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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내 Jan 09. 2025

코타키나발루 여행 20일(8)

사피 섬

 

“간밤에 꿈자리가 사나우니 오늘 하루  조심해라.”

어릴 때 간혹 어머님이 이런 말을 하면 못 들은 척하거나 미신을 믿는다고 핀잔을 주곤 했다.
 

밤새 꿈자리가 너무 사나워 두려움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전체 내용은 기억에 남지 않았지만 섬찟한 폭행이 이루어지다 마지막에는 벽돌로 아는 사람의 머리를 박살 내는 장면에 놀라 잠에서 깼다. 
 
여행을 그만두고 귀국해야 할까. 

무슨 큰일이 생기지 않을까?
만일 딸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창밖으로 동이 트고 날이 밝아오자 그토록 무섭고 부정적인 생각은 나아졌지만 불길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그래 겪어야 될 일이라면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자.’

해산물 식당에서 일회용 비닐장갑을 끼고 새우요리 껍질을 까고 있을 때 딸아이의 핸드폰이 울리며 아내가 나를 바꾸라고 한다.  

“경주 도련님 장모님이 별세했다는데…
아주버님이 연락을 받아 같이 문상 가자고 하네요.”


경주에 사는 동생 장모님이 끝내 세상을 떠난 모양이다. 
오랫동안 요양원 생활을 했는데...
막내 동생 부부, 형님과 함께 내일 문상을 가겠다는 이야기로 아내와 통화를 마쳤지만 지난밤 꿈과 지금 마주한 현실이 연결되며 생각이 많아진다.  



오늘은 코타키나발루 여행의 백미인 섬투어를 나서는 날이디.

어제저녁 준비한 도넛과 음료수로 아침을 대신하고 물놀이 준비물로 배낭을 채운다.  

섬 투어 선박은 8시 30분부터 30분 간격으로 계속되는데 제셀톤 선착장 매표소에 도착하니 10시에 시작되는 투어 티켓 판매가 진행 중이다.


근처에는 물놀이하기 좋은 3개의 섬이 있는데 1개의 섬만 투어 할 경우에는 35링깃, 2개 섬 45링깃, 3개 섬을 다 둘러보면 55링깃으로 가격이 정해져 있다.
다른 액테비티 가격은 상황에 따라 협상이 가능하지만  섬 투어 요금은 일률적으로 적용된다.
단체 관광객들은 하루 만에 3개 섬 모두를 돌아보지만 우리는 하루 1개 섬을 방문할 계획이다.


오늘은 사피 섬을 선택했고 현금만 통용되는 매표소에 70링깃으로 두 사람 가격을 지불하고 선착장 쪽으로 걸어가니 구명조끼는 1인당 10링깃, 스노클링에 필요한 장비는 5링깃에 대여해 준다.

대여한 구명조끼를 입고 선착장에 도착하니 10명의 탈 수 있는 작은 모터보트가 준비되어 있다.
 

모든 좌석이 투어 인원들로 채워지자 이틀 전 반딧불 투어 가이드였던 애비가 보트에 올라 섬 투어 주의사항을 전달하고 보트가 달리면 모자가 날아가니 조심하라고 한다.  

모터보트가 속도를 높이자 보트바닥이 물에 힘차게 부딪치며 시원하게 달린다. 

10분을 달려 도착한 사피섬에서는 딸아이와 나 둘만 내리고 남은 사람들을 태운 보트는  다음 섬으로 떠난다.

선착장에는 섬으로 이어진 나무다리가 이국적인 풍경으로 우리를 반기고 물아래로 헤엄치는 물고기 모습이 평화롭다. 
바닷속을 여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의 모습을 한동안 지켜본다.


섬 입구에서 도착하니 카운터에 앉은 직원이 섬 입장료를 징수한다.

1인당 25링깃, 60세 이상 외국인의 20% 할인해 20링깃을 받는다.  


사피 섬은 선착장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해변이 나누어져 있고 부지런한 관광객들이 벌써 자리를 잡고 물놀이를 하고 있다.

왼쪽 해변 물속에서는  스쿠버 다이빙 장비를 갖춘 관광객들이 초보 교육을 받는 모습도 보인다.

사피 섬안에는 아름들이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고 있어 시원한 바다 바람을 맞으며 멍 때리기도 좋은 곳이다.


장비를 갖춘 딸아이가 물에 들어 가 스노클링을 시작하자 나올 생각을 않는다.

오른쪽 해변과 왼편 해변을 오가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논다.  


섬도 둘러보고 해변도 눈에 익어갈 무렵, 스노클링 장비를 끼고 물속으로 들어가니 물속에 손바닥만 한 고기가 헤엄치고 다닌다. 

은빛 물고기가 지나가면 검은색 물고기가 나타나고 저 멀리 나무토막이 떠 내려오는 줄 알았는데 가까이 오니 갈치처럼 긴 물고기가 지나간다.  


물놀이를 시작한 지 10분 정도 갑자기 두통이 찾아와 물밖으로 나왔는데 구역질까지 나 나무의자에 몸을 눕혀보지만 고통이 가시지 않는다. 

아침에 먹은 도넛이 체한 모양인지 헛트럼이 계속 나고 앉아 있기조차 불편해 구명조끼를 베고 잠을 청한다.  

1시간 남짓 지나 눈을 뜨니 두통은 사라지고 속의 불편함이 많이 가셨다.  


섬을 떠나기까지는 1시간가량 남아 있었지만 물놀이를 할 컨디션이 아니다. 
나 때문에 점심을 거른 딸아이는 배가 고플 텐데…
여전히 물놀이에 정신이 없다.  


시계가 3시에 가까워져 선착장에서 돌아갈 배편을 기다리는데 사람들이 많다. 
여행사 가이드들이 나와 승객을 태우기 시작하니 사람들이 금방 줄어든다.
다른 섬에서 사람을 태우고 도착한 보트에 몸을 실으니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보트가 속도를 높인다.  


이제 정신이 돌아오는 허기가 돈다.
나 때문에 점심을 거른 딸아이는 눈치 보느라 배 고픔을 내색하지 않는다.


숙소에서 간단하게 샤워를 마치고 택시를 불러 찾아간 해산물 식당 오징어 튀김에 채소요리 하나, 볶음밥에 음료수 그리고 빠질 수 없는 맥주 한 병, 오지어 튀김은 물론이고 전체 음식이 맛있어 모든 접시를 깨끗이 비웠다.  


음식을 사랑하고 자신이 직접 좋은 음식을 만들기도 하는 이영자는  

“음식은 또 하나의 대화.”라는 말을 했다.  


오늘 해산물 식당을 나서며 딸아이와 다른 언어로 많은 대화를 나눈 것처럼 가까워졌다.  

시엄시엄 걸어 숙소로 가는 도중 필리피노 마켓에서 숯불구이 닭다리 2개를 샀다.
닭다리를 손에 들고 걸으며 숙소에 도착해 시원한 맥주 마실 생각에 행복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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