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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naine Aug 18. 2022

생각한 것과 다르잖아

자영업자의 주절거림

카페는 여유롭고 한가하고 조용하며 그런 카페를 운영하는 사장은 손님이 오면 커피 한잔 내어주고 나서 책을 읽다가 손님이 가시면 테이블 한번 쓱 닦고 뭔가 할 일이 없을까? 하며 할 일을 찾아볼 줄 알았다. 모두가 그건 현실이 아니라고 할 때도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정식 오픈도 하기 전에 원두 테스트를 하며 찾아온 팔목 통증, 탬핑할 때 힘이 많이 들어간다. 손목 아대는 이미 몇 개나 사다 놓았고 서서 일하다 보니 다리 붓기도 장난이 아니다. 그리고 디저트를 만들고 나면 기다리고 있는 설거지옥, 게다가 마감 청소는 왜 이렇게 할 일이 많은지 분리수거도 다시 하고 원두가루는 왜 갑자기 특수 마대에 버리는 걸로 바뀐 걸까. 커피머신 다루기는 생각보다 힘들고 제빙기 청소도 일주일에 한 번씩 해야 한다. 소소하게 들어가는 소모품들은 왜 이렇게 많을까. 바닥은 왜 이렇게 지저분하고 화분에 물은 언제 줬더라? 저 꽃은 시들어 있구나 얼른 치워야겠다. 원두와 우유와 베이킹 재료들의 재고가 얼마나 남았더라. 휴가철이라 그런지 요즘은 배송도 언제 되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아침에 출근을 해서 매장을 한번 둘러봤다. 테이블부터 닦아야지. 아니다 원두부터 세팅해놔야겠다. 아 맞다 디저트 반죽이 얼마나 남았더라? 오늘은 어떤 디저트를 만들어놓지 하고 정신없이 오픈 준비를 하다 보면 손님들이 오신다. 아침에 병원을 들렀다가 오거나 늦잠을 자서 게으름을 피운 날이면 어김없이 손님과 동시입장을 해서 정신없이 커피부터 내어드릴 때도 많다. 오픈 시간은 10시지만 일찍 가면 손님이 늦게 오시고 늦게 가면 문도 열지 않은 카페 앞에서 민망하게 기다리고 계신다.


그냥 막연하게 조금은 여유로울 줄 알았다. 그래서 나도 그중 하나였지만 퇴사하고 카페나 차릴까 하는 생각을 가볍게들 하나 싶었다. 생각보다 더 힘들다고는 했지만 내가 겪어보지 못한 일이니까 순간순간은 여유 있겠지 하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카페가 보기보다 더 체력전이라는 건 겪어본 분들만 알 것이고 그래서 카페뿐 아니라 자영업 하시는 분들이 존경스럽다.


요즘은 비가 너무 많이 왔다. 습도가 높은 여름이 되니 구워놓은지 한 시간도 안되어 구움 과자들이 습기를 먹었다. 겉바속촉의 식감으로 유지되어야 할 디저트가 눅눅해지고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는 날파리까지 날아다닌다. 이것도 여름이 지나면 좀 나아지기는 하려나 걱정이 든다. 게다가 비가 와서인지 너무 오래된 건물이라 그런지 환기시키려고 문을 열어놓은 틈으로 들어온 건지 매장 안에서 결국 대왕 바퀴벌레를 보고야 말았다. 바로 세스코를 불러 견적을 받았지만 고정비 지출이 늘어나는 것 때문에 조금 생각을 해보겠다고 얘기한 뒤에 에프킬라를 잔뜩 사다 놓았다. 처음 해보는 자영업이고 인터넷 말고는 조언을 구할 곳도 없다. 자영업을 시작하고 처음 겪는 여름이다.


당일 만든 디저트가 항상 다 팔리진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 식감이 달라 지기 때문에 남은 것은 냉동실에 넣어뒀다가 집에 가져가거나 가끔 퇴근길에 근처에 사는 친구에게 주거나 결국은 버리게 된다. 버리는 게 아까워서 단골손님들께 말씀드리고 한두 개씩 더 넣어드릴 때도 있다. 한 번은 너무 많이 드렸는지 이렇게 팔아서 남는 게 있냐고 물어보셨다. 당연히 남는 건 없다. 말 그대로 땅 파서 장사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만든것들이 그냥 버려지는것이 속상할때가 있다. 주변에 기부할곳이 있는지도 찾아보았지만 기부할만큼 많이 만든다거나 식사대용으로 먹을만한 디저트들이 아니다.


자영업을 하시는 분들이 이 글을 보면 이런 것도 모르고 시작했나? 싶으실 거다. 이 현실적이고 투정 가득한 글을 쓰다가 좋은 점은 뭐가 있을까 찾아보니 업소용 냉장고는 정말 맥주 보관하기 딱이라는 것이 생각이 났다. 하필이면 오늘따라 동네 아기 엄마들 모임이 있는 와중에 맥주가 박스로 배송이 됐다. 조금 부끄럽지만 알게 뭐람. 얼른 냉장고에 넣어두고 저녁에 스피커로 재즈 클래식이 아닌 노동요를 틀어놓고 마감 청소하며 맥주 한 캔 해야겠다. 업소용 냉장고에서 보관된 맥주는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나에게도 정말 꿀맛이다. 엄청나게 시원하고 가장 맛있는 온도로 보관해주는 업소용 냉장고 시원 그 잡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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