배우며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이 기록들이 언젠가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불빛이 된다면.

그 순간 내 우울은 조금은 다른 얼굴로, 나와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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